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회 위 브릿지 콘퍼런스(WE BRIDGE CONFERENCE) 모든 강의가 큰 영감과 도전을 줬다. 그 가운데 '말씀에 능력을 불어 넣는 내러티브 설교- 부제: 말주변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설교학' 강의를 이끈 텍사스 큰나무교회 김귀보 목사의 '말씀은 참석한 목회자들에게 설교자의 말과 생각으로 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리게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귀보 목사의 '살아 움직이는 내러티브 설교' 전문을 올린다.
읽으라, 들어라, 행동하라
여호수아 1장 1절-9절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야기다. 가나안 땅에는 7개 부족과 31명의 왕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워 이기고, 정복해야 하는 문제와 대적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방법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끝까지 믿음의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과거에 있었던 전쟁이야기만 아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문제와 사건을 이길 수 있는 영적인 원리가 담긴 책이다. 우리 삶의 현장에도 복음으로 이겨야할 7개 부족과 31명의 왕들이 존재한다. 우리 인생, 가정, 삶의 터전에서 끊임없이 싸워 이겨야하는 문제와 사건들이다. 이런 문제와 사건을 이기려면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원리를 따라서 싸워 이겨야 한다. 여호수아서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문제가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바란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인간의 한계와 실패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역사는 기본적으로 구원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가장 드라마틱한 이야기는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출애굽의 이야기와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야기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절망하고, 포기하고, 무너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실패와 죽음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이렇게 시작한다. 1절-2절을 보자.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모세가 죽었다는 것을 두번 강조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모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다. 모세는 능력을 행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세가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죽어버렸다. 모세가 죽었다는 것은 믿을 만한 든든한 뒷배가 사라져버렸다는 말이다.
운동경기에 비유한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해서 요단강을 건너기전까지가 예선전이었다면 요단강을 건너는 것부터 본선이고 결승전이다. 앞으로 정복해야 하는 가나안 땅 7개 부족은 이스라엘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적들이다. 그런데 본선 레이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주전선수인 모세를 잃어버린 것이다. 모세의 죽음은 희망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두려움과 실패를 암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2절) 하나님은 마치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정복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다. 모세가 죽었기 때문에 이제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은 항상 절망에서 소망을 이야기 하신다. 실패에서 가능성을 이야기 하신다. 끝난 것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소망이고, 가능성이고, 시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었다고 계획을 변경하거나 축소하지 않으셨다. 3절과 4절을 보자.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노니. 4.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강 곧 유브라데 강까지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쪽 대해까지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광야는 남쪽경계다. 레바논은 북쪽경계다. 유브라데는 동쪽 경계다. 대해는 서쪽경계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약속해 주신 땅에서 동서남북 한뼘의 땅도 줄이지 않고 다 차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었다고 슬퍼하고 두려워 하는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시작을 말씀하셨다. 모세는 죽었지만 너는 요단강을 건너서 내가 약속한 땅으로 가라.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두려워 하는 자리에서 일어나라, 실패한 자리에서 일어나라, 걱정하고 염려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라는 것이다. 모세가 소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망을 주시고, 하나님이 시작을 주시고, 하나님이 승리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힘을 주고 자신감을 주던 것을 좀 잃어버려도 괜찮다. 몇번 실패를 경험해도 괜찮다. 하는 일이 좀 막히고 있어도 괜찮다. 우리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새로운 시작을 주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라갈 마음만 있으면 된다.
힘을 잃고, 두려워 하고, 주저하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새로운 시작과 소망을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다. 5절을 보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여기서 우리가 두 가지를 보아야 한다.
첫번째, 문제의 해결능력은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하나님의 해결책이 무엇인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모세와 함께 하셔서 모세가 바로를 이겼다. 홍해를 건넜다. 광야에서 일어났던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했다. 모세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했던 것과 똑같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ly the same way로 함께 하실 것이다. 이것은 모세가 일으켰던 기적을 너도 일으킬 것이고, 모세가 경험한 하나님을 너도 경험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은 모세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모세의 죽음이 더 이상 타격을 주지 못한다. 여기서 하나님이 하시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출애굽과 광야40년은 모세가 이룬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룬 역사라는 말이다. 이제 나는 여호수아 너와 함께 가나안 땅 정복을 이루겠다는 말이다.
