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한선교는 '한국교회의 몫'
북한선교는 선교기관이나 선교사들만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한국교회의 몫'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도행전 1:8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고 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선교적 땅 끝은 바로 북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기독교의 전래도 북한에서부터 비롯되었고 해방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사의 단절을 가져오게 한 것도 북한이다. 현실적으로도 미국과 일본보다 남한이 북한선교 사역을 담당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2. 북한선교 환경분석
권력세습 10년째를 맞고 있는 북한 김정일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내부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고 대외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과 종교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렘마에 처해 있다. 내부통제를 위해서는 '선군통치'의 명분으로 군대를 앞세워 외부사조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며, 외부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통한 위협으로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남한에 대해서는 민족공조 논리로 반미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반미투쟁은 6.25전쟁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전한반도의 공산화 통일목표 달성에 미국과 주한미군이 방해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남한은 민족주의와 민족감정에 휩싸여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국가이익과 북한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미기운이 교회와 교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의 반기독교 정책의 과정과 북한의 실정, 그리고 북한선교환경의 외적요인을 분석하여 한국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가. 북한의 反기독교 정책
해방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의 소비에트화를 위해 조만식 장로를 이용하려 했으나 '예수쟁이'를 앞세워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공산혁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김일성으로 낙점 되었다. 소련군정 3년을 거처 1948년 9. 9일에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혁명정권으로 시작되었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와 무신론적 혁명체제인 공산주의와 병존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므로 북한정권은 기독교를 혁명의 방해물로 간주하여 다음과 같은 반기독교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제1단계는 '제한'(1945-50)이다. 1946년부터 민주개혁이라는 명분아래 교회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고 '미신타파 돌격운동' 등 反종교 운동을 전개하여 종교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제2단계는 '탄압'(50-53)이다. 특히 6·25전쟁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을 '미제의 앞잡이', '반동 종교인' 등으로 몰아 철저히 박해하고 탄압했다.
제3단계는 '말살'(53-60년대 말) 이다. 유일사상체계를 정립한 60년대 말까지 북한은 소위 '지구상에서 종교와 미신이 없어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고 선전했다.
제4단계는 '복원'(70-93년까지) 이다. 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헌법을 개정(72.12월)하여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부여하는 한편, 일부 종교단체를 복원하는 등 종교정책 변화를 시도했으며 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유치하면서 교회와 성당을 건축했다.
제5단계는 '활용'(94-현재까지)이다. 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으로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기독교적인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지난 10년 동안 종교단체와 종교시설을 적절히 활용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남한과 국제종교단체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기독교관은 부정적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기독교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선그리스도교도연맹이 봉수교회, 칠골교회 등 2교회를 가지고 연맹이라고 하는 저의를 읽어야 하며 보여주는 가정교회와 보이지 않는 지하교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은 '남반부 기독교의 배타적 분파주의를 철저히 활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고, 교회 건축보다 문화회관 건립비용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장차 중국의 3자교회 수준으로까지 변할 수는 있어도 종교가 체제유지에 방해된다고 판단하는 한 쉽게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나. 북한교회 실태와 전망
무신론적 공산체제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공존하기 어렵다. 북한교회 현황에 대해 조그련 중앙위원회 오경우 서기장은 '현재 신자 수는 1만3천여 명이며 대부분 신자들이 연맹의 맹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 30여 명의 목사를 포함해 전도사?장로 등 교직자가 300여 명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명과 지방 인민회의 대의원 수십 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평양시거주 교인들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북한 전역에 500여 개의 가정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봉수교회(담임목사 손효준)에서는 목사와 전도사, 장로 등 30여 명의 교직자와 300여 명의 교인이 있으며, 칠골교회(담임목사 황민우)에는 10여 명의 교직자와 100여 명의 교인이 있다.
평양 신학원은 2000년 9월부터 5년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해 남측의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강의실, 친교실, 교수실, 도서실 등을 갖춘 2층짜리 새 교사를 건설했다. 평양과 지방에서 선발된 기독교 신자들이 성서신학?역사신학?예배학 등 기본 과목과 외국어, 세계사 등을 배운다.
