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선 전도사 천국 환송 예배

2024년 1월 27일 토요일 오후 3시 새생명비전교회(강준민 목사)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 故 채동선 전도사(1960년 12월 16일~2024년 1월 15일)의 천국환송예배가 열렸다.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러 모인 조객들이 천 명이 넘어 본당을 다 채우고도 자리가 부족했다.

안맹호 목사(다나 크리스천 미션) 집례로 집행된 예배는 김홍덕 목사(조이장애인선교회)의 기도로 시작됐다.

김홍덕 목사는 "사랑하는 채전도사님, 그대가 하나님 곁으로 가신 날, 종일 얍복강 시리즈를 듣고 또 듣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얍복강 건너 요단강 건너 이제 하늘 나라에서 편히 안식하시라. 언제나 활짝 웃는 그대의 웃음 속에 지독한 고독의 울림이 있었던 것처럼, 내가 그만큼 고독할 때 늘 당신의 웃음을 그리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처음 만난 88년 구역 예배 때 풋풋한 얼굴로 생글생글 웃으며 피아노를 치며 찬양을 하던 그 모습, 어쩌면 지금까지 그 모습 그대로 순수함을 유지했을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 육체가 멍든 사람, 소외된 영혼들에게 자신의 몸을 내주다 아예 산화해 버린 사람. 천국에서 영원한 위로의 건반을 마음껏 치시게나"라고 고인을 회상한 후 기도했다.

김홍덕 목사(조이장애인선교회)
(Photo : 마가교회) 김홍덕 목사(조이장애인선교회)

나사로를 살리신 그 기적을 지금 행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채 전도사님을 일찍 데려가신 이유를 묻고 싶습니다. 살려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그 기적을 지금 행하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빨리 데려갈 사람이 너무도 많건만 꼭 남겨두어야 할 사람을 먼저 거두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버지, 너무 하십니다. 이 세상에 이런 사람, 이런 목회자가 단 하나라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교회와 목회자들이 비난을 받는 시대에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이 쓸쓸해졌습니다. 주님 이 쓸쓸함 속에서 우리에게 위로를 내려주십시오.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믿음과 위로와 평안을 주시길 원합니다. 어둠 속의 빛이 되신 주님께서 우리 어둡고 춥고 쓸쓸한 마음 속에 빛을 비춰 주옵소서. 주님께서 채 전도사님의 육신을 데리고 가셨으나 육신이 떠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셨다면 고인의 가르침, 정신, 삶의 향기를 우리가 잘 간직할 수 있도록 성령의 부으심을 허락해 주옵소서. 먼저 부탁드립니다. 고인의 목회와 삶의 분신이신 사모를 주님 손에 맡깁니다. 주님께서 이길 힘 허락해주셔서,사모님을 통해 채 전도사님의 편지를 계속 읽게 해 주옵소서. 또한 마가교회 심령들을 어루만져 주시기 바랍니다. 채 전도사님의 말씀에 젖어 풀받에서 위로를 받던 지친 영혼들이 이제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축복해 주옵소서. LA마가교회와 OC마가교회를 주님 손에 부탁합니다. 애틀랜타 마가교회도 좋은 씨앗의 발화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고인은 가난하고 어렵고 약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울면서 살았습니다.

이어서 안맹호 목사는 고후 4:16-18를 본문으로 “영원한 삶”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안맹호 목사
(Photo : 마가교회) 안맹호 목사

“왜 이렇게 일찍 데려 가십니까,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설명 없이 불러 가셨고, 우리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견디기 어려운 일을 주시는가.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 사람은 날로 새롭다.”

“그의 호주머니는 구멍이 난듯 항상 비어 있었다. 일상 자체가 나눔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물질주의로 빠져서 탐욕으로 어지러울 때 진정한 부요함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셨다. 그래서 마가교회가 있을 수 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살벌해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야 말로 천국을 만들어가는 주역이라고 선포하는 것 같았다. 교회는 타자를 위함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 속에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그들을 위해 사는 것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딜레마이다. 그동안 우리 교회들은 이웃을 위해 살려고 애는 썼지만, 그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려워 했다. 고인의 목회철학은 선교적으로 가장 앞서간 것일 뿐 아니라, 최선이었다.”

슬픔을 머금은 그의 미소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고통에서

“이 힘든 일을 하느라 숱한 고생을 하셨다. 슬픔을 머금은 그의 미소는 바로 이 고통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고인은 가난하고 어렵고 약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울면서 살았다. 사회적 약자의 모습에서 매우 괴로워했다. 그는 가슴을 열어 젖히고 그들을 감싸 안았다.”

