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믿음의 부활절 / 유안진
지난겨울
얼어죽은 그루터기에도
새싹이 돕습니다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에서도
분홍 꽃잎 눈부시게 피어납니다
저 하찮은 풀 포기도
거듭 살려내시는 하나님
죽음도 물리쳐 부활의 증거 되신 예수님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살아나신
기적의 동굴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
이시는 시인이자 수필가 유안진의 <내 믿음의 부활절>이라는 시입니다. 유안진은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습니다. 박목월 선생은 서울대 교육 심리학과를 다니는 유안진을 시인으로 추천하는 것을 주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공이 문학과 상관없는데 계속 시를 쓰지 않으리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안진은 열심을 습작시를 썼고 이런 유안진의 열정적인 시작 활동을 눈여겨본 박목월은 현대문학에 유안진을 추천했습니다. 시인 추천에 엄격했던 박목월이 유안진의 시 <달>,<별>, <위로>를 1965년부터 1967년에 현대문학에 3회 추천했고 이것을 계기로 유안진은 등단했습니다.
유안진을 수필가로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지란지교를 꿈꾸며>라는 수필 때문입니다. 1986년 이향자, 신달자 시인과 함께 펴낸 수필집 <지란지교를 꿈꾸>에 실린 수필입니다. 이 작품으로 유안진은 일약 대중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시와 소설, 에세이의 장르를 넘나드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여성 특유의 섬세하고 유려한 문체와 치밀한 구성 방식이 돋보인다는 평을 얻고 있습니다.
시인으로 유안진은 통찰력 있는 시선으로 인생을 궤 뚫어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섬세한 시어로 유명한 유안진 시인은 천주교 신자(세례명 클라라)입니다. 유안진은 몇 편의 신앙시를 남겼습니다. 참 아름다운 시들이 많습니다. 특히 시인의 고백과 간증이 담긴 시들입니다. 아름다운 신앙시가 많습니다. 모든 시가 사랑받아 마땅한 수작(秀作)들입니다.
유안진의 <내 믿음의 부활절>은 과거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아닌 자신의 믿음이 되살아 나는 믿음의 부활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시의 후반인 4연 5연 6연의 마지막이 <싶습니다>입니다. 3번의 반복으로 시인의 소원이 분명하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1연부터 3연은 부활이 필요한 존재들이 누리는 부활의 역사를 노래합니다. 얼어붙은 그루터기, 말라 죽은 가지 끝, 굳은 티눈, 풀포기, 그리고 죽음... 모두 부활이 필요합니다. 봄을 통해 부활과 생명의 역사를 보여주시는 주님께서 친히 부활의 증거가 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부활절을 얘기하며 봄날 식물의 소생이나 계란의 부화를 말하는 것은 부활의 왜곡입니다. 사망을 짓밟고 부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인간의 저질 이해에 초점을 맞추어 부활을 설명하려고, 위대한 부활을 자연적 사건과 부활을 동격으로 낮추어 버립니다. 부활을 설명하려고 부활의 능력과 의미를 격하시키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현대 부활절의 역설과 아이러니입니다.
왜곡된 부활은 우리를 부활 신앙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부활의 의미를 모르면 부활절을 수십 년 맞아도 부활을 사모하지 못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알며 부활의 능력을 사모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갈망합니다.
이 시가 전반부 3연으로 끝났다면 이 시도 부활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나는 부활을 자연의 섭리나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렸을 것입니다. 이 시의 핵심 메시지는 후반부에 있습니다. 후반부에서 부활의 진정한 능력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능력이 자신의 삶에 나타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후반부에는 소망의 표현 “싶습니다”가 계속 반복됩니다.
4연은 살아나고 싶다고 말합니다. “깊이 잠든 나의 마음/ 말라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습니다.” 4연은 잠든 나의 마음, 말라 죽은 나의 신앙도 살아나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5연은 더 큰 부활의 갈망입니다. 시인은 “주님이 부활하신 무덤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새봄에 자연스럽게 돋아나는 풀포기가 아니라 주님 부활의 능력을 힘입은 풀포기로 부활하고 싶은 것입니다.
6연은 <싶습니다>가 두 번 등장합니다. 부활의 능력이 삶에 담기는 축복을 사모합니다. 부활의 능력으로 “그윽한 믿음의 향기/ 풍겨내고 싶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서 “해마다 기적의/ 증거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합니다. 신앙인이라면 시인의 고백이 구구절절 가슴이 와 닿을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모든 표현, 모든 고백에 아멘이 절로 나옵니다.
모쪼록 이 시의 메시지처럼 올해 부활절에 우리 신앙이 부활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무덤 앞에 이슬 젖은 풀포기의 모습이라도 부활을 아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활의 능력 머금고 믿음의 향기 발하고,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의 증거가 되는 매년의 부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