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세례 요한처럼 회개를 선포하셨다. 그런데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방향이 다르다. 세례 요한은 다가오는 천국을 땅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자신이 천국을 우리의 손 닿는 곳으로 끌고 내려오시면서 선포하셨다. 세례 요한은 선포하는 데서 끝났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 그 나라의 백성과 제자들이 되게 하신다.
후회와 회개는 무엇이 다를까? 후회는 혼자 한다. 그러나 회개는 함께 한다. 후회는 대상 없이 혼자서 갖는 감정적 느낌이다. 그러나 회개에는 반드시 대상이 있다. 회개의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궁극적으로 모든 죄는 하나님께 저지른 것이다. 회개의 이차적인 대상은 나의 잘못으로 인하여 상처와 손해를 입은 내 이웃이다. 회개는 느낌에서 멈추지 않고 고백으로 이어진다. 후회에는 용서가 없지만 회개에는 용서의 선포와 놓여남이 있다. 후회는 백 번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회개는 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하셨다.
성경을 보면 두 종류의 회개가 있다. 사울 왕의 회개와 다윗 왕의 회개다.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의 책망을 들을 때에 절반만 회개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백성들 앞에서 자기 체면을 세워달라고 타협했다. 그러나 다윗은 온전한 회개를 했다. 밧세바와 저지른 잘못이 온 천하에 드러나더라도 하나님께 용서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회개였다. 사울의 회개에는 책망이 뒤따랐지만 다윗의 회개에는 용서와 회복이 뒤따랐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한다. 하나님께서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어주실 때에 비로소 회개가 시작된다. 회개는 축복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마음을 주시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구해야 한다. 숨은 죄가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떠오르게 해주시라고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마다 회개한다. 대표적인 예가 베드로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깊은 바다에 그물을 내렸다. 큰 기대는 없었다. 밝은 대낮에 내려오는 그물 속으로 들어갈 물고기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예상을 깨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가 잡혔다. 그때 베드로는 무릎을 꿇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예수님은 죄인들을 회개시키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쳐다보는 사람들은 베드로처럼 회개하며 엎드린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이 회개하고 변화될 때에 받을 축복들이 담겨 있다. 이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첫 번째 교훈집이다.
가슴으로 읽는 성경 (6) 세례 받으시고 시험 당하시고
가슴으로 읽는 성경 (4)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왕
가슴으로 읽는 성경 (3) 예수님의 계보에 나타난 네 여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