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Photo : ) 신성욱 교수

[1]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고, 친구들처럼 운동장에서 뛰놀지도 못했다. 대신 그는 책을 좋아했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기를 좋아했다. 하루는 책장에서 우연히 한 권의 중국 선교 보고서를 꺼내 읽게 되었다. 낯설고도 먼 나라, 중국... 우상 숭배와 영적 어둠에 둘러싸인 그 땅의 이야기에 그의 마음은 강하게 끌렸다.
‘하나님, 저를 그곳으로 보내 주세요.’

[2] 아무도 모르게, 소년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기도했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그는 의학을 공부하며 선교를 준비했다. 돈도 없고, 후원자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라는 단 하나의 믿음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방세를 내지 못해 집을 나와야 할 상황에서도,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그러면 놀랍게도 기적처럼 누군가의 손을 통해 꼭 필요한 돈이 도착하곤 했다.

[3] 당시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해안 도시에서만 머물던 시절, 중국 내륙 깊숙한 곳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가야 한다는 부르심을 받았다.
마침내 21세의 나이에 그는 배를 타고 중국으로 향했다.
낯선 언어, 낯선 문화,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그는 중국인의 복장을 입고 그들처럼 살아가기 시작했다.

[4] 조롱받고, 손가락질당하고, 때로는 돌에 맞기까지 했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이라면, 가장 낮은 길이라도 기꺼이 걷겠습니다.’
그가 바로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다. 그는 중국내지선교회를 세우고, 중국 오지에 수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1865년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는 런던의 조용한 회의실에서 한 남자를 마주했다.

[5] 그는 영국의 ‘조지 스토트’(George Stott)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목발을 짚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걸음은 더뎠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림이 없었다.
“스토트 씨, 당신의 지원서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중국은 험한 곳입니다. 건강한 선교사들도 지치고, 두려워 떠나기도 하는데... 당신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조지 스토트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6] “두 다리를 가진 사람들은 위기가 오면 도망갑니다. 하지만 저는 도망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보내신다면 저는 그 자리에 남겠습니다. 끝까지요.”
그 말에 허드슨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고, 조지 스토트는 1865년, 목발을 짚고 중국 원저우로 향했다. 그의 헌신은 마침내 원저우를 ‘중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게 만들었다. 오늘날 원저우는 중국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이 있는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7] 한쪽 다리를 잃고 중국의 원저우라는 한 도시를 얻은 남자가 바로 조지 스토트이다.
허드슨 테일러는 물론 조지 스토트 선교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산 설고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에서 그냥 지내는 것조차도 힘겹거늘, 목발을 짚고 다니는 불편한 몸으로 그 험한 중국 땅에 선교를 자청해서 가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그가 한 말이 나를 더욱 낯 뜨겁게 만들었다.

[8] ‘자신은 한 쪽 다리밖에 못 쓰는 도망갈 수 없는 몸이라 중국 선교에 적합자’라고 한 말 말이다. 다른 이 같으면 불구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부정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을 텐데, 그는 오히려 그 불리한 상황을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사명의 기회로 이해할 줄 아는 참 믿음의 사람이었다.
우리 하나님의 섭리는 이처럼 오묘하고 놀랍기만 하다.

[9] 몸이 불편한 이도 저런 사명감 가득 찬 자세를 가졌다면 건강한 두 손 두 팔을 다 가진 건강한 나는 얼마나 더 크고 강한 사명감으로 충만해져야겠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허드슨 테일러, 조지 스토트… 그들의 공통점을 무엇일까? 그들은 그 어떤 부정적이고 불리한 상황도 개의치 않고 모든 걸 하나님을 대신한 사명의 기회로 해석하고 도전했던 인물들이었다.
오늘 우리도 그들처럼 각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하는 거룩한 도구들이 다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