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미 20~30년 전의 잘못된 이념과 정책으로 인구의 구조가 만들어졌고, 결혼과 출산할 인구가 줄어버린 인구절벽은 그때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한 교회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저출산 고령화의 원인은 크게 2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부, 명예, 권력 등의 세상의 우상을 열망하며 따라가는 우상숭배이다. 둘째, 성경이 가르치는 성-생명-가정-결혼의 제도의 원리를 무시함으로 인한 혼인과 출산의 감소이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급격한 부의 축적, 권력과 명예의 획득을 목격한다. 그것을 경험한 세대는 하나 혹은 둘밖에 없는 자녀 교육에 모든 열정과 자산을 바치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그 교육의 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산아제한을 통해 인구를 줄임으로써 같은 가계 소득으로도 일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하는 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그 반대급부로 자녀들의 성공을 우상화하여 과열된 교육이 시작되고, 학교에서 같이 배우는 공교육과 별개로 사교육 시장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내 아이에게 더 많은, 더 좋은 교육을 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에 부모들은 도박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가진 것을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모의 욕심은 자녀들의 개성, 받은 은사, 육체적, 정서적, 지적 능력과 관계없이 밀어붙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정서가 황폐해지고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주일 예배에 가지 않고 하나라도 더 배워 좋은 대학에 가도록 부모가 독려할 때, 부모의 우상을 함께 섬기거나, 부모로부터 받은 신앙을 의심하고 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자녀들이 자라서 결혼할 나이가 되면 지금까지 투자하여 성취한 것을 손해 보지 않을 배우자를 선택하기 위해 저울질하지 않겠는가? 그 자녀들이 결혼하면 자기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할 자녀들을 낳을 것인가? 자녀 교육에 투자해야 할 돈을 생각할 때 아이 하나를 더 낳을 때 교육비를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 투자된 돈이 자녀를 행복하게 하지도, 실제로 성공하게 하지도 못하였음을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보지 않겠는가? 그런 까닭에 결혼 적령기의 많은 청년이 비혼이나 만혼을 선택하고, 설령 결혼한다 해도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한다. 그 청년들의 부모 역시 자녀 교육에 대한 맹목적 투자가 허망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자녀 교육 경험은 비혼의 자녀에게 결혼을 권하지 않게 되고, 결혼한 자녀의 임신과 출산을 추천할 논리를 잃어버리고 만다. 지금까지 투자해서 쌓은 경력을 결혼, 임신, 출산의 과정으로 무산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우상숭배의 세속 문화의 강력하고 큰 흐름을 거슬러 움직이면서 오히려 전체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을까? 성경 속 다니엘과 세 친구는 세상 문화 속에 살되, 세상을 닮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 각 가정이 세속 우상숭배를 거부하며 성경적 세계관을 정립하고,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야 한다. 세속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도 세상 속에서 흔들림 없는 삶을 잘 살아가는 다니엘과 같은 멋진 예를 보여주어야 한다. 

필자도 자녀들이 어릴 때,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부모를 그 흐름 아래 무릎 꿇게 하려는 바알과 같은 우상임을 지속적으로 느꼈었다. 주위의 친구들과 사교육 시장은 그 흐름 안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우리 부부를 계속 위협하며 무릎 꿇기를 종용했었다. 결국 그것을 거절한 우리의 선택은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좋은 기숙학교에 보내면 학교가 잘 알아서 교육해 주겠지 하는 생각은 큰 오해였다. 미국도 좋은 중고등학교일수록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동일한 우상숭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우리 자녀들의 교육을 통해 명확하게 배운 것은, 자녀 교육의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으며, 누구도 대신 책임져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자녀만 잘 교육받는다고 그들이 사는 세상 전체가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상이 경쟁적일수록 그 사회는 험악하고 살벌해진다. 동시대에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같이 잘 살아야지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서 나와 내 자녀들도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고무적인 점은 세속의 사교육 흐름에 무릎 꿇고 동참하는 것이 우상숭배임을 깨닫고 그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한 다니엘과 같은 그리스도인 부모들과 자녀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 사교육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자녀와 함께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기독교 세계관 교육을 통해 성경이 삶의 모든 기준이 되도록 교육하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의 성경적 자녀 교육의 최종 결과를 쉽게 장담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식의 근본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삼고 그 가르침을 듣고 행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복이 무엇임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