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남의 글을 읽다가 목이 메어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좀체 드문 일이다. 그런데 어젯밤 모처럼 짧은 글을 읽다가 눈물짓는 일이 벌어졌다. 모 신학교의 여자 교수가 페북에 올려놓은 글이었다. 지난 어버이 주일,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예배 시간에 담임 목사님 설교에서 들은 얘기였다. 그 내용을 여기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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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랑 공원엘 갔다.
벤치에 앉아 있는데, 벤치 앞에 참새가 땅에 떨어진 뭔가를 쪼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물으셨다.
‘얘, 저게 뭐니?’ .... ‘참새예요.’
잠시 후 다시 물으셨다.
‘얘, 저게 뭐니?’ .... ‘참새요.’
잠시 후 또 묻으셨다.
‘얘, 저게 뭐니?’ .... ‘아, 참새라구욧!’
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날 저녁, 딸은 잠드신 어머니 머리맡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보게 되었다.
거기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3살 된 울 딸이랑 공원에 갔다.
조금 가다가 참새를 발견한 딸이 물었다.
‘엄마, 저거 뭐야 응?’ .... ‘참새야.’
잠시 후 딸은 다시 물었다.
‘엄마 저건 뭐야?’ .... ‘어, 참새란다.’
잠시 후 딸이 다시 물었다.
‘엄마 엄마, 저거 뭐야?’ .... ‘참새야~~’
‘따라 해봐~~’ .... ‘참새, 참새, 참새~~~’
이렇게 21번의 자식의 물음에 답해 줄 수 있어서 그날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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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년 간 요양병원에서 치매기를 보이시다가 작년 12월에 천국으로 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팠다. 평생 국어교사로 강단에서 후학들을 가르치시면서 틈틈이 글을 써서 수필집을 여러 권 내셨던 부지런한 분이셨다.
장례식을 마친 후 경산에 있는 아버지 댁에서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그간 써오신 일기장을 동생과 나눠서 갖고 왔다.
[3] 한 권씩 들쳐서 슬쩍슬쩍 읽어보는데, 마음이 많이 아팠다. 중학교 교사로 일하시면서 빠듯한 월급을 받아서 자식 네 명을 대학까지 보내시고, 아들 둘은 신학대학원과 미국 유학을 보내신 분이시다. 자식 둘을 유학을 보내셨으나 유학비를 원하시는 만큼 보내주지 못하셨던 게 많이도 걸리셨나 보다. 페이지 페이지마다 그에 대한 아쉽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 있었다. 유학 가서 공부하느라 힘이 들었지만, 아내 또한 일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4] 그런 상황에서 부모님은 새벽마다 두 아들의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도, 충분한 재정을 보내주시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일기장 속에 기록된 아버지의 친필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그 애틋한 마음을 읽게 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맏이로서 나는 아버지와 살갑게 살아온 경험이 거의 없다. 남동생은 늦둥이 여동생이 태어나기까지 오랫동안 막내였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왔다.
[5] 그래서 아버지를 만나면 나랑 달리 늘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부러워 나도 그렇게 해보려 애를 써보지만, 타고난 성격이 그런 데다가 아버지한테 많이 야단맞고 자라다 보니 그게 마음대로 쉽게 되질 않았다.
한 번씩 치매기 보이는 말씀을 하실 때도 다정하게 손잡고 사랑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게 느껴진다.
[6] 자식들 키우면서 부모님 심정을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그렇게 철 들어갈 때쯤이면 효도받으셔야 할 부모님이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좀 더 일찍, 부모님 살아생전에 지극정성으로 효도해야 한다.
남은 미련이나 후회나 아쉬움이 없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