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시급한 일
여호수아 8장 30절-35절
운동경기는 각 종목마다 경기규칙이 다 다르다. 경기 시간, 선수의 숫자, 진행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런데 모든 운동종목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작전타임(Time out) 또는 하프타임(Half Time Break)이다. 작전타임은 경기를 강제적으로 중단시키는 것이다. 심장이 터져라 뛴 선수들에게 쉼을 주면서, 동시에 새로운 작전을 지시해서 경기의 흐름을 뒤집는 시간이다.
여호수아는 첫 번째 패배를 딛고 아이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여호수아가 세워놓은 가나안 땅 정복 계획에 의하면 중앙지역을 점령하고 난 후에는 남쪽 지역을 먼저 점령하고, 그 다음에 북쪽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다. 아이성 전투를 이기면서 중앙지역에 대한 정복이 끝났다. 이제 남쪽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 군대를 움직일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이때 좀 다른 선택을 했다. 30절-31절을 보자.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에발산은 아이성 보다 남쪽에 위치해 있는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 40km나 더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다.(공격 루트 사진) 여호수아는 군대만 이끌고 간 것이 아니라 남녀 노소를 포함한 모든 백성들을 데리고 에발산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쟁을 한 것이 아니라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로 드렸다.
여호수아는 왜 갑자기 전쟁을 중단하고 에발산으로 갔을까? 이것은 모세가 명령하고 율법책에 기록한 것을 행한 것이라고 한다.(31절) 신명기 27장에 모세가 명령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에발산과 그리심산으로 가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율법을 선포하라고 하셨다.(그리심산 에발산 사진) 가장 먼저 큰 돌들 위에다가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율법을 기록해서 에발산 위에 세운다. 두번째,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 세번째, 12개 지파 중에 절반은 그리심 산 위에 서고, 나머지 절반은 에발산 위에 선다. 네번째,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가운데 있는 골짜기에 위치한다. 다섯번째, 제사장들이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때 산위에 선 모든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한다.
이것을 그대로 이행한 것이 오늘 말씀 32절과 33절이다.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그런데 신명기 27장의 명령에 의하면 그리심산과 에발산으로 가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는 시기는 정해놓지 않았다. 여호수아에게 선택할 재량권을 주었다는 말이다. 그리심산과 에발산은 아이성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효율성의 측면에서 보면 남쪽을 먼저 점령하고 북쪽으로 올라갈 때 이곳으로 가는 것이 좋다. 또는 북쪽까지 다 점령하고 난 뒤 편안할 때 그리심산과 에발산으로 가는 것이 더 것이 좋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하고 난 직후 전쟁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일부러 40km나 거슬러 올라가서 그리심산과 에발산으로 갔다. 전쟁을 중단시키고 작전타임을 부른 것이다.
작전타임을 부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잘못 선택하면 작전타임은 유익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된다. 작전타임은 주로 지고 있을 때 부른다. 사기가 떨어지거나, 힘들 때 부른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높아졌을 때이다. 전쟁을 할 의욕도 강하다. 그리고 적들도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수9:1-2) 여호수아에게는 물리쳐야할 적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 적들을 다 물리치려면 지체할 시간 없이 군대를 정비해서 남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적들이 숨을 고르기 전에 몰아 붙여야 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그것을 미뤄놓고라도 전쟁을 치르야할 상황이었다. 지금 전쟁을 멈추면 이스라엘이 여러모로 힘들어 진다. 적들의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이런 타이밍에 여호수아는 전쟁을 중단시키고 그리심산과 에발산으로 향했나? 지금 눈앞에 있는 전쟁보다 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눈앞에 보이는 전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백성들과 자신의 영적인 상태였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의 영적인 상태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을 본 것이다. 이대로 전쟁을 계속하다가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호수아에게 든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전쟁을 멈추고 영적인 작전타임 또는 하프타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알려면 아이성 전투를 되짚어 봐야 한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자만심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전열을 가다듬어서 두번째 전투에서 이기긴 했지만 여호수아는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영적으로 해이해져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생이 잘 될 때는 문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사업도 잘 되고 있고, 경제적인 상황도 어렵지 않고, 나를 괴롭히는 문제도 없고, 모든 것이 잘 진행되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럴 때 내가 뭐 그리 심각하게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내게 뭐 그리 영적인 충전이 필요하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때가 더 작전타임이 필요할 때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이기고 있을 때 문제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그리고는 잘 될 때 작전타임을 선언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성공적으로 점령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자동차가 잘 달리고 있다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잘 달리고 있는 순간에도 Gas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경고등이 들어온 이후에도 10마일-20마일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잘 달린다. 잘 달리고 있다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곧 자동차가 멈추어 서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순간이 오기 전에 가던 길을 멈추어서 Gas를 충전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겜에 가서 한 일이 무엇인가? 전쟁준비를 한 것이 아니다. 전쟁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그냥 하나님께만 집중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에발산에다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율법을 낭독하고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 언약을 갱신하는 것이다. 잊어버렸던 하나님과의 약속을 상기시키고 하나님께 다시 헌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 힘을 얻는 것이다.
31절에 보면 단을 쌓을 때 잘 다듬은 돌을 가지고 단을 쌓지 않는다. 자연석 돌을 그대로 단을 쌓았다. 생긴 모양 좀 울퉁불퉁해도 그것을 그대로 살려서 단을 쌓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모두 다 순수한 자연의 모습 그대로 드려져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갈 때 포장하고 꾸미는 것을 싫어하신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오기를 원하신다. 가식적이지 않고, 꾸미지 않고, 강한척하지 않고 그냥 우리 모습 그대로 오기를 원하신다. 힘들면 힘든 모습 그대로, 상처 나면 상처 난 모습 그대로 나오길 원신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치료받고 회복되길 바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