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 때 같이 수업을 듣던 아주 친한 목사 가정이 있습니다. 서로 많은 것을 공유하며 자녀들 생일까지도 서로 챙겨주는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신학교 졸업 후 각자가 사역하는 현장에서 바쁘다 보니, 1년에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지금은 몇 년째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같이 사역하는 이웃 교회 목사님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신학교 시절 친구보다, 옆에 있는 목사님들을 더 자주 친근하게 만나는 것 같습니다. 옛 친구와 지금 연락한다면 솔직히 무슨 얘기를 할지, 별로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중요한 원리를 말해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맞습니다. 기도가 독백 같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기도의 말문이 열립니다. 느지막이 만난 친구도 정기적으로 만나면 옛 죽마고우보다 더 친해집니다. 자주 만나면 할 얘기도 많아집니다. 친구와 대화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듯, 하나님과 친해지면 기도도 자연스럽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할 때가 있습니다. 독백한다고 생각하면 기도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상대와 친하지 않으면 같이 앉아 있는 시간도 힘들고, 서로 말없이 식사하는 시간도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친하면 훌쩍 한 두 시간 흘러가 버립니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기도의 제1원리는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친해지는 방법은 다른 왕도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계속 기도 속에서 만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기도입니다. 어느 목사님 책에서 본 것처럼, 기독교는 ‘기도-교’라 할 수 있을 만큼 기도는 우리 신앙의 시금석입니다. 눈만 감으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기도의 현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 간단하고도, 쉬운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낯선 하나님 앞에서 할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서먹하면 기도처럼 힘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아주 친한 친구와 밤을 새며 대화해 본 적은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과 친해지면 하나님과 밤새워 기도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기도를 일주일만 해도, 하나님과 낯가림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결단합시다. 친구 사귀듯 매일 하나님과 만납시다. 매일 묵상한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것입니다. 말씀에 반응하며 기도를 시작하면, 말씀이 더 구체적으로 들리고,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