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저는 가끔 상처 받았던 과거 사건에 대한 꿈을 꿉니다. 제게 상처를 준 사람이 꿈속에 등장합니다. 여전히 저를 괴롭힙니다. 의식적으로 저는 그 분을 용서했습니다. 용서만으로 부족해서 축복했습니다. 하지만 제 무의식 속에는 그분이 제게 준 상처와 괴롭힘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입니다. 저는 과거를 떠나 희망찬 미래를 향해 전진하라고 자주 설교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설교하는 제 자신은 정녕 과거의 상처를 떠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교자의 모순이요, 글쓰는 사람의 민낯입니다.

상처란 신비롭습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때는 상처가 되고, 어떤 때는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상처는 쉽게 극복합니다. 반면에 어떤 상처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가시처럼 찌르곤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받은 상처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상처만 받으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상처를 입히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저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가능한 남은 생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덜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저는 한편의 목회서신을 쓰기 위해 늘 글을 읽습니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를 숙고합니다. 그런 고심 중에 한 문장이 제게 다가오면 그 문장을 붙잡고 글을 씁니다. 이번 주간에 저를 찾아온 문장이 있습니다. “상처를 마주하는 자만이 상처 너머의 세계를 본다.”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과거의 고통을 대면한다는 뜻입니다.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자신이 받은 상처 때문에 억눌렸던 감정들, 슬픔, 수치심, 섭섭함, 억울함, 분노, 외로움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입니다.

상처를 마주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행위입니다. 상처를 대면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과거에 경험한 고통의 본질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뇌리에 새겨진 상처 보다 더 깊이 들어가서 그 상처의 근원을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상처를 헤아리는 것입니다. 또한 상처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상처가 우리를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성장시키고 성숙케 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상처 속에 담긴 진주를 깨닫는 것입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 상처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상처를 드러내십시오. 글로 쓰거나, 눈물로 표현하십시오. 또한 신뢰하는 상담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셋째, 상처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왜 상처가 생겼는지, 상처 때문에 느꼈던 감정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넷째, 상처를 수용하는 것입니다. 자신과 타인을 정죄하지 않고, 상처 받았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상처를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상처를 배움의 기회로 여기는 것입니다. 상처를 성장과 성숙의 기회로 여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는 공감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상처를 재해석할 때 과거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상처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때 상처를 진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상처 너머의 세계를 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과거를 떠나 미래를 향한다는 뜻입니다. 상처를 받은 것은 과거의 사건입니다. 과거의 사건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앞을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소망을 품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상처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셨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예수님이 십자가의 상처와 고통을 참으신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신 까닭입니다. 그 앞에 있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바라보신 까닭입니다.

 과거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 모습은 우리가 살아온 과거의 총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과거를 떠나 얼마든지 소망의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롬 15:13). 소망을 주시는 분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은 우리를 과거에서 건져내어 희망찬 미래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상처는 무시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무시하면 우리가 무시한 상처가 은밀히 우리 삶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인정하고 수용하고 치유함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때 상처는 진주가 되고,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찬란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상처는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의 문제입니다. 상처를 잘 치유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습니다. 상처를 십자가에 맡기십시오. 상처 너머에 있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상처가 영광이 되는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