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000만 독자가 사랑한다고 하는 김재식 시인의 『어른이 관계에는 마침표가 없다』이란 시집 속에 나오는 시가 하나 있다. 이 책에서 그가 소개한 시 중 으뜸이라 생각되는 시를 하나 소개한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만
삶이 가치 있는 것일까.
어쩌면 인생은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어떤 날은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
무사히 하루를 마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그냥 오늘 하루를 살아.’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하니까.
따뜻한 햇볕을 느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소중한 사람과 함께 웃는 것.
그런 순간들이 쌓여
우리는 결국 살아간다.”
(김재식, 『어른이 관계에는 마침표가 없다』 (위즈덤하우스, 2025), 20-21)
[2] 이 시를 읽는 사람이면 누구나가 다 매료될 만큼 편안하게 해주는 내용이다.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모두가 다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늘 기쁨 속에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보기가 그리도 힘들단 말인가? 어째서 만면에 미소를 띠며 사는 이들을 만나보기가 그리도 어렵단 말인가? 이유가 뭘까?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모두가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3]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하고, 더 높은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사람들은 피폐해져 간다. 한마디로 말하면 ‘비교 의식’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위에서 소개한 김대식 시인의 글은 자신이 목표하던 그 무엇이 되질 못해서 평생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의 마음에 큰 힘과 위로가 되어준다.
뭔가 대단한 존재가 되어야 행복할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4] 일상의 삶에서 소소한 기쁨을 누리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지 모르고 사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감탄하고, 풀잎에 맺힌 이슬을 보고 감격할 수 있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다 좋은 말이긴 하지만, 그게 우리 인생의 제일 목적과 최고 행복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보다 더 크고 깊은 의미’를 언급한다.
[5] 목회자들은 자기 성도들에게 “빛과 소금이 돼라!”고 설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빛과 소금’(마 5:13-14)이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벧전 2:9)이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부름을 받은 높고 존귀한 존재들이다.
김대식 시인은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미 무엇이 된 존재(Being)들이다. 천사도 흠모할 만한 위대한 존재들 말이다.
[6] 미국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목표를 높이 잡을수록 오히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쉬워진다.” 목표를 높게 잡아놓으면 그 목표만을 향하여 전진해 가기 때문에 낮은 목표를 잡은 사람보다 성취도가 높아지게 된다. 이처럼 ‘높여 잡는 목표’를 ‘Aim high’한다고 한다. 사실 ‘Aim high’는 1990년대 미국 공군이 모병 광고에 쓴 슬로건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간결하고 명확하며 세련된 슬로건이다.
[7] 목표를 높게 잡으면, 성취도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렇다. 성경은 우리에게 목표 설정을 높이라고 요구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Being)인지를 제대로 알면 그에 맞는 행동(Doing)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히 6:1-2절은 우리더러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 것을 도전한다. 엡 2:10절은 우리가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걸작품(masterpiece)이라고 말씀한다.
[8] 또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을 상속자(마 25:34, 갈 4:7)라고 언급한다.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천국의 시민권자(빌 3:20)임도 소개한다. 김대식 시인의 시 속에 나오는 것처럼 ‘따뜻한 햇볕을 느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 웃는 것’도 삶의 행복이 될 순 있겠지만, 적어도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요 상속자라면 지향하는 목표와 누릴 행복의 의미는 ‘보다 크고 높은 차원’이어야 할 것이다.
[9] 단 한 번도 외부 사람들을 자신의 마을에 들이지 않고 모조리 죽여왔던 에콰도르 아우카 족 식인종 마을에 전도하러 떠난 짐 엘리엇을 비롯한 5명의 선교사들이나, 되돌아올 티켓은 끊지 않은 채 자신이 들어갈 관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떠난 ‘편도 선교사들’(One way missionaries)이 생각하던 생의 목표와 기쁨과 행복은 남달랐음에 주목하라. 그들이 ‘특별한 사명자들’이어서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10] 그들은 천국의 시민권자들로서 영원한 나라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서 그렇게 짧게 살다가 떠난 것이다. 그들만 천국 백성들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사모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저 친한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멋진 가을 풍경을 보고 누리는 소소한 행복으로만 그쳐선 안 된다는 말이다.
[11]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보라. 성경 곳곳에서 우리에게 ‘Aim high’를 소리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더 이상 평범한 존재가 아니다. ‘We are special.’ 우리는 ‘특별한 존재들’이다. 가난한 농부가 꾸는 꿈과 황제가 꾸는 꿈은 달라야 한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오늘 이후로 우리의 목표를 높이고, 누릴 기쁨과 행복의 가치관도 새롭게 정립하자. ‘신의 아들’은 신이다. 모든 게 달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