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쉐인 아이들먼 목사의 기고글인 '목회자들에게: 코로나19 이후 5년 동안 교회가 배운 것들'(Dear pastors: What churches learned 5 years since COVID)을 2일 게재했다.
아이들먼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랭커스터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북쪽 웨스트사이드 크리스천 펠로우십의 창립자이자 수석 목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코로나19 이후 많은 교회가 문을 닫거나 신도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직도 교회에 가는 것이 두렵다"거나 "온라인 예배가 더 편하다"는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담대하게 신앙을 지키는 교회들은 큰 성장을 경험했다. 이 현상의 본질은 분명하다. 사람들은 진리를 갈망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에서 목회하는 필자는 이러한 어려운 시대에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큰 도전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는 교회의 토대뿐만 아니라 많은 목회자의 마음까지 드러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목회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담대함을 회복하라
목회자 여러분,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담대하게 교회를 이끌어가도록 격려하고 싶다. 그러나 이 담대함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힘으로 주어진다. 그리고 대가가 따를 것이다. E.M. 바운즈(E.M. Bounds)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을 살리는 설교는 설교자에게 큰 희생을 요구한다. 자아의 죽음, 세상에 대한 십자가형, 그리고 영혼 깊은 곳에서의 탄식이 필요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만이 생명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설교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최근 "우리의 속박 속에서 경험하는 부흥"이라는 글을 작성하면서 이를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다시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은 몇 가지 핵심 내용이다.
1. 성령의 불은 전염된다
이제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신분, 지위, 성취를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신다(행 10:34).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찾으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 그러면 자신이 먼저 깊이 경험한 후에야 성도들을 '생수의 샘'으로 인도할 수 있다. 성령의 불은 전염된다.
이것이 교회의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인 수가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성령의 능력이 여러분의 삶에 머물 것이라는 점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는 성령의 일을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한복음 14:12).
당신의 교회가 신약 성경에 나오는 교회의 모습과 다르다면, 과연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
2. 교회는 무덤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생명력 있고 활기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물어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강(요 7:38)은 어디에 있는가?" 영적 각성(부흥)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어낼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한다.
레위기 9장 23-24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모든 백성 앞에 나타났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번제를 사르셨다. 불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그 불을 계속 유지하는 책임은 지도자들에게 있었다. 그들은 재를 치우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해야 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교만이라는 재를 치우고, 겸손이라는 연료를 더해야 한다.
기도 모임과 찬양 예배를 통해 교회에 다시 불을 붙이자. 먼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서 울부짖으며 담대함을 구하라. 위에서 언급한 부흥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다. 하나님은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이시다(히 11:6).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박 속에서 부흥을 허락하실 때, 그 불을 지속시키는 연료는 찬양, 겸손, 그리고 순종이다.
3. 깨어짐의 아름다움
깨어짐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교만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하나님께 깨어졌다. 여호수아의 겸손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뵙고 완전히 무너졌다(사 6:5). 예레미야는 교만한 백성을 위해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렘 13:17).
시편은 다윗의 깨어짐으로 가득 차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감람나무의 열매가 으깨져야 기름이 나오듯이, 깨어짐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땅에 쓰러지고 눈이 멀어야만 참된 겸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당신은 하나님께 붙잡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인가, 아니면 영적으로 죽어가며 광야에서 불평하는 소리인가?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다.
4. 우리는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은 불을 내리신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잃으면 담대함과 성령의 불도 함께 잃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면 그분도 우리에게 돌아오신다(슥 1:3). 교회의 힘은 숫자가 아니라, 순결함과 영적 능력에 있다. 하나님께는 다수가 필요 없다. 그분이 다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업을 운영하는 CEO가 아니라, 민족을 깨우는 파수꾼이다. 기도는 설교 후 맺음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도와 예배가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이 절박한 시대에 부흥을 기대할 수 없는 이유는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미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면 하나님이 부어주실 공간이 없다.
자기 뜻대로 하는 마음, 자기 힘으로 하려는 마음,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모든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계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