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 말자 / 박목월
하루에도 나는
몇 번이나 소금기둥이 된다.
롯의 아내여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
믿음이 약한자여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서
나는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았자
유황과 불이 퍼붓는
타오르는 소돔과 고모라
나의 어리석은 미련이여.
나는 하루에도
하루에도 몇 차례나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된다.
신문지로 만든 관에
마음이 유혹되고
잿더미로 화하는
재물에 미련을 가지게 되고
오늘의 불 앞에 마음이 흔들리고
뱀의 혀의 꾀임에 빠져
뒤를 돌아본다.
거듭 믿음이 약한 자여
오로지 주를 향한 생명의 길을
앞만 보고 걸어가자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자.
이 시는 박목월의 신앙시 <돌아보지 말자>입니다. 박목월은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정지용은 ‘북에는 소월이 있고, 남에는 목월이 있다’라고 말했답니다. 여기서 소월은 김소월이고 목월은 박목월입니다. 정지용은 박목월의 시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시인 정지용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데, 시인으로 정지용은 평가받아야 마땅합니다. 잘 알려진 <향수>를 포함해 많은 명시를 남긴 걸출한 시인입니다. 특히 정지용의 신앙시는 세심히 살펴보아야 할 명시(名詩)들이 많습니다. 최근 정지용이 자진 월북한 것이 아니라 납북되었다는 주장(조선대 임영천 교수등)이 있고, 정지용의 신앙시에 대한 활발한 탐구가 있습니다. 모두 한국 시 발전에 고무적인 일입니다.
박목월은 인생 후반부에 많은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박목월은 말년에 신앙으로 거듭났고 교회 장로님이 되었습니다. 박목월 시인의 따님을 만나 교제했습니다. 따님의 말에 의하면 박목월 시인은 늦게 큰 은혜를 체험하고 눈물로 찬송가를 부른 기억이 선명하다고 하셨습니다. 박목월의 신앙시 대부분은 그의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에 담겨 있습니다.
박목월은 성경 스토리나 성경 구절을 중심으로 한 시들을 많이 썼습니다. 예컨대, <오른편>, <자리를 들고>, <감람나무 시편 128편 3절>, 등등 구체적인 성경구절을 이용한 시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시들을 일반적인 신앙시와는 구별되는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신앙고백이 담겨 있다. 심지어 <말씀을 전함으로 기독교인이 되자>라는 시도 있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이미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있어 설교 제목처럼 보입니다.
위의 시 <돌아보지 말자>는 창세기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 사건이 배경입니다.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에 된 롯의 아내 이야기가 이 시의 모티브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황불이 쏟아지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도망치던 롯의 아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또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된 사건이 모티브입니다.
시인은 “하루에도 나는 몇 번이나 소금기둥이 된다.”라고 고백합니다. 탐욕과 불순종 때문에 롯의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자신은 하루에도 몇 번씩 소금기둥이 된답니다. 시인은 탐욕과 불순종으로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로 자신을 비춰보는 성찰과 반성을 표출합니다. 박목월 신앙시의 독특한 가치는 성경이 주는 가르침을 처절하고 과감하게 적용하는 점입니다.
현실 세상에서 욕망 가득한 삶을 살면서 넘어지고 깨지는 처절한 삶을 시인은 “하루에도 나는/ 몇 번이나 소금기둥이 된다”에 담습니다. 소금기둥은 이미 설명한 것처럼 탐욕, 불신, 그리고 불순종의 상징입니다. 시인은 롯의 아내와 같은 수준의 악을 가진 자신의 허물을 토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서’ 하루에도 몇 번씩 뒤돌아보는 자신을 향해 ‘믿음이 약한 자여’라며 질책합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유황과 불’을 피할 수 없는 자신은 ‘신문지로 만든 보잘것없는 관(冠)’에 “마음이 유혹되고/ 잿더미로 화하는/ 재물에 미련을 가지게 되”는 약함을 고백합니다. 시인은 ‘관’으로 명예와 권력을 ‘재물’로 욕망을 그리며 이것들의 허망함을 신문지와 잿더미로 설명합니다. 애석하게도 시인과 우리는 이런 허망한 것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뒤돌아보며 소금기둥이 됩니다.
시인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현실의 욕망 앞에 롯의 아내와 같이 무너지는가 하면, 아담과 해와를 유혹했던 그 유혹에 속수무책인 자신을 고백합니다. “뱀의 혀의/ 꾀임에 빠져/ 뒤를 돌아본다”라고 자신을 고발합니다. 인류를 죄인으로 만든 에덴동산 불순종 사건 중심에 자신을 세웁니다.
자신에 관한 부정과 정죄를 한 시인은 해결책을 스스로 제시합니다. 약하고 악해서 넘어지고 자빠지는 무기력한 자신의 한계를 이기는 길은 시의 마지막에 담았습니다. “오로지 주를 향한 생명의 길을/ 앞만 보고 걸어가자/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자”라고! 앞(주)만 보고 걸어가야 하고, 그 길은 믿음으로 가야 한다고 시인은 해답을 제시합니다.
이 시를 읽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소금기둥이 되고 마는 저 자신을 봅니다. 롯의 아내보다 아담과 하와보다, 시인보다도 더 악하고 약한 나를 봅니다.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나의 죄를 책망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 시를 감상하고 정리하는 이 시간 다시 소금기둥이 되고 마는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