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방 두 칸짜리 집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전직 대통령이 있다. 얼마 전,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말이다. 그분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겸손하고 검소했던 대통령으로 손꼽힌다. 퇴임 후에도 돈 벌 기회가 숱하게 많았지만, 모두 사절하고 방 두 칸짜리 집에서 검소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집 시세는 22만 3,000달러.
[2] 우리 돈으로 불과 3억 원 남짓. 그마저도 국립공원관리청에 기부하고 떠났다. 후임자들처럼 특혜받기를 꺼려했고, 사치와 욕심을 피했던 분이다. 사업가 친구들의 전용기를 마다하고 여객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고, 건강이 악화될 때까지 교회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봉사 활동에 헌신을 다했다.
땅콩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1977년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백악관의 주인이 됐다.
[3] 198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 뒤엔 군소리 없이 짐을 챙겨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그러곤 임기 후에 따르는 정치적 부(富) 챙기기를 거부하고, 참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과 달리 강연이나 기업 컨설팅을 해주며 떼돈을 벌려 하지 않았다. 대기업 고문 등 통과의례처럼 주어지는 제의들도 모두 고사했다.
땅콩 사업 재정은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4] 100만 달러 빚을 지고 있었다. 곧바로 사업을 처분하고 가계 회복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양한 주제의 책 33권을 출간해 빚 갚는 데 보탰다. 전직 대통령 연금 21만 700달러도 쏟아부었다. 자신을 거물로 여기지 않았다. 거물인 체하는 사람도 싫어했다. 세금으로 충당되는 전직 대통령 연금, 경호 비용, 기타 경비를 최대한 절약했다.
클린턴 127만, 조지 W. 부시 121만,
[5] 오바마 118만, 트럼프 104만 달러에 비해 연간 49만 6,000달러로 줄였다.
그는 돈을 좇지 않는 자신에 대해 “그게 뭐 잘못된 거냐?”며 “다른 사람들이 그런다고 탓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작년 1월 9일, 국립성당에서 장례식이 끝난 후 그의 시신은 조지아주의 고향 마을로 옮겨졌다.
처음엔 기차 운송이 검토됐다.
[6] 하지만 “차갑고 죽은 시신이 여기저기 거쳐 가면 내가 죽어서도 여러분을 괴롭히게 되는 것”이라는 고인의 생전 바람에 따라 군용 비행기로 직송했다. 77년간 해로했던 아내 로잘린 여사가 2023년 11월 먼저 묻힌 고향 마을 연못 가장자리 버드나무 옆 묘소에 나란히 눕혀졌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선 큰 업적을 남기지 못했으나, 인간적으로나 신앙적으로는 크게 귀감이 되었던 반듯한 분이었다.
[7] 퇴임 후 자신을 위해 지나친 예우를 스스로 높인 우리나라 한 전직 대통령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되는 미국 대통령의 삶이 그가 떠난 이후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사람은 죽고 난 이후에 평가가 남는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세인의 평가를 남기고 떠나간다. ‘유종의 미’(有終之美)라는 말이 있다. 평생을 잘 살았어도 마지막이 좋지 않으면 부정적으로 평가되고 만다.
[8] 평생을 멋지게 잘 살아야 하고, 마지막도 감동을 주는 삶을 살다 가야 한다.
6월 3일,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는 정해졌고, 국민의힘당은 두 명의 후보로 압축이 되었다. 압도적인 1위로 후보가 된 민주당 후보의 선거법 선고가 5월 1일 3시로 결정이 나 있다. 앞으로 이 나라의 대권을 누가 잡을지 걱정이 크다.
지미 카터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가 쉬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9] 하도 많이 실망하다 보니 이젠 대통령 선거에 대한 기대마저 꺼버린 이들이 많음을 본다. ‘케세라 세라’(Que será, será.) ‘될대로 되라!’라며 모든 소망을 포기한 이들이 너무 많다. 불의와 불법을 보고도 오래도록 침묵하는 것 같아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이들도 많다. ‘기도하면 뭐하나?’라며 불평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10] 더딘 듯 보여도,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도 계속 돌아가고 있음을 보라. 우리 생각에 너무 느리고 답답하게 돌아가고 있을지라도,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믿고 끝까지 신뢰의 끈을 놓지 말라. 아주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더라도 낙심하거나 의심하지 말라. 천천히 느릿느릿 돌아가는 듯해도 ‘주의 뜻대로’(ut voluntas Domini) ‘충실하고 완벽하게’, 그리고 ‘제대로 온전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