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
여호수아 5장 1절-12절

달라스 큰나무교회 김귀보목사
(Photo : ) 김귀보 목사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라는 것이 있다. 적절한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 성공할 수 있는 일도 실패로 끝난다. 전쟁에서 지휘관이 타이밍을 한번 잘못 선택하면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죽음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래서 유능한 지휘관은 싸워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럼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공격해야할 가장 좋은 타이밍은 언제인가? 바로 지금이다. 1절을 보자.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가나안 땅에 있던 적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을 보고는 두려움과 충격을 넘어서 정신을 잃어버렸다.

여리고성에 있었던 기생 라합의 말에 의하면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수2:10) 이스라엘이 요단강 동쪽에 있던 아모리 족속의 헤스본 왕 시혼, 바산 옥이 정복 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불어날 대로 불어 난 요단강은 건너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단강물을 멈추시고 이스라엘을 건너게 하는 모습을 보고는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넋을 잃어버렸다.

요단강 도하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적들의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다. 전쟁 지휘관인 여호수아가 적들을 공격할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면 이때부터 더 좋은 때는 없다. 이 타이밍을 놓치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요단강을 건넌 여호수아는 백성들을 이끌고 길갈로 가서 진을 치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베이스 캠프를 차렸다. 1차 공격목표는 3-4km 밖에 있는 여리고 성이었다. 3-4km 정도면 이미 전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적에 대비해서 각 길목마다 군대가 배치되고 전쟁을 위한 작전준비가 한창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공격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내린 명령이 2절이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공격명령을 기다리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은 공격명령이 아니라 할례명령이었다.

할례는 남자들의 생식기 끝을 자르는 포경수술을 말하는 것이다. 돌칼로 원시적으로 포경수술을 하면 피가 철철 흐르고, 회복되려면 일주일은 족히 걸려야 한다. 그리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주일 동안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적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들을 다 할례를 행하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장해제를 하는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하나님은 왜 공격명령을 내려야할 타이밍에 할례명령을 내리신 것일까? 4절과 5절을 보자.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원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태어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출발할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고 할례를 받았다. 그런데 출애굽한 1세대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었다.

요단강을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다 광야에서 태어난 출애굽 2세대들이다. 광야에서는 할례를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할례를 받지 못했다. 7절을 보자.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할례라는 것은 하나님과 피로써 언약을 맺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지키고 살겠다는 선언이고, 하나님 입장에서는 내 백성이라고 받아들여 주시는 의식이다. 그런데 이들이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례 없는 자가 되었다.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법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나안 땅은 누구에게 주어진 땅인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땅이다. 언약 백성에게 약속된 땅이다. 그럼 하나님이 백성이 아니면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마지막으로 지킨 때는 40년 전에 시내산에 있을 때였다. 시내산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곧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줄 알았다. 그런데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고 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명령을 거부했다. 그때 하나님은 반역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자리에서 백성들을 다 죽이려고 하셨다. 그런데 모세의 간곡한 기도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런데 불순종의 결과로 출애굽 1세대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다 죽게 되는 형벌을 받았다. 이때부터 광야 40년 동안 할례는 시행되지 않았고, 유월절도 지키지 못했다. 1세대들은 다 죽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반역한 이스라엘에게서 가장 중요한 할례와 유월절을 빼앗아 버렸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누릴 권리를가 빼긴 것이다. 광야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형벌의 시간이고, 고통의 시간이었다. 아버지로써 아들을 할례를 시킬 수도 없었고, 아버지로써 유월절 식사를 아들과 함께 나눌 수도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댓가였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뭘하시는 것인가? 할례도 행하고, 유월절도 지키게 하셨다. 40년 만에 행하는 할례와 유월절이었다. 이것은 형벌이 끝이 났다는 하나님의 용서의 선언이다. 진정한 내 백성으로 받아준다는 선언이다. 40년전에 잃어버렸던 가나안 땅을 차지할 특권을 다시 준다는 선언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다.
할례를 다 행하고 난 뒤에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신 내용이 이런 것이다. 8절과9절에 보면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 히브리어에 보면 “굴리다 또는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갈랄’이라는 단어가 있다. 길갈이라는 지명은 그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하나님이 할례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과거의 수치와 모욕, 과거의 더러운 죄, 과거의 멍에, 과거의 족쇄들을 다 없애버리고 굴려버리셨다는 말이다. 이 순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새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의 이런 뜻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질문은 타이밍의 문제이다. 이왕 할례를 하시려면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 설교 할 때 하든지, 요단강 앞에서 건너지 못하고 3일을 기다릴 때 하시면 되는데, 왜 이렇게 중요하고도 위험한 시기에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것인가?

