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론 논쟁에서 존 롤스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을 비판하고 나선 공동체주의적 정의론자 마이클 왈쩌(Michael Walzer)는 1980년 이래 프린스턴대학교의 고등학술연구소에서 종신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대한 깊은 조예를 가진 사상가로 『하나님의 그늘 아래: 히브리 성경의 정치』(2012), 『출애굽과 혁명』(1986) 그리고 『해석과 사회비평』(1987)이라는 작품을 남기고 있는 탁월한 사상가입니다.
특히 『해석과 사회비평』(Interpretation and Social Criticism)이라는 책에서, 왈쩌는 아모스 선지자를 “사회비평가”(social critique)라고 주장합니다. 저와 같이 정치신학과 사회윤리를 전공한 사람에게는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말’이지만, 평신도들은 오해의 여지가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지자의 일반적인 역할은 하나님 말씀의 대언이지만, 그들은 부패한 신앙과 사회적 관행을 교정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전적인 사회평론가의 일만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사역은 선지자의 중요 사명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면서 종종 선지자의 기능을 되새깁니다. 선지자가 있던 시대와 지금이 같지는 않지만, 이러한 선지 전통이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3가지 직분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이라는 3중 직분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도 예수님의 3중 직분을 이어 충실히 감당하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벧전 2:9)라고 말했으며, 바울은 우리가 “선지자와 사도들의 터”(엡 2:20) 위에 세워진 성도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신사도 운동”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우리가 성경을 기록하던 시대의 선지자와 방불하여 소위 “직통 계시”를 받는다는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우리가 선지자적 직분을 감당한다고 말할 때, 구체적으로 선지자가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 선지자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대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전형적인 문서 선지자인 이사야나 예레미야는 예언할 때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라는 표현을 반복합니다. 이들은 선지 사역에 대한 반대급부를 구하지도 않고, 오직 신성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전하며, 반대와 핍박을 이겼습니다.
왈쩌는 『해석과 사회비평』이라는 저술의 3장에서 아모스와 요나를 비교하면서, 아모스가 이상적인 사회비평가임을 주장합니다. 첫째, 아모스는 말씀을 받는 백성과 영적, 민족적인 연대성을 가지고 사역했고,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일했습니다. 둘째, 아모스는 사회적 오류에 대한 구체적인 죄를 지적하지만, 요나는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한다”(욘 3:4)는 소식 한 마디만 달랑 전합니다. 셋째, 아모스는 기존의 율법에 대한 재해석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상황에 적용이 가능한 “특수주의적” 사역을 했지만, 요나는 강포한 니느웨의 국제정치와 폭력(욘 3:8)이라는 비교적 간단한 “보편주의적” 지적에 그칩니다.
아모스 선지자의 백성을 향한 사랑과 열정, 아모스의 치밀한 논리와 메시지의 구성, 구체적 죄의 지적과 회복의 ‘로드 맵’(road map) 제시, 그리고 임박한 멸망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40년 후 북조 이스라엘은 멸망합니다. 그러나 니느웨의 회개를 바라지 않는 요나의 불성실한 사역에도 불구하고, 니느웨는 왕과 백성이 모두 금식하며 회개합니다. 선지자의 사회비평 사역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지만, 아모스의 탁월한 선지 사역이 이스라엘의 구원을 담보하지는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