
[1] 새벽 3시 반에 잤다가 7시에 일어났다. 동료들과 조식을 먹은 후 9시 반에 공동묘지를 찾았다. 바로 존 로스의 무덤이 있는 'Newington Cemetery'이다. 그는 토마스 선교사가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선교에 나섰는데, 첫 선교지는 중국 만주였다. 존 로스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로교 선교사로서 중국에서 선교 활동 중에서 '최초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한 사람'이다.
[2] 그뿐 아니라 그는 ‘한글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이분의 업적을 기려서 묘비에 한글로 돌에 새긴 기념비가 누워 있었다. 그분의 묘지 방문 이후, 그가 선교지에서 돌아와 장로로 섬겼던 'Newington Trinity Church'를 방문했다. 하필이면 그 교회를 중국인들이 빌려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존 로스가 중국에서 선교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중국 교회가 그분을 기념해서 동판을 벽에 새겨 두었다.
[3] 그 동판 바로 위에 한국 교회도 한글로 된 동판을 나란히 새겨 걸어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역사가 신묘막측하심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126명의 언약도들이 화형당했다고 하는 ’그라스마켓‘(Grassmarket) 이다. 매년 에딘버러 성 바로 밑에 위치한 그곳을 방문하고 있지만, 늘 존경하는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는 매우 성스런 곳이다.
[4] 그다음은 그 유명한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 묘지’(Greyfriars Kirkyard)이다. 1679년 보슬웰 브리지 전투 이후 수백 명의 언약도들이 이곳에 수용되었고, 일부는 처형당했다. 이 장소는 "언약도들의 감옥"이라고도 불린다. 무엇보다 유명한 곳은 설교 예화 중에 자주 언급되는 ‘지붕 없는 무덤’(Roofless Prison)이다. 약 1,200명 이상의 언약도들이 이곳에 수감되어 순교한 장소이다.
[5] 그들은 지붕 없는 야외 공간에 철책과 벽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기아와 추위와 질병 중에도 자신들의 신앙을 배신해서 담을 넘어 도망가지 않은 채 모두가 사망한 고귀한 영혼들이다. 묘지 내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가 있다. “Here lies the dust of those who stood 'Gainst perjury and for the covenanted cause.”(여기에는 거짓에 맞서 싸우고 언약의 신앙을 위해 헌신한 자들의 유해가 있다).
[6] 이 지붕 없는 감옥에서 순교한 이들은 단순한 정치범이 아니라,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해 생명을 바친 자들이다. 이들의 피는 후일 스코틀랜드 종교 자유의 초석이 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기독교 순교자로 추앙받고 있다. 영국을 방문하는 동안 안타까운 마음에 가장 가슴이 먹먹해지는 장소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후 정문으로 나가다 보면 순교 당한 무수한 영혼들보다 더 유명한 존재 하나가 기념 동상에 새겨져 있다.
[7] 그것은 다름 아닌 ‘보비’(Bobby)라고 하는 조그마한 개의 동상이다. 에딘버러 경찰의 야간경비원이었던 존 그레이(John Gray)가 죽자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 묘지에 묻혀 있는 주인의 무덤 위에 앉아서 무려 14년을 보내다가 죽은 보비라고 하는 개를 기념해서 새겨놓은 것이다. 자신들이 지닌 신앙의 순결성을 지키다가 장렬하게 숨져간 순교자들보다는 개 한 마리를 더 숭배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옴을 절감했다.
[8] 그렇다 하더라도 말 못 하는 개 한 마리의 충성심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본받고 도전받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개보다 못한 신자가 되지 말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할 때, 사무엘상 6장에 나오는 ‘벧세메스로 가는 소’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비의 감동적인 실화’를 기초로 해서 성도들에게 교훈과 도전을 던지면 더없이 좋은 적용이 되리라 본다.
보비의 상을 지나서 도착한 곳은 ‘성 자일즈 대성당’(St. Giles’ Cathedral)이다.
[9] 이곳은 1560년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 당시 존 녹스(John Knox)가 설교했던 중심 교회였다. 들어가는 정문 머리 위 장식들 중 맨 중간 부분에 눈여겨 주목해야 할 상이 하나 있다. 양을 안고 계시는 예수님의 상이 하나 있는데, 그분 ‘왼손에는 성경’이 들려져 있고, ‘오른손엔 화살’이 꽂혀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양 떼를 위한 희생의 자세’로 목회하는 자가 참 목자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의미심장한 이미지 하나가 주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10] 이곳에 그냥 지나갈 수 없는 감동적인 장소가 또 하나 있다. 대성당 뒤편이자 현재의 주차장 차 세우는 곳 바로 아래에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창시자인 존 녹스(John Knox)의 무덤이 있다. 차들이 들락날락하고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그 밑에 그렇게 위대한 사명자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다니, 그 자체만으로도 놀랍고 충격적이다.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을 이끈 인물이지만, 죽은 후 거창한 무덤이 아닌 곳에 묻히길 원했다고 하니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11] 캘빈처럼 존 녹스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기를 원했던 겸손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존 녹스가 태어난 곳인 ‘John Knox House’를 방문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들어가는 길목에 아주 대조적인 두 사람의 초상화가 여왕 메리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12] 스코틀랜드 종교 개혁 당시, 개신교 개혁가였던 존 녹스는 가톨릭 교회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에 대한 반격을 주도했던 인물인 반면, 메리 여왕에게 충성했던 금세공인 제임스 모스만(James Mossman)은 여왕의 통치와 가톨릭 신앙을 지지한 인물이었다. 녹스의 손에는 ‘성경’이 들려져 있었고, 모스만의 손에는 ‘돈주머니’가 들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차이를 이보다 더 확실하게 묘사할 순 없었으리라. 오늘 나는 누구를 좇고 있는가? 존 녹스인가 제임스 모스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