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디모데후서 4:7-8)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가운데 ‘오수의 개’가 있었습니다. 전라북도 임실군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충직하고 총명한 개 한 마리를 길렀습니다. 어느 날, 아랫마을 부자 집의 잔칫집에 초대되어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술도 잔뜩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마침 들불이 나서 김개인이 누워 잠자고 있는 곳으로 불길이 다가왔습니다.
밤늦게까지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주인을 기다리던 김개인의 개가 주인을 찾아 나섰다가 들불이 난 곳 근처에 주인이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짖으며 옷을 물고 흔들어 깨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개는 근처에 있는 개울가로 뛰어가서 온몸에 물을 적셔서 주인이 자는 곳 주변을 뒹굴며 풀에 물을 묻혔습니다. 다시 가서 몸에 물을 묻혀 와서 주인 근처 풀에 물을 묻혀 불길이 주인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너무 지친 개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김개인은 온 몸이 물에 젖고 재로 뒤덮여 죽은 자기 개를 발견하고 전후 사정을 깨달았습니다. 김개인은 죽을 때까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 개를 슬퍼하며 정성껏 묻어 주고 평소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무덤 앞에 꽂았는데, 그 지팡이가 살아서 나무가 되어 자랐습니다. 사람들은 이 기이한 나무를 오(獒:개)수(樹:나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곳이 바로 오수라는 곳입니다. 이 이야기는 전에 내려오는 이야기지만 개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옛날 한국에는 개나 고양이를 집 안에서 기르는 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애완(愛玩)동물 내지 반려(伴侶)동물이란 이름으로 개도 고양이도 집안에서 기르면서, 같이 먹고, 자면서 가족과 같이 생활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옛날부터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거두어 주고 사랑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은혜를 입은 자들이 은혜를 베푼 자를 배반하고 반역하며 심지어 해코지까지 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개는 주인을 배반하지 않지만 인간은 은혜 베풀어 준 사람을 배반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신 주님을 배반하는 자들도 많습니다. 교회 역사에 나오는 무수한 순교자들은 죽음 앞에서도 신앙의 절개를 지켰지만, 죽음이 두려워 신앙을 버린 배반자들도 허다합니다. 개는 배반하지 않지만 인간은 배반 합니다. 따라서 배반자들을 ‘개만도 못한 인간’이라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핍박이 닥쳐와도 결코 주님을 배반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을 배반하면 세상에서 잠시 동안 더 살지 모르지만 영원한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됩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일, 이것이 신자들이 걸어야 할 십자가의 길입니다.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 합시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