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스승의 날이라고 제자들이 점심 식사의 시간을 마련했다. '예배설교학' 전공의 석박사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전도사와 목사들 중 4명이 빠진 상태에서 삼겹살 파티를 했다.

나 역시 학생 신분이었을 때가 있었는데, 스승이 된지는 꼭 26년째다. 그동안 수천 명의 제자들을 가르친 보람이 작지 않다.

[2] 미국에 있는 한인 신학교에서 제일 먼저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하다가 첫 시험을 치르게 할 때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고 있고, 나는 감독으로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시험지에 답을 쓰느라 학생들은 초조와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답을 적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3] 고뇌에 가득 찬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지난 날 무수한 시험들을 치렀던 내 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시험지 앞에서 절절매고 있는 학생들을 쳐다보는 순간 희열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감지할 수 있었다. 솔직히 '통쾌함과 고소함'이 뒤섞인 '못된 마음'이었다. 그동안 당해온 시험들에 대한 되갚음과도 같았다.

[4] 그걸 깨닫고 나자 그런 내가 싫어졌다. 그때 이후로 시험에 관한 한, 최대한 학생들 편에서 배려하고 편의를 봐주려 애를 쓰는 나로 바뀔 수 있었다.
'시험엔 성령님도 떠신다'라는 유머가 있을 정도로 시험은 언제나 사람들을 버겁게 한다.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 신학교에 유학 가서 첫 학기에 일어난 해프닝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5] 'Advanced Hebrew Grammar'라는 Th.M 과목인데,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뿐 아니라 선배들도 모두 힘들어 한 과목이었다. 같이 석사과정을 시작한 선배 목사님은 그 과목을 포기해버릴 정도로 어려운 과목이었다. 점수 3/4에 해당하는 페이퍼를 작성해서 제출했는데, 1994년 12월 23일에 점수를 매긴 페이퍼를 받았다.
메일박스에서 꺼내자마자 까무라칠 뻔했다.

[6] 'F'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총맞은 것처럼 큰 절망이 찾아왔다. 첫 학기 한 과목에서 낙제점수를 받았다면 쫓겨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숙사에 돌아와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 그 참담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애를 써봤다. 하지만 낙제점수 받은 상황은 바뀌지 않는 리얼한 현실이었다. 절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7] 먼저 공부하고 있던 친구 목사에게 전화했더니,
'큰 일 난 거'라며 놀라는 것이었다. 그 친구의 얘기를 듣고 더 큰 낙심과 절망에 빠져버렸다. 그 기막힌 일을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 지 고심하고 있던 차에, 나보다 세 학기 먼저 공부를 시작한 선배 목사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같은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는데, 내 페이퍼 점수를 알아보기 위해서 전화한 것이었다.

[8] 나는 부끄러워서 말 못 하겠다고 하면서 목사님은 뭐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8점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점수를 ABC로 준 거 아니냐?'니까 자신은 '8점 받았다'라고 재차 말했다. 순간 페이퍼 표지에 적힌 내 점수를 확인해보았다. 'ABC가 아니라면 아라비아 숫자란 말인데, 이게 'F'가 아니라면... 혹시나'

[9] 생각이 그렇게 미치자 곧장 '만세!'라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교수님이 내게 준 점수가 'F'가 아니라, 알고 보니 '7'점이었다. 미국 사람들은 '7'자에다가 중간에 옆으로 작대기를 긋는다는 점을 놓쳐버렸던 것이다. 세 학기 선배가 8점을 받았는데, 신입생인 내가 7점 받았으면 잘한 것이라 볼 수 있기에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착각에 의한 황당한 해프닝이었다.

[10] 지금은 재미 삼아 하는 얘기지만, 당시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큰 충격이었다. 그 날의 사건 이후 나는 웬만하면 학생들에게 '‌F학점'을 잘 주지 않는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어떤 스승이 좋은 스승인지 자문자답을 해보았다. 좋은 스승이란 '잘 가르쳐서 잘 배우게 하고 성적도 잘 나오게 하는 교수'가 아닌가 싶다. '주님, 저도 그런 스승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