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주의(deconstructivism)는 1960년대, 독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주장한 사상입니다. 이 사상은 주로 예술과 건축에 영향을 끼쳤는데, 이 때부터, 많은 건축물들이 호텔과 아파트는 정방형, 교회건물은 높은 첨탑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디자인하는 열풍이 불었습니다. 예를 들어,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해체주의 건축물의 한 예입니다. 생긴 것이 너무나 특이합니다. 조개 껍데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만, 기존의 건축 디자인을 완전히 벗어난 디자인입니다. 원래, 건축물들이 나름의 오랜 전통적 디자인을 고수해 온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구조적인 이유, 재정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건물이 높아질수록 무너지지 않고 안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 안전한 건물을 지어야 합니다. 그런데, 건축물의 디자인을 형이상학적으로 설계하면, 도면을 그리기는 쉽지만, 건물을 짓기는 어려워집니다. 이상한 형태의 건물을 지으려면, 그 특이한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서 더 많은 재료들이 필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오페라 하우스는 조개 껍데기 세 개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하중이 어떻게 되는지 무척 계산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결국, 시공자가 결정한 것이 경비에 상관없이 무조건 튼튼하게 짓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근 철골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건축 디자인에 관해서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체주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해체주의는 기존의 통념, 기존의 전통을 고리타분한 인습으로 여깁니다. 그것들을 말 그대로 해체하여, 새로운 가치, 새로운 방법, 새로운 이론, 새로운 논리를 다 수용하여 창의적인 단계로 나아가자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전통과 문화 습관들 중에는 영적이고 신앙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녀가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어 자녀를 낳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20대, 30대, 심지어 40대에 이르기까지 가정, 자녀, 배우자의 존재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지금 "누구든 꼭 결혼해야 한다 자녀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른 상황이 존재합니다. 독신으로 지낼 수도 있고, 자녀 없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혼생활을 마감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적어도 이 같은 영적이고 신앙적인 전통이 중요하고, 바람직하고, 선한 가치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어야 하는데,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가치들은 낡은 인습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최근, 어떤 부모님이 20대 초중반의 자녀에게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라고 했더니, 자녀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결혼은 인간이 잘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고집하고 장려한 세뇌정책(propaganda 정치인들이 하는 과대선전)에 불과해 교수님이 그렇게 말했어." 실제로 현재 한국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결혼할 바에야, 자기개발, 자기 꿈을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혼해도 둘만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문화 가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내가 아닌, 배우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삶을 통해, 사랑을 배우는 일, 자녀를 키우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는 일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세상의 기독교와 맞닿아 있던 기존의 전통과 문화 가치가 우리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해체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팬데믹 3년 사이에 기독교에서 수천년 동안 단 한 번도 타협되지 않았던 주일성수, 주일날 교회에 직접 가서 다 함께 예배드리는 전통이 해체되는 일을 보았습니다. 이제 상당수의 성도들, 특히 젊은 크리스천들, 신앙의 전통을 모르고 맹목적으로 신앙생활 하던 분들은 집에서 영상으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예배를 드려도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예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배는 인격이신 하나님, 천국 보좌에 계신 존귀하신 하나님을 마주하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려, 그분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영상으로 시청하는 것이 예배라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피치 못할 사정으로 영상으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서서, 또 때로는 무릎을 꿇고, 온 마음을 집중하고 몰입하여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시청하겠다는 것은 예배를 구경하겠다는 것이고, 그저 좋아하는 설교 듣는 것이 예배의 전부라고 여기는 올바르지 못한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그나마 그들을 지켜주던 신앙의 전통과 가치가 해체된 것입니다. 그런데, 틀이 없으면, 내용도 의미도 해체가 됩니다. 다시 말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20세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을 경계하는 크리스천 리더들이 있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 즉 근대주의, 발달한 과학과 기술, 새로운 가치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의 다양성을 모두 받아들이자는 사상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내 생각도 맞고 당신의 생각도 맞고 모든 사람의 생각은 독특하고 다 맞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와 "모든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다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가 파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사회의 기존의 가치와 문화가 완전히 배제되고, 가치 없고, 쓸데없는 것으로 폐기처분되는 해체주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무서운 점입니다.
우리는 더욱 깨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뜻은 낡고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진리라고 외쳐야 합니다. 모든 것이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마지막 때가 맞습니다. 자신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하고, 사도 바울이 사도들의 전통을 지키라"라고 선포한 것처럼, 끝까지 보수적이고 오래되어 보이는 신앙의 전통과 문화 습관 가치를 지켜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