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살찌우는 신앙 명시 산책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대표, 시인 수필가)
나하나 꽃피어(조동화)
나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목회자로 변신한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입니다. 시인 조동화는 경북 구미에서 태어났습니다. 시인은 시조, 일반시, 그리고 동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긴 시인입니다. 시인 조동화는 시조로 출발했습니다. 시인으로 열심히 시작(詩作)활동을 하던 조동화 시인은 지금 경주성경침례교회 목회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조동화 시인은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 <낙화암」이 당선된 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첨성대>, 부산일보에 시 <낙동>」이 각각 당선되었습니다. 그는 <낙화암> 등 9권의 시집과 2권의 동시집 그리고 시조집을 남겼습니다. 이 시는 조동화 시인의 대표적인 시 중의 하나입니다.
이 시를 읊조리면 저절로 힘이 나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이시를 읽은 것 만으로 힘이 나고 용기가 솟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 시를 사랑하고 이 시를 애송하며 이웃에게 자주 추천합니다. 이 시가 가진 아름다운 시어나 운율 그리고 문학적 표현 기법도 좋지만, 이 시가 전하는 메시지가 참 좋습니다. 시대와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좋아하지만, 희망적 희망을 바랍니다. 희망적인 희망 즉 성취 가능성이 큰 희망에는 열광합니다. 반면에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합니다. 그래서 척박한 환경에서 희망을 일구는 사람에게는 야유나 비난은 흔합니다. 심지어 성취될 가능성이 별로 없는 희망에 건네는 따뜻한 충고조차도 실패를 전제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시 “나 하나 꽃 피어”는 희망을 가꾸는 과정을 노래합니다. 첫 연의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이나 둘째 연의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은 절망에서 희망을 심고 가꾸는 법을 말합니다. 참 희망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참된 희망은 품기만 해도 희망이고 능력입니다. 온 세상이 꽃밭이 되는 희망을 품었다면 현실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을 심고 생명을 심어야 합니다. 생명의 희망을 심으려 하면 현실이 두렵지 않습니다. 비록 지금은 세상이 온통 꽃밭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오늘 꽃 한 송이를 피울 수 있다면, 결국 온 풀밭이 꽃밭이 될 희망을 볼 수 있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시인은 “결국”이라는 평범한 말을 시어(詩語)로 재생산했습니다. 이 시에서 ‘결국’ 이란 시어가 주는 메시지는 소망의 확실성입니다. 결국은 반드시, 혹은 필연코 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풀밭이 꽃밭이 되고, 결국 온산이 활활 타오를 것을 선언합니다. 하나씩 피는 꽃이나 하나씩 물드는 잎사귀가 소망의 시작을 노래한다면 결국은 성취될 소망의 완성을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우리는 종종 희망의 꽃을 치워야 할 상황을 만납니다.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절감합니다. 이미 통과된 악법들도 감당하기 어렵지만, 현재 준비되는 법안들은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을 피해 타주로 이주하는 학부모들이 많다고 듣습니다. 이런 캘리포니아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미국인 형제자매들이 Pray California에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희망의 꽃을 피우는 사람들입니다.
남가주의 한인 성도들이 ‘다민족연합기도대회’이름으로 기도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또 중보 기도팀 연합 기도회를 통해서 희망의 꽃을 피우려 합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캘리포이나에서 희망의 꽃을 피웁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캘리포니아에서 ‘이런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는 질문을 듣습니다. 그때마다 조동화의 ‘나 하나 꽃피어’를 읊조립니다.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될 날을 소망합니다. 또 온 산이 활활 타오르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