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요즘 담임 목사 청빙을 위해서 교회마다 청빙위원들이 갖은 고생을 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은 '설교 잘하는 사람'을 찾는데, 설교가 좋으면 다음으로 '인간성'에 대해서 알아본다. 어떤 교회의 청빙위원들은 전국에 있는 목회자 150명의 설교를 들었다고 한다. 최근, 몇몇 교회로부터 자기들이 물망에 올려놓은 설교자에 대한 설교를 평가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가 하면 어제는 어떤 목회자 한 사람의 인간성에 대한 문의도 들어왔다.

[2] 설교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 목사를 담임으로 청빙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두 가지를 겸비한 인물을 찾기란 꽤 힘들다. 무엇보다 설교 잘하는 이들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성도들이나 교회의 기호에 따라 선호하는 설교의 내용이나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60이 넘어가다 보니 담임 목사 후보가 아닌 후보를 추천하는 입장이 되고 말았다. “내 나이가 어때서?”란 노래가 떠올려지는 순간이다.

[3] 마지막 남은 시간을 목회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불사르고 싶은 마음이 적지 않지만, 60이 넘은 나이로 인해 아쉬울 때가 많다. 그렇다.
이젠 재능 있고 인품 좋은 후배들을 세워줄 때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 국외까지도 자꾸 기웃거리게 된다. 목회자는 많아도 막상 추천하려니 맘에 드는 인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오늘 월요일 수업에 두 사람이 설교를 발표한다.

[4] 설교 시연을 한 후에 분석비평 받는 시간을 가진다. 발표자 중 한 사람이 약 1:23-25절을 본문으로 해서 작성한 설교문을 며칠 전 단톡방에 올려놓았다. 내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본문이다. 과거, 이 본문으로 전한 분당 대형 교회 담임 목사의 설교를 듣고 화를 내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내 인상을 쳐다보던 아내가 “오늘도 은혜받지 못했나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묻는 아내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면서 기분 나빠했던 적이 있다.

[5] “그 설교가 얼마나 비성경적인지 아직도 모르겠어?”라고 말이다. 그랬다. 은혜받을 만해야 했건만, 전혀 그러질 못했다. 약 1:23-25절은 야고보서에서 제일 중요한 구절이다. 야고보서의 주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느냐를 가르쳐주는 유일한 구절이 바로 약 1:23-25절 말씀이다. 그럼에도 설교자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라는 당위성만 실컷 얘기하다 설교를 끝냈다.

[6] 행함이 있는 참 믿음의 소유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비결을 알려주는 너무나 소중한 구절을 본문으로 잡아놓고선 행함이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만 하다가 마치니 얼마나 화가 났겠는가?
약 1:23-25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등장한다. 첫 번째 사람은 성경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열매가 없는 사람이고, 두 번째 사람은 성경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7] 똑같이 성경 말씀을 대하는데, 행함이 없는 사람과 행함이 있는 사람의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23-24절에 나오는 첫 번째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자.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저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8] 원문에 맞춰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누구든지 말씀을 ‘듣기만 하고’(ἀκροατὴς, hearer) 행하지(ποιητής, doer) 아니하는 자이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κατανοοῦντι, looking) 사람과 같아서 저 자신을 보고 즉시 ‘떠나버려서’(ἀπελήλυθεν, gone away)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여기서 '거울'은 쉽게 설명하기 위해 등장시킨 예증이다.

[9] 이번엔 두 번째 사람의 경우를 살펴보자.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이는 두 부류의 차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아주 중요한 동사 하나를 빼먹은, 문제가 많은 번역이다. 개정을 했음에도 여전히 동사 하나를 빼고 번역한 아쉬운 구절이다.
원문에 맞춰서 이를 다시 번역해 보았다.

[10]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παρακύψας, stoop or looks intently), 또 ‘거기에 머물러 있는’(παραμείνας, abides by it)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두 부류의 차이를 보면, 첫 번째 사람은 '말씀을 귀로 잠시 듣고는 재빨리 떠나버리는 자'인 반면, 두 번째 사람은 '허리를 굽혀서 말씀을 보고 또 거기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를 뜻한다.

[11] 성경 말씀을 '귀로 잠시 듣고 마는 사람'과 '허리를 굽혀서 눈으로 읽으면서 소가 음식물을 되새김질하듯 계속해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사람'의 차이를 명확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행함이 있는 참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심하게 읽을 뿐 아니라, 그것에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깊이 묵상하는 자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 나는 행함이 없는 사람인지 행함이 있는 참 믿음의 사람인지, 성경 말씀을 어떤 자세로 대하고 있는지 잘 점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