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부활절이면 어머니가 삶아주신 달걀에 색을 입히던 기억이 납니다. 아기자기한 색깔들을 바라보며 괜히 마음도 들떴던 그 봄날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니 부활절은 단순한 기쁨 이상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부활절 당일을 축제로 기억합니다. 꽃으로 물든 예배당, 밝게 울려 퍼지는 찬양, 서로 주고받는 "부활하셨습니다!" 인사, 그러나 그 찬란한 하루가 지나고 나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리는 놓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근심과 걱정이 다시 우리의 하루를 덮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단 하루의 기념이 아닙니다. 부활은 어제의 축제가 아니라 오늘의 숨결이고 내일의 걸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여기 살아계시다는 믿음이, 우리의 평범하고도 버거운 하루를 다시 일으켜 세웁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한숨 속에서도, 때로는 작은 인내와 미소 속에서도 부활의 생명은 조용히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런 하루를 지나는 중입니다.
목회자로 살아가면서도 부활의 기쁨이 언제나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어떤 날은 회색빛 하늘처럼 마음이 흐리고, 어떤 날은 알 수 없는 무기력에 주저앉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제 안에 날마다 말씀으로 문을 두드리시는 하나님은 새벽의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 늘 제 안에 있는 사망의 권세를 말씀 앞에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풍랑을 잠잠케 하신 주님의 명령처럼, 사망 권세를 꾸짖으실 뿐 아니라, 완전히 정복하신 그분의 당당한 승리처럼,부활의 주님은 말씀으로 날마다 저를 세워주셔습니다.
혹시 오늘 마음이 지치셨나요? 조급해하지 마세요. 주님은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천천히 부활의 빛을 따라 걸어가기를 기다리십니다. 빠른 회복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큰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부활은 순간의 감격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고 내일을 기대하게 하는 숨겨진 힘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오늘도, 내일도, 그분의 살아 있는 숨결 안에서 우리의 하루는 다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 삶 전체를 부활의 이야기로 빚어 갈 것입니다. 부활절 그후, 여러분의 삶에 승리가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