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 유안진

휴학생의 아버지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씀씀이가 하도 헤퍼 용돈 적게 줬더니
등록금을 쓰고 휴학해버렸다고
돈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식 아까워서 그랬다는데

맞다!
하느님 아버지도
내가 아까워서
낡은 날 더 망치게 될까 봐
달라는 대로 즉각 다 주시진 않는 거다

   이 시는 서울대 교수였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로 유명한 유안진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입니다. 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는 오랫동안 교수로 지냈던 유안진 시인의 체험에서 나온 시 같습니다. 시인은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에서 아버지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발견한 아버지 마음에 빗대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철없는 휴학생과 철없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성도들의 삶을 대비합니다.

천주교 신자인 유안진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너무 풍요로워 우리 인생이 망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다 응답하시지 않고, 우리 욕심대로 이뤄지지 않는 삶의 이유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시는 절제하지 못하는 그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 가까이에 있는 휴학생 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시인은 휴학생 아버지의 하소연을 소개하며 아버지 사랑을 보여줍니다. 휴학생 아버지는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식이 아까워서 돈을 절약하라고 했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돈을 절약하라고 말한 것은 돈의 귀함을 모르고 인생을 모르는 채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없는 자식은 등록금을 써 버리고 휴학을 해 버렸습니다. 뒤늦게 자식이 휴학한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학교를 찾아온 듯합니다.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깊은 탄식이 있습니다. 철없는 휴학생보다 더 철없는 모습이 현대 신앙인들에게 있습니다.

풍요병(Affluenza)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어플루엔자는 풍요를 의미하는 어플루언스(Affluence)와 독감을 뜻하는 인플루엔자(Influenza)의 결합어입니다. 이병은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기대하여 더 탐욕스러운 존재가 되어가는 현대인의 병리를 설명합니다. 이 말은 1997년 미국 PBS 텔레비전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된 뒤, 2001년 동명의 책 <어플루엔자> 출판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여기서 어플루엔자를 설명하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풍요병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등록금을 다 쓰고 휴학한 학생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풍요병 환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고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대 그리스도인도 풍요병 환자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시는 일종의 풍자(satire)시입니다. 유안진 시인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풍요병을 앓아서 철없는 현대 그리스도인의 미성숙을 풍자합니다. 이 시<아버지의 마음>를 읽으며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을 때 부끄러움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시를 읽으며 또 다른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거나 외면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휴학생처럼 떼를 쓰기도 합니다. 휴학생은 등록금을 썼지만 풍요병을 앓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써 버립니다. 하나님 마음을 외면하니 탐욕적인 삶을 거리낌 없이 삽니다.

철없는 휴학생처럼 우리도 철이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마음을 몰라서 감사드리지 못하고 기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오늘의 삶을 즐기지 못하고 그 삶을 충분히 누리지 못합니다. 받은 복을 보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멸시하는 미성숙한 증거입니다.

이 시를 감상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관심을 두지 못했음을 회개했습니다. 아버지 마음을 모르는 자식은 나이와 상관없이 미성숙한 자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 신앙인은 직분과 신앙년조와 상관없이 미성숙한 신앙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모쪼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신앙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유안진(柳岸津)시인은 오랫동안 서울대 교수로 지냈고 지금은 서울대 명예교수입니다. 유안진 시인은 경상북도 안동 무실 유씨로 양반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고향인 안동 임동면 용계마을은 여성의 절개와 남성의 의기가 깃든 곳으로 유명했습니다. 남편상을 당하자 손수 삭발하고, 3년간 시묘를 마친 뒤 단식 끝에 자결했다는 젊은 아내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고향 주변에는 많았답니다. 진사에 급제했던 그의 증조부는 기미년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일본군 총에 맞아 돌아가셨을 만큼 성품이 대쪽 같았습니다.

시인은 열네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대전으로 가야 했습니다. 여기엔 가슴 아픈 가족사가 숨어있습니다. 시인에게는 남동생이 셋 있었는데 채 자라지도 못한 채 모두 죽었답니다. 문중에서는 딸을 낯선 외지로 내보내 설움과 푸대접을 받는 액땜을 치르지 않으면, 대가 끊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부모는 어린 딸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부친은 주위로부터 새장가를 들어야 한다는 부추김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딸은 외지로 보낸 채, 교회로 산사로 점집을 돌며 자식을 점지해달라 애원하며 살았던 서러운 세월이었습니다.

유안진은 고교 2년생일 때 백일장에서 만난 박목월 시인을 그의 ‘문학적 스승’으로 생각합니다. 박목월 시인이 백일장에 출품한 유안진 학생의 시를 칭찬해주었고, 이 일을 잊지 못했던 유안진은 61년 서울대 교육심리학과에 입학한 후 박목월 시인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양대로 놀러 오게”라는 목월 선생의 답장을 받고 유안진은 박목월을 만나러 한양대로 갔습니다. 그 만남이 인연이 되어 유안진의 문학 공부는 계속되었습니다.

유안진은 1965년~1967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박목월은 서울대 교육 심리학과 재학 중이었던 유안진을 시인으로 추천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합니다. 전공이 문학과 상관없는 학생이라 계속 시를 쓰지 않으리라고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유안진은 열심을 습작시를 썼고, 유안진의 열정적인 시작 활동을 본 박목월이 마침내 현대문학에 추천했습니다.

국비 유학 후 한국 교육개발원에서 봉사하고 여러 대학 강사를 거친 후 81년에야 비로소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겨울이면 연탄재를 깔고 오르내리던 고샅길. 서울 봉천동 산꼭대기 17평 집에서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 8명이 한데 모여 살았습니다. 37세의 나이로 막내아들 출산을 위해 입원한 병원비를 사정사정해서 월부로 갚았답니다.

혹자는 유안진이 겪은 고난은 문학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고 말합니다. 유안진은 수필가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특히 1986년 이향자, 신달자 시인과 함께 펴낸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표제작품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유안진 시인은 시와 소설, 그리고 수필의 장르를 넘나드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습니다.

유안진은 타고난 시인이요 시를 사랑하는 시인입니다. 유안진 시인은 “문학은 해볼 만한 것이죠.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니까 사실의 기록이고, 문학은 실패한 자의 기록이죠. 그래서 진실하거든요. 실패한 자가 큰 시, 위대한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세상에서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문학뿐입니다. 정말로 시다운 시, 제가 바라는 만큼의 좋은 시를 한번 써보고 싶어요. 소원이 있다면 그것뿐이에요.”라고 말했답니다. 이 말에 시인이 이해하는 시의 매력이 담겨 있습니다.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Photo : )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