이어서 상영된 고인을 회고하는 영상에서, 고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빛을 볼 수 있는 방도는 이 어두운 밤 전체가 밤이 깨져야 돼요. 밤이 사라져야 돼요. 우리가 싸우고 있다는 것은 밤이에요. 하나님이 정해놓은 시간이 있다. 하나님의 목적은 나의 인생의 밤을 깨뜨리는 것이다. 나에게 그 빛을 예비하신 것이다.” (내 인생의 얍복강 1 설교 中)

“야곱은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떠나면 안됩니다, 하는 거였지만 하나님은 그 자리에 중심으로 오셔서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게 나의 뜻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내 인생의 실존이 혼돈이자 흑암이었고 사망의 존재임을 보게 됐습니다. 내가 바로 그 죄인입니다. 진짜 구원이 필요한 자가 나고, 은혜가 필요한 자가 나고, 고쳐져야 할 그 대상이 바로 납니다. 치유가 필요한 자가 나고 하나님의 특별한 함께 하심이 필요한 자가 나고..”(내 인생의 얍복강 4 고별 설교 中)

URIAH PARK의 조가에 이어서 채인아 (가족, 사촌동생)씨가, 브라질 선교사인 김창현 선교사,정보람(LA마가교회) 씨가 조사를 전했다.

채인아 씨는 가족 모임에서 고인이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통해 가족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피아노 삼촌’으로 불렸으며, 어떤 상황에서도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그들을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간직하며 살았는가를 회고했다.

채인아
(Photo : 마가교회) 채인아 씨(가족, 사촌동생)
채동선 전도사
(Photo : 마가교회) 채동선 전도사

고인의 암 진단을 가장 먼저 알았던 정보람 씨는 9년 전 자신의 인생이 굉장히 혹독하던 시기 채 전도사님을 만나면서, 그분의 집회를 통해 20년 먹은 체기가 풀리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고인의 무조건적인 도움에 힘입어 LA로 이주하게 되고, 고인이 친히 삶의 자리를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셨다며, 고인의 마지막 말들을 조객들에게 나눴다.

“11월 10일 금요일 오후에 문자가 왔다. 전도사님이 저에게 제일 먼저 암 진단을 알리셨다.”

고통을 거치면 그 안에 무엇인가 꼭 생명이 된다

정보람 씨는 고인이 암 투병 과정 중에,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하고 모든 것이 죄송하고 미안해. 그냥 난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어.내가 잘못한 게 있어도 하나님이 눈 감고 지나쳐 주신 게 한 두개가 아니야. 한번도, 하나님이 어쩌면 이러세요.. 가 아니고 하나님 뜻이 이런 거구나. 진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겠고,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도 알게 되었어. 하나님은 사람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라고 말했다고 전했으며, “1월 첫째주 금요일, ‘하루 종일 잘 싸우고 계셨나요?’ 란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 내용은 이랬습니다. ‘내가 너에게 처음으로 문자를 보내서 암이란 것을 알게 된 날의 너와 지금의 너와 너무 다르다. 고통을 거치면 그 안에 무엇인가 꼭 생명이 된다.고통 때문에 꼭 무엇이 생성이 돼. 고통 때문에 무엇이 꼭 생겨. 고통이 우리를 사라지게 하는 게 있고 우리를 만드는 것이 있어. 고통이 사라질 것이 새 생명의 요소가 되어서 사라지는 것으로 만들어져. 그것이 복음적인 생명의 탄생이라고 생각해. 이 탄생이 진정한 힘을 갖고 있지.’”라고 고인의 말을 인용하며, “전도사님은 제게 예수님을 상상할 수 있게 하신 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정보람 씨(마가교회)
(Photo : 마가교회) 정보람 씨(마가교회)

고인이 즐겨 부르던 ‘주님을 송축하리’ 찬송에 이어, 이원철 전도사 (마가교회)의 광고 후 UCA 신학대학교 대학원 임아브라함 목사의 축도로 천국환송예배의 모든 순서가 마무리되었다.

채동선 전도사(1960년 12월 16일~2024년 1월 15일)는 채준성 선생과 김정로 여사, 슬하의 2년 2녀 중 차남으로 서울 후암동 출생했으며 故 채정민 목사의 증손이자 채기은 목사의 손자이다. 1989년 8월 12일 이은미와 결혼했으며 2001년 6월 10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를 개척해 교회 사역과 함께 중국, 태국,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멕시코, 서울, 애틀랜타, 워싱턴 DC, 오레곤 등 각지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살았으며 2024년 1월 15일 오전 4시, 향년 62세로 하나님의 품에 영원히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