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스 큰나무교회 김귀보목사
(Photo : ) 김귀보 목사

마지막까지 싸우라
여호수아 10장 16절-27절

세상의 모든 것은 마무리를 짓고 완성했을 때 아름답다. 아파트를 짓기전에 모델하우스를 보여면서 아파트가 완성되면 가족들이 행복하게 살 따뜻한 공간을 제공해줄 것처럼 광고를 한다. 그런데 중간에 부도가 나서 공사가 중단되어 버리면 꿈과 희망을 주려던 아파트는 오히려 혐오감을 주는 흉물로 바뀌어 버린다. 화장은 얼굴들 더 돋보이기 위해서 한다. 그런데 아무리 뛰어난 메이크업 코디가 화장을 해줘도 눈썹을 한쪽만 그리면 멈추어 버리면 화장한 것이 오히려 창피를 당하게 한다.

우리는 보통 일을 잘 마무리 하려면 시작을 잘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면 그 다음은 모든 것이 비뚤어진다. 그럼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어버린 사람은 어떻게 되나? 처음에 잘못 선택한 것이 마지막까지 영향을 미쳐서 불행하게 끝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우리는 처음을 잘못 시작했더라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고치시고, 치료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구원이 무엇인가? 잘못 시작했는데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이다. 반역하고 망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치료하셔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잘못 시작해도 잘못을 깨닫고 십자가 앞으로 나가면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여호수아가 하고 있는 아모리 족속 다섯왕과의 전쟁은 여호수아의 잘못으로 시작된 전쟁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기브온과 언약을 맺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결정한 명백한 여호수아의 실수이고 잘못이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실수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실수를 내어 놓았다. 여호수아는 이 전쟁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이 기브온 족속을 전멸시키면 자신의 잘못이 가려질 수 있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전쟁에 뛰어들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전쟁에 임했을 때 하나님이 두 가지 일을 행하셨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우박을 내려서 아모리 족속 다섯 왕을 격퇴하도록 하셨다. 칼에 죽은 사람보다 우박에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 두번째는 태양과 달을 멈추어 주셔서 어둠이 찾아오는 것을 막고 전쟁을 마무리 하도록 해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하고 의지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탄탄대로가 열리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근심없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어려움이 없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이유도 없다. 하나님이 우박을 내려 주셔서야할 만큼 만만친 않는 적과 싸우는 것이다. 태양을 멈춰야할 만큼 치열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행복하지만 버거운 길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행복하고, 어려운 환경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에 버겁다. 믿음의 길은 호캉스가 아니라 트래킹과 같은 것이다. 대로가 아닌 좁은 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도움을 갈망하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세상을 사랑해서는 갈 수 없는 길이 믿음의 길이다. 세상을 대표하는 돈과 믿음의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의 길을 선택했다면 어려움을 이길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 어려움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주눅들고 포기하라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이 성취되는 것을 보라고 오는 것이다. 그럼 어려움이 올 때 우리가 뭐해야 하나? 두려워 하거나,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면 하나님을 경험한다.

전세가 불리했던 아무리 족속의 다섯 왕들이 막게다 동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16절과 17절을 보자. “16. 그 다섯 왕들이 도망하여 막게다의 굴에 숨었더니. 17. 어떤 사람이 여호수아에게 고하여 이르되 막게다의 굴에 그 다섯 왕들이 숨은 것을 발견하였나이다 하니.” 다섯 왕들은 들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동굴에 숨어 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들에게 의해서 발각되었다.

이때 여호수아가 한 행동을 주목해 보아야 한다. 다섯 왕들을 한꺼번에 잡으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당장 왕들을 끌어내어서 승리를 만끽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다르게 행동했다. 큰 돌을 굴려서 굴의 입구를 막아 놓고 전쟁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하라고 명령했다. 19절을 보자. "너희는 지체하지 말고 너희 대적의 뒤를 따라가 그 후군을 쳐서 그들이 자기들의 성읍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여호수아는 왕들을 잡으려고 지체하지 말라고 한다. 도망하는 적들이 자기 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물리치라고 한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버리면 잡는 것이 힘들어진다.

여호수아가 이렇게 명령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이 태양을 멈추어 주신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태양을 멈춘 이유는 끝까지 전쟁을 해서 적들의 뿌릴 뽑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때 여호수아가 왕들을 끌어내어 승리는 즐기는 것에 그 시간을 써버리면 어떻게 되나? 적들을 전멸시킬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이 태양을 멈춘 일을 헛되게 하는 것이다.