향후 북한의 기독교정책 전망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의 자유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한.만 국경부근으로 유입되는 성경과 선교용 영상물 색출노력은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기독교정책은 표면적인 유화책과 이면적인 탄압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양면성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 북한선교를 위한 외부환경 변화
첫째, 냉전종식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퇴조이다. 무신론적 공산주의는 70년만에 종주국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국가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에게 보다 낳은 제도임이 검증된 이상 북한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북한선교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
둘째, 9.11 테러이후 북한은 이라크. 이란과 함께 미국에 의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목격했기 때문에 세계최강국 미국과 맞서기 어렵다는 점도 북한선교의 기회를 앞당기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미국 부시대통령의 재선은 북한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동북아와 한반도에 안정을 도모하고 인류에게 재앙이 될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미국의 정책이 힘을 얻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천부인권설(God given Right)에 토대를 두고 미국 의회가 만장일치로 가결한 '북한자유화를 위한 인권법안'(human rights and freedom in the DPRK)은 북한 선교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기독교의 힘이라는 것을 참고로 하여 북한선교에서도 한. 미 연합이 필요하다. 미국 전체인구의 33%가 백인 개신교도인데 이들의 부시 지지율은 무려 68%였으며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백인 개신교 신자로 교회에 자주 가는 사람'(white protestant church goers)들이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신앙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90%가 부시에게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프랑스의 기소르망은 저서‘메이드 인 USA’에서 '미국사회는 매우 종교적이며 주일이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린다'고 소개했다.
넷째, 한국교회의 북한선교 열정이다. 북
북한선교는 선교기관이나 선교사들만이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에서 깨어나 '한국교회의 몫'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사도행전 1:8에서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고 했는데 지구상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선교적 땅 끝은 바로 북한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기독교의 전래도 북한에서부터 비롯되었고 해방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교회사의 단절을 가져오게 한 것도 북한이다. 현실적으로도 미국과 일본보다 남한이 북한선교 사역을 담당하는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2. 북한선교 환경분석
권력세습 10년째를 맞고 있는 북한 김정일 체제는 사회주의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내부통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고 대외지원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혁. 개방과 종교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는 딜렘마에 처해 있다. 내부통제를 위해서는 '선군통치'의 명분으로 군대를 앞세워 외부사조 유입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으며, 외부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핵무기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통한 위협으로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남한에 대해서는 민족공조 논리로 반미운동을 부추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반미투쟁은 6.25전쟁의 뼈아픈 실패를 교훈 삼아 전한반도의 공산화 통일목표 달성에 미국과 주한미군이 방해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남한은 민족주의와 민족감정에 휩싸여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국가이익과 북한선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반미기운이 교회와 교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북한의 반기독교 정책의 과정과 북한의 실정, 그리고 북한선교환경의 외적요인을 분석하여 한국교회가 북한선교를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가. 북한의 反기독교 정책
해방이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북한의 소비에트화를 위해 조만식 장로를 이용하려 했으나 '예수쟁이'를 앞세워 폭력을 수단으로 하는 공산혁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김일성으로 낙점 되었다. 소련군정 3년을 거처 1948년 9. 9일에 수립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은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혁명정권으로 시작되었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와 무신론적 혁명체제인 공산주의와 병존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므로 북한정권은 기독교를 혁명의 방해물로 간주하여 다음과 같은 반기독교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제1단계는 '제한'(1945-50)이다. 1946년부터 민주개혁이라는 명분아래 교회재산을 몰수해 국유화하고 '미신타파 돌격운동' 등 反종교 운동을 전개하여 종교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제2단계는 '탄압'(50-53)이다. 특히 6·25전쟁기간 동안 기독교인들을 '미제의 앞잡이', '반동 종교인' 등으로 몰아 철저히 박해하고 탄압했다.
제3단계는 '말살'(53-60년대 말) 이다. 유일사상체계를 정립한 60년대 말까지 북한은 소위 '지구상에서 종교와 미신이 없어진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고 선전했다.
