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은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의 존재 방식을 다양하게 표현해 놓고 있습니다. 세상의 소금(마 5:13), 세상의 빛(마 5:14), 그리스도의 종(고전 7:22),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 그리스도의 사신(고후 5:20), 그리스도의 병사(딤후 2:3),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 모두 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다채로운 표현들입니다. 정체성을 잃으면 존재를 잃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으면 세상에서 그 존재와 역할을 상실하게 됩니다.

키위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뉴질랜드에서만 사는 토종새로서 그곳의 비옥한 토양 속에 서식하는 벌레를 잡아먹고 삽니다. 나는 법을 잊어버린 새이다 보니 새라고 부르기도 뭐합니다. 날개는 퇴화하여 없어지고 긁은 다리로 무거운 몸을 지탱합니다. 주로 밤에만 활동하기에 눈도 자연히 퇴화되고 맙니다. 단지 후각과 발의 감각만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땅을 밟아, 움직이는 벌레의 냄새나 촉감으로 먹잇감을 찾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체 부위인 날개와 눈은 퇴화되고 부리와 다리만 발달된 것입니다. 키위는 새의 모양은 하고 있지만 새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새입니다.

창공을 가르며 활공하는 다른 새들처럼 날지 못하는 키위의 형편이 정체성을 잃은 그리스도인의 신세와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키위처럼 흐려진 영안으로 진위를 가늠하지 못한 채 육신의 소욕에 이끌려 이 세상을 뒤뚱거리며 살아갑니다. 정체성을 잃는다는 것은 제 이름값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름값 혹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그에 걸맞게 인식하고 그 자격과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때에만 가능하게 됩니다.

누구나 제 이름값 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름값이란 세상에 알려진 상태나 정도에 맞는 노릇이나 됨됨이를 일컫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평가할 때 쓰는 “이름값도 못한다” 혹은 “이름에 먹칠을 했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름이 본래 가지는 의미와 가치에 그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턱없이 못 미쳐 그 이름의 의미와 가치를 퇴색시켰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름과 실상이 부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 더욱 그러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 그리스도의 종, 편지, 사신, 병사와 향기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영예로운 별명들입니다. 그 이름값대로 살지 않으면 무익한 종이 되고, 제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채 발신인에게 되돌아온 편지가 되고, 자신을 파송한 왕이나 국가의 위신을 실추시키는 무능한 사신이 되며, 제대로 전쟁 한 번 치르지도 못하고 백기 드는 오합지졸이 되고 맙니다. 짠 맛을 잃고서 길가에 버려진 소금처럼, 어둠에 갇혀서 발하지 못하는 빛처럼 이 세상에 하찮은 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결국 무참히 짓밟히고 맙니다(마 5:13).

바른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 각각의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정체성도 중요합니다. 하늘나라 사신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했던 이들이 있다면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겨자씨 같이 작은 그들이지만 자신 안에 하나님 나라를 품고 있어 신앙은 깊고 기개는 웅대합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이름값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이름값에 맞게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하나 둘 세워질 때 새들이 깃든 나무처럼 모든 것을 품는 하나님 나라와 그 질서는 이 땅에 확장됩니다. 하나님은 새창조의 역사를 그렇게 써내려 가시길 원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