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을 오픈해서 큐티모임을 할 때였다. 마루에 접이식 책상을 펴고 접이식 의자를 놓았다. 그래서 평상시에 마루는 항상 비어 있었다. 그때마다 오시는 분들이 한마디씩 했다. 집이 “왜 이렇게 횅해요? 어디 이사 가세요?”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선교의 마음을 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실천하는 차원에서 우리 가정은 주기적으로 “선교청소”를 한다. 몇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집을 정리하는데, “다음 달에 우리는 선교를 간다”는 마음으로 짐을 정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가구가 거의 없다.
집이 넓지도 않은데 텅 빈 느낌이 들고 목소리가 메아리치는 것은 큰 짐이 없기 때문이다. 곧 선교 떠날 것을 생각하니 식탁이나 매트리스 같은 꼭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가구를 들일 생각을 안 한다. 불편한 점도 있지만 장점이 더 많다. 크게 애쓰지 않아도 삶이 간소화되고 소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물건을 집어 들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대체할 방법은 없을까?' 여러 차례 생각하고 구매하니 과소비나 충동구매를 미리 방지할 수 있다. 아내도 이러한 삶에 동의하였고 20년 넘게 선교청소를 실천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선교를 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우리가 이주하던 해는 고유가로 컨네이너를 비롯한 국제택배를 보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한 명당 이민 가방 2개 뿐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을 거기에 다 담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선교사가 가방을 싸는 것은 “짐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리”하는 것임을 알았다. 가진 물건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버리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는데 좀처럼 짐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평소에 선교청소를 그렇게 해 왔는데도 쉽지 않았다. 대대로 물려오는 족보부터 시작하여, 추억이 깃든 기념품들, 친한 지인들로부터 받은 아기자기한 선물들, 어린 시절 보물처럼 모아온 우표, 동전과 같은 수집품들, 나의 역사를 증명해 주는 것 같은 앨범들, 편지와 일기장, 다이어리, 월급을 털어 샀던 성경주석들까지..
누가 버려주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는 버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로 가득했다. 끊임없는 선교청소를 통해 나름대로 누구보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방 100개로도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결국 내 손으로 다 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나에게 소중한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마치 이 세상을 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내 손으로, 내 의지로 마치길 원하셨다.
마침내 짐들을 모두 정리하고 나니 이 모든 일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문득 드는 생각이 '내 호흡이 다 하는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때, 과연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질까?'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내일 일을 알지 못한다. 삶을 정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정리되지 못한 짐들은 남겨진 가족들이 정리하게 된다. 지금의 나처럼 차근차근 종이 하나까지 살피며 삶을 정리할 시간을 허락받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렇게 삶을 정리해 보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얼마나 큰 은혜며, 감사인가!
삶을 정리해 보니, 평생을 보물처럼 끌어안고 살았던 물건들 대부분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욕심과 집착의 산물들이었다. 주님 부르시면 동전 한 입도 가져갈 수 없는데 무엇을 채우려고 했는지, 왜 그리 높아지는데 마음이 팔려서 살았는지를 회개했다. 또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 대해서, 물질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 본다. 선교를 떠나기 내 안에는 비워야 할 것들은 비워지고, 하나님으로 채워지게 하신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 선교사로 선교지에 살고 있으니 선교청소는 끝났을까? 아니다. 나는 오늘 선교지에서도 선교청소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이니까!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마태복음 8:19,20)
최민기 선교사 - 중남미 과테말라에서 선교사(SEED선교회)로 헌신하며, 세계한인재단(WKF) 과테말라 선교본부장을 맡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의 풍부한 목회경험(예장백석)과 선교학박사(D.miss)로서의 학문적 바탕을 선교현장에 적용하며 구현하고 있다. 큐티 전문강사로도 활발히 활동하며 큐티교재를 집필하였고, 라디오방송 큐티프로그램 진행자, 국제학교 교목 등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 확산에도 적극 참여해 왔다. 저서로는 [진심이 열심을 이긴다](쿰란, 기획출간, 2024)가 있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 양정현 선교사와 사춘기 세 딸(주화, 주빌리, 요벨)과 함께 과테말라에 거주하며 교육선교, 목회자양육/세미나, 화산피해마을구호등의 선교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