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5일 주일, 웨스트힐 장로교회(오명찬 목사)는 Father’s Day를 맞아 마태복음 8장 5-13절 말씀을 중심으로, ‘왕이 베푸신 기적들’ 시리즈 설교의 두 번째 설교를 통해, 백부장이 지녔던 ‘큰 믿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겼다.

오명찬 목사는 백부장의 믿음에 주목하며, 이 ‘큰 믿음’은 헬라어로 '토사우텐 피스틴(τοσαύτην πίστιν),' 영어로 'such great faith (이렇게 큰 믿음)'으로 번역된다며, 이는 신약성경에서 '믿음'에 관련하여서 예수님께서 오직 이 백부장에게만 단 한 번 부여하신 극찬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마 8:10; 눅 7:9).

그는,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씀처럼, 백부장의 '이렇게 큰 믿음(such great faith)'은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다며,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오명찬 목사는 백부장의 '이렇게 큰 믿음(such great faith)'의 특징을 성경텍스트(마 8장과 눅 7장)의 문맥안에서,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분석하며 설교를 이어갔는데, 그 첫번째 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말했다:

<백부장의 큰 믿음 | The such great faith of the centurion>

1. ‘나의 이익만을 위하는’ 믿음이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믿음이었다.
1. It was NOT a faith ‘only for my benefit,’ BUT a faith ‘for loving and caring for others.’

그는, 백부장이, “타인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인해, 예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왔다”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마 8:10의 백부장의 ‘하인’이란 단어가, 눅 7:2에서는 ‘종’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인간으로서 어떤 권리도 부여받지 못한 ‘둘로스(doulos)’를, 성경은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라고 기록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고했다. 그는, “사랑하는”이란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 엔티모스(ἔντιμος )는 ‘영예로운’, ‘존귀한’이란 의미를 지니는 단어인데, “가장 천하고 낮은 노예의 인격조차도 존귀하게 대우했던 백부장의 믿음”을 성경이 기술해주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백부장이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마 8:8)”라고 말한 것에 대해 ‘당시 유대인들은 부정해짐을 방지하기 위해 이방인의 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유대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배려했기 때문에, 높으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이 이방인인 누추한 자신의 집에 들어오심으로 혹여라도 부정해지게(해를 입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깊은 배려심으로 인해 예수님의 방문을 만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명찬 목사는 백부장의 '이렇게 큰 믿음(such great faith)'의 특징을 성경텍스트(마 8장과 눅 7장)의 문맥안에서, 두 번째로 다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백부장의 큰 믿음 | The such great faith of the centurion>

2. ‘내 나라만을 위하는’ 믿음이 아니라, ‘타국도 사랑하는’ 믿음이었다.
2. It was NOT a faith ‘only for my country,’ BUT a faith ‘for loving other countries as well.’

오목사는, 누가복음 7:4-5에 기록된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백부장에 대해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였나이다…”라고 말한 부분을 언급하며, 백부장이 로마제국의 약소한 식민지에 불과했던 이스라엘이란 작은 나라(민족)를 학대하고 착취한 것이 아니라, 마치 이스라엘로 파송된 선교사처럼 백부장은 그렇게 진심으로 타국과 타국인들을 사랑했다(아가파오)며, 그것이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삶속에 사랑의 열매로 맺혀진) 그의 믿음을 극찬한 또 하나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마태복음 28:19-20과 사도행전 1:8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모든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해 볼 때,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우리가 속한 한국과 미국 뿐만 아니라, 열약하고 힘없고 복음이 전달되지 못한 타국과 그 백성을 조금씩 더 사랑하는 현장의 삶을 통해, 백부장처럼 믿음의 지경을 넓혀볼 것을 제안하였다.

마지막으로, 오명찬 목사는 백부장의 '이렇게 큰 믿음(such great faith)'의 특징을 성경텍스트(마 8장과 눅 7장)의 문맥안에서, 세 번째로 다음과 같다고 설명했다.

<백부장의 큰 믿음 | The such great faith of the centurion>
3. ‘행함이 없는 추상적인’ 믿음이 아니라, ‘행함이 있는 구체적인’ 믿음이었다.
3. It was not an abstract ‘faith without action,’ but a practical ‘faith with actions.’

오목사는, 마태복음 8:9-10에 기록된 백부장의 고백가운데, “…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라는 부분을 예수님께서 들으신 후, 백부장의 믿음을 놀랍게 여기셨고 극찬하셨던 부분에 주목하며, 우리도 가장 높으신 주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선포되면 그 말씀을 경청하고 그 말씀안에 거하는 참된 믿음이 생성된다면, 반드시 행함으로(가다, 오다, 하다) 연결될 수 밖에는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복음 7:4-5에서, 유대인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며 간청했을 때, 백부장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습니다”라고만 이야기하지 아니하였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부분에 주목했다. 백부장의 믿음은 추상적인 ‘사랑’의 감정에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땀을 드리며 그 사랑에 합당한 ‘행함’으로 ‘회당을 지어주었다’라는 사실을 백부장의 믿음과 연결시켰다. 즉, 백부장의 믿음은 행함 없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 있는 믿음이었다는 것이다.

야고보서 2:14-17에서 “…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기록된 말씀처럼, 참된 믿음은 행함 없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믿음이 아니라, 분명하고 구체적인 행함의 열매가 맺혀지는 믿음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이렇게 큰 믿음(such great faith)'의 모습이라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