태양이 멈춘 일은 대단한 일이다. 태양을 멈추어 놓고 그 시간에 잠을 자거나 파티를 하는 사람은 없다. 태양을 멈추었다면 태양이 멈춘 것에 상응하는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주어졌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시간은 예수님의 핏값으로 얻어진 시간이다. 그럼 무얼 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5:15) 이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할 시간의 의미이다.

우리가 왜 인생을 살아가면서 헛된 곳에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몰라서 그렇다. 유학온 청년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모님의 수고와 땀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공부에 집중하고 헛된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의 모습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생명을 빚진 사람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 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내 삶의 영역에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영역이 있는지 체크하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말씀을 따라서 지체하지 않고 전쟁에 뛰어든 여호수아에게 결과가 주어졌다. 20절과 21절을 보자. "20.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크게 살륙하여 거의 멸하였고 그 남은 몇 사람은 견고한 성들로 들어간 고로. 21.모든 백성이 평안히 막게다 진영으로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이르렀더니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하나님을 믿고 아모리 다섯 왕과의 버거운 전쟁을 시작했다. 그 결과는 적들을 거의 전멸시켰고, 여호수아를 대적할 생각을 못할 정도로 두려움을 심었다. "혀를 놀려 이스라엘 자손을 대적하는 자가 없었더라."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다. 하나님께 순종해서 이룬 역사에는 말을 할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셨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하나님이 두려워서 말을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인생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하나님이 하셨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인생으로 살게 해주신다.

여호수아는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과의 전쟁을 마무리 하면서 한 가지 특별한 일을 했다. 24절이다. "그 왕들을 여호수아에게로 끌어내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을 부르고 자기와 함께 갔던 지휘관들에게 이르되 가까이 와서 이 왕들의 목을 발로 밟으라 하매 그들이 가까이 가서 그들의 목을 밟으매." 여호수아가 아모리족 다섯 왕들을 끌어내어서 지휘관들에게 발로 왕들의 목을 밟아라고 했다. 발로 목을 밟는 것은 자기 발아래 완전히 굴복시킨다는 의미이다.

전쟁에서 이겼으면 되었지 왜 굳이 지휘관들에게 이 왕들의 목을 밟으라고 하는 것인가? 여호수아가 지휘관들에게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25절을 보자.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 하고."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들은 대단한 왕이다. 두려운 존재들이다. 넘을 수 없다고 생각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고 넘었다.

전쟁이 이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싸워야 할 전쟁에서 이런 두려운 왕들을 수도 없이 만날 것이다. 그때 다시 두려워하지 않도록 이런 왕들이 아무것도 아니다는 것을 자신을 발로 밟으면서 느끼게 해준 것이다. 지금 여호수아는 한 단계를 끝내면서 다음 단계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지휘관들은 적들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고 막게다, 립나, 라기스, 게셀, 에글론, 헤브론, 드빌을 포함은 모든 남부 도시들을 모두 점령했다. (28절-43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밟으시고 승리하셨다.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사탄의 머리를 밟으라고 하신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16:20) 사탄을 우리 발 아래 상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 한다. 첫번째는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5:8) 두번째는 마귀를 대적해서 이기라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예수님이 이미 사탄의 머리를 십자가에서 밟고 박살내셨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머리가 박살난 사탄이 우리를 위협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종해서 사탄의 대적하면 예수님의 이름 앞에 사탄은 도망간다.

사탄은 우리에게 흉악한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악한 귀신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와 사건으로 우리를 믿음을 빼앗으려고 한다. 낙심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고 믿음을 잃게 한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승리를 믿고 문제와 사건을 하나씩 우리의 발 아래 밟고 이겨가는 과정이다. 믿음의 행진은 승리의 행진이다.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말라.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를 이루시고, 그 승리를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은 우리가 낙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여호수아가 적의 왕들의 목을 밟으라고 할 때 지휘관들이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왕들의 목을 밟았다. 그리고 두려움 없이 남부 지역을 왕들을 다 발로 밟고 승리했다.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신 우리 대장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우리 앞에 다가오는 문제와 사건을 예수 이름으로 밟고 승리하는 역사가 있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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