제4단계는 '복원'(70-93년까지) 이다. 70년대 남북대화가 시작되자 헌법을 개정(72.12월)하여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부여하는 한편, 일부 종교단체를 복원하는 등 종교정책 변화를 시도했으며 89년 평양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행사를 유치하면서 교회와 성당을 건축했다.
제5단계는 '활용'(94-현재까지)이다. 94년 7월, 김일성의 사망으로 정권을 장악한 김정일은 기독교적인 배경이 전혀 없는 사람으로 지난 10년 동안 종교단체와 종교시설을 적절히 활용했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선전하고 남한과 국제종교단체들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기독교관은 부정적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기독교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조선그리스도교도연맹이 봉수교회, 칠골교회 등 2교회를 가지고 연맹이라고 하는 저의를 읽어야 하며 보여주는 가정교회와 보이지 않는 지하교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북한은 '남반부 기독교의 배타적 분파주의를 철저히 활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고, 교회 건축보다 문화회관 건립비용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장차 중국의 3자교회 수준으로까지 변할 수는 있어도 종교가 체제유지에 방해된다고 판단하는 한 쉽게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나. 북한교회 실태와 전망
무신론적 공산체제와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공존하기 어렵다. 북한교회 현황에 대해 조그련 중앙위원회 오경우 서기장은 '현재 신자 수는 1만3천여 명이며 대부분 신자들이 연맹의 맹원으로 등록돼 있다'고 밝혔다. 30여 명의 목사를 포함해 전도사?장로 등 교직자가 300여 명이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명과 지방 인민회의 대의원 수십 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평양시거주 교인들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고 북한 전역에 500여 개의 가정교회가 있다는 것이다. 봉수교회(담임목사 손효준)에서는 목사와 전도사, 장로 등 30여 명의 교직자와 300여 명의 교인이 있으며, 칠골교회(담임목사 황민우)에는 10여 명의 교직자와 100여 명의 교인이 있다.
평양 신학원은 2000년 9월부터 5년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난해 남측의 대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남북한선교통일위원회의 후원을 받아 강의실, 친교실, 교수실, 도서실 등을 갖춘 2층짜리 새 교사를 건설했다. 평양과 지방에서 선발된 기독교 신자들이 성서신학?역사신학?예배학 등 기본 과목과 외국어, 세계사 등을 배운다.
향후 북한의 기독교정책 전망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상의 자유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한.만 국경부근으로 유입되는 성경과 선교용 영상물 색출노력은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기독교정책은 표면적인 유화책과 이면적인 탄압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는 양면성을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다. 북한선교를 위한 외부환경 변화
첫째, 냉전종식과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퇴조이다. 무신론적 공산주의는 70년만에 종주국 소련이 붕괴되고 동구국가들이 잇따라 무너졌다. 자유민주주의가 인류에게 보다 낳은 제도임이 검증된 이상 북한도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은 북한선교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
둘째, 9.11 테러이후 북한은 이라크. 이란과 함께 미국에 의해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이라크 전쟁에서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목격했기 때문에 세계최강국 미국과 맞서기 어렵다는 점도 북한선교의 기회를 앞당기고 있다고 하겠다.
셋째, 미국 부시대통령의 재선은 북한선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즉 동북아와 한반도에 안정을 도모하고 인류에게 재앙이 될 핵무기를 확산시키지 않겠다는 미국의 정책이 힘을 얻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천부인권설(God given Right)에 토대를 두고 미국 의회가 만장일치로 가결한 '북한자유화를 위한 인권법안'(human rights and freedom in the DPRK)은 북한 선교에 매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기독교의 힘이라는 것을 참고로 하여 북한선교에서도 한. 미 연합이 필요하다. 미국 전체인구의 33%가 백인 개신교도인데 이들의 부시 지지율은 무려 68%였으며 CNN 등 미국 언론들은 '백인 개신교 신자로 교회에 자주 가는 사람'(white protestant church goers)들이 부시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을 신앙이라고 응답한 사람은 90%가 부시에게 투표한 것으로 조사됐으며 프랑스의 기소르망은 저서‘메이드 인 USA’에서 '미국사회는 매우 종교적이며 주일이면 사람들이 교회로 몰린다'고 소개했다.
넷째, 한국교회의 북한선교 열정이다.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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