하나님이 생각하실 때 할례를 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 바로 이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지금이 전쟁해야하는 절호의 타이밍이지만 하나님에게는 지금이 할례를 행해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인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기 얼마나 힘들겠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보려고 노력해 본 사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려고 해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수도 없이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왕과 주인이 되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 인생에 왕과 주인으로 모시는 가장 첫번째 행동은 나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부분이 이 부분이다. 내 생각, 내 뜻, 내 관심, 내 판단을 내려놓기가 너무 힘들다. 말은 하나님을 왕과 주인으로 섬긴다고 하면서도 모든 것이 내 관심과 기대와 일치하길 바란다. 하나님의 뜻은 내가 원하는 것을 확정해 주는 것으로 나타나길 바란다. 이것은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하나님이다. 내가 만들어낸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우상이다.

이제부터 왜 길갈에서 하나님이 할례를 행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보자. 요단강을 건넜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리고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길갈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단절과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할례와 유월절을 통해서 과거와 완전히 단절시켜 주시고, 새로운 신분과 새로운 삶을 허락하셨다. 광야에서는 죄의 형벌 속에 살았다. 수치와 상처를 안고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이 할례를 통해서 수치를 다 굴려버리셨다. 유월절을 지키고 양을 대신 잡아서 죽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과거를 다 치워버렸다. 더 이상 과거에 묶여있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이런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한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 과거의 수치, 치욕, 상처, 저주를 다 십자가 아래로 다 굴려버리셨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미래의 영광, 비전, 용기, 희망,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산다고 하는 고백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죄와 사탄을 이기고 살겠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전쟁을 미루면서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런 의식을 치르는 것인가? 과거의 상처, 과거의 습관, 과거의 족쇄, 과거의 저주 속에 묻여 있으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가나안 부족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눈에 보이지 않은 영적인 적이다. 순종하지 못하게 하고,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우리 안에 있는 적들이다. 현실의 적들과 싸우기 전에 먼저 우리 안에 있는 적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표면적으로 보면 여호수아는 전쟁을 치를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빼앗겼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5장 1절에 보면 가나안 족속들이 두려워 한 것은 이스라엘 군대가 아니다. 홍해를 가르게 하고, 광야 40년을 버티게 하고, 요단강 물을 마르게 한 하나님이 두려웠던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 뒤에 하나님이 떡하고 버티고 서 계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진정한 강함은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혜도 우리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대로 하면 안된다. 내 느낌대로 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언제라고 생각했나? 자기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적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가장 절절한 시기가 언제라고 말씀을 하셨나? 과거의 쓰레기들을 다 요단강에 묻어 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각으로 하나님과 함께 위대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이 준비된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적절한 타이밍은 환경이 따라주었을 때가 아니다. 내가 능력이 되고 자신감이 충만할 때가 아니다.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을 때도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순간이다. 제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들은 언제나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할 때였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 때였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맡기는 순간 저의 문제는 더 이상 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여호수아가 지금부터 치르려고 하는 전쟁이 여호수아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 듯, 우리에게 닥쳐오는 문제와 사건은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시는 싸움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 전쟁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게 속했다. 이번 한주도 하나님과 더 가까위지고, 하나님의 지혜와 인도를 따라 살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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