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오늘 새벽, 엄청난 일이 발생했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팀의 4강 신화 달성 이후 최고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우리 손흥민 선수가 주장이 있는 토트넘이 오늘 새벽, 스페인 빌바오에서 열린 ‘2024-2025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1-0으로 누르고 마침내 우승했기 때문이다. 토트넘은 2008년 리그컵 우승 이후 무려 1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셈이다.

[2] 토트넘 이적 후 준우승이 전부였던 손흥민도 유럽 데뷔 후 무관의 서러움을 접고 처음으로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날 손흥민이 선발로 출전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교체 선수로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꽤 실망을 가져다주었다. 90분간 뛰기에 몸 상태가 완전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전반전을 실점하지 않고 수비 위주로 가다가 후반전에 스피디한 손흥민을 출전시켜 역습으로 골을 넣을 계획을 세웠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3] 전반전에 기적적으로 맨유 선수의 자책골이 터져 한 점 앞서가긴 했으나, 맨유의 파상공세로 위태로운 전반전을 간신히 마칠 수 있었다. 후반 22분, 히샬리송을 대신해 손흥민이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이때부터 토트넘을 응원하던 팬들의 마음은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손흥민이란 한 선수의 가치가 어떤지를 모두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손흥민이 투입되자 분위기는 일순 달라졌다.

[4] 한 골을 뒤지고 있던 맨유로서는 닥치고 공격할 수밖에 없었지만, 역습의 귀재 손흥민의 존재로 인해 섣불리 공격에 몰두하지 못하는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맨유의 결정적인 골을 간신히 막아낸 반 더 바르트가 우승의 숨은 주역이긴 했지만, 손흥민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역전패도 가능했을 정도로 토트넘으로서는 매우 버거운 경기였다.
경기 종료 휘슬이 불자 운동장은 환호와 눈물과 감격의 도가니였다.

[5]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경쟁을 벌이는 최고의 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주장으로서 트로피를 드는 모습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가슴 뿌듯했을 장면이었으리라. 경기 종료 후 손흥민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감격의 세리머니를 했다. 세계 축구의 변방인 아시아 선수가 팀의 한가운데서 전 세계 축구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역사적인 주인공이 되는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감격과 환희의 순간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6] 시상식과 우승 세리머니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이제 토트넘의 레전드가 됐나요?”라는 진행자의 첫 질문에 환하게 웃음을 띤 채 “이제 레전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답하면서 “오늘만큼은(only today)”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을 보았다. 자격이 충분한 영광스러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겸손이 묻어 있는 그의 인격은 끝까지 빛이 났다.
우승 직후 그의 동료 반 더 바르트가 남긴 한마디가 큰 감동을 주었다.

[7] 놀랍게도 그는 골대로 거의 들어가던 볼을 기적같이 발로 차낸 공로를 손흥민에게 돌렸다.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기자의 얘기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쏘니의 실력 때문이 아니라, 그간 그가 팀을 위해 오랜 시간 희생하고 동료들을 위로하고 격려한 대가를 이번에는 반드시 지불해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골이 골대로 들어가면 이번에도 쏘니의 우승 소원은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든지 그 골을 꼭 막아야만 했어요.”

[8] 경기 전, 동료 클루셉스키의 발언 또한 감동적이었다. “쏘니는 처음에 영어도 잘 못했고, 위축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는 항상 웃으며 먼저 다가왔죠. 그런 형이 있어서 나도 이 팀에 적응할 수 있었고, 지금의 내가 있는 거예요. 형을 위해서 꼭 트로피를 선물해 주고 싶었어요. 이젠 형이 떠나더라도 나 혼자서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형이 그만큼 많이 가르쳐줬으니까요.” 오늘 경기의 또 다른 수훈갑인 비카리오도 같은 얘기를 했다.

[9] 평소 아부하는 말을 잘하지 못하는 차가운 성격인 그도 팀을 위해 10년간 헌신해 왔고, 후배들을 아낌없이 사랑해 준 캡틴에 대한 존경심이 누구보다 강한 선수였다. 맨유 선수의 자책골이 터졌을 때 벤치에 있던 선수들이 모두 손흥민에게 몰려와 함께 부둥켜안고 감격을 나누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가 팀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감동받은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10] 토트넘의 우승을 중계로 지켜본 리버풀의 스타 ‘살라’ 선수의 인터뷰 내용을 들었다. 그에게 손흥민은 늘 우승을 다투는 다른 팀의 라이벌일 뿐이다. 토트넘 우승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 역시 손흥민이 우승 후 감격에 겨워 우는 모습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정말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었다. 살라는 언제든 우승 가능성이 많은 선수들이 즐비한 리버풀이란 최고팀에서 리그 우승도 하고 골든볼도 수상한 선수다.

[11] 하지만 리그 17위로 바닥을 헤매고 있는 2류급의 선수들이 많은 팀에서 자기와 함께 골든볼을 공동 수상하고, 유로파 결승에서마저 우승한 손흥민은 자기랑 케이스가 다르다고 했다. 그간 손흥민이 우승 가능성이 크고 레벨이 더 높은 팀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토트넘이라는 한 팀을 위해 자기희생과 헌신을 해서 우승했으니 무조건 ‘리스펙’한다고 격찬했다.
토트넘의 두 쌍벽으로 활약했던 ‘해리 케인’의 반응 역시 궁금했다.

[12] 그 역시 분데스리가에서 우승컵을 들고 난 뒤 휴가 중에 친정팀 토트넘과 맨유의 경기를 끝까지 지켜보았다고 했다. 쏘니가 우승한 후 눈물을 흘렸을 때 자기도 환호하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승컵을 들기 위해 가능성이 많은 뮌헨으로 이적하는 바람에 토트넘에서 우승을 차지하진 못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13] 누군가는 나 대신 토트넘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쏘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 되기를 항상 바랐어요.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져 너무 감격스러워요.”
“한국인은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장점도 많지만, 단점도 꽤 있다. 잘난 사람이 나타나면 존경하고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정말 안 되는 민족이다.

[14]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존재할까? 정치인 중에 그런 현상들이 있음을 많이 보아왔지만, 목회자 세계에서도 그런 모습을 만만치 않게 볼 수 있어 늘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내가 실력 있고 재능 있는 후배들을 잘 챙기는 이유는 그런 데 있다. 손흥민 선수가 세계 축구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지만, 축구 스타들 간에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들을 확인하면서 더 깊은 감동과 도전을 받은 하루였다.

[15] “토트넘의 레전드로 기억해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며 은퇴를 시사했다는 얘기를 최종 들었다. 최근, 이전에 교제했던 여자와 그녀의 남친으로부터 ‘임신’을 빌미로 돈을 요구한 사건에 휘말려 손흥민에 대한 신선하고 좋은 이미지가 다소 퇴색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유로파리그 우승을 계기로 그 사건을 잘 매듭짓고 자신이 가장 행복해하는 길로 가기를 같은 국민과 팬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라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