두번째,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능력을 봐야 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모든 지혜로 세상을 운행하시고 통치하신다. 혼동과 공허와 흑암을 정복하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지혜가 미치지 않는 영역이 없고, 하나님의 빛이 비취지 않는 공간이 없다. 이런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 있는 모든 흑암과 공허와 혼돈의 문제가 치료되고 해결된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라. “네 평생에 너를 대적할 자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세상에는 상대할 대적이 없다는 말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그것이 문제든, 그것이 영적인 존재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다 무릎을 꿇는다. 모세가 바로에게 갔을 때 처음에는 바로가 비웃었다. 그런데 모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대면하고는(10가지 재앙) 두손 두발 다 들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분으로 오신 것이 예수님이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1:23)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죄로 인해서 발생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시고, 사탄의 권세를 모두 꺾으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할 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요일5:11-13)
예수님을 구원자와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고, 앞으로 예수님을 통해서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만 빌려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주인으로 실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모든 결정에 예수님이 관여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은 약속이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겠다는 선언이고, 선포이다. 이런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난다. 그런데 선포와 선언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현실의 문제와 싸울 때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드러난다. 6절과 7절을 보자. “6.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은 두려운 일들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식을 이야기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겠다고 선언한 뒤에 두려움을 주는 문제, 낙심케 하는 문제, 자신감을 잃게 만드는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길 것이라는 말이다. 그때마다 하나님과 함께 싸워서 이기라는 말이다.
문제를 이기는 실제적인 방법이 8절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때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생기겠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모세와 비교하면서 힘들게 하겠는가? 여호수아가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겠는가? 감당하기 버거운 적들이 얼마나 괴롭히겠는가?
그런 상황이 생길 때마다 모세가 있었으면, 내가 모세가 아니라서 이기지 못하는 구나! 나는 안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두려움과 패배의식과 자기 연민에 빠져 있지 말라는 것이다.
어려움이 찾아올 때마다, 사람들이 낙심하게 하고 시험들게 할 때마다, 자책감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마다 율법책을 펼쳐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읽으라는 것이다.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묵상하라는 말 속에 밤낮 두려움과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하루 종일 두렵고, 화가나고, 생각으로 괴롭히는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더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입으로 선포하면서 두려움을 이기라는 말이다. 두려움과 문제가 크면 더 자주 하나님을 찾고, 더 자주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이다. 두려움과 불신앙이 내 마음과 생각을 장악하지 않도록 믿음으로 고백하고, 선포하고, 대적기도하면서 이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왜 이런 어려움이 생기는지,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무엇이 나를 이렇게 공격하는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많이 거짓된 감정에 속는다. 거짓된 감정을 깨뜨리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2.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56:2-3) 다윗을 대적하는 원수들이 일어나서 다윗을 삼키려고 했다.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기에 삼킬 수 없었다. 그런데 다윗에게는 거짓 두려움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그때 다윗은 그 거짓 두려움에 굴복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선포하고 찬송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거짓 두려움을 깨뜨리는 확신을 주셨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믿고 외치는 승리의 외침이 얼마나 멋진가?
하나님이 왜 여호수아에게 율법책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라고 했는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답을 주기 위함이다. “그 가운데 기록된 대로 다 지켜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8절) 말씀 안에 길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맗씀을 펴들고 읽고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다. 길을 여신다. 해야할 일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가면 길이 평탄해지고 형통하게 된다.
문제가 일어나고, 두려움이 찾아오고, 고통이 찾아올 때 내 생각으로 이기려고 하면 안된다. 내가 뭔가를 궁리해서 문제를 피해보려고 하면 더 큰 올무에 걸린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어야 한다. 문제의 원인과 실체를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듣고, 하나님의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여호수아가 가져야할 자신감과 담대함의 근거는 자기 자신이 아니다. 자기를 도와주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약속의 말씀을 강하게 붙들면 붙들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지혜가 생기고, 능력이 생긴다. 이것을 하나님이 약속하셨다. 9절을 보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 우리가 그 예수님이 하신일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문제와 싸워우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반드시 이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싸워서 가나안 땅을 점령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싸워서 승리를 경험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