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주변에서 솔로몬 왕을 비판적으로 설교하는 목회자를 거의 만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과 같이 지혜를 얻으라,” “솔로몬은 일 천 번제를 드린 예배의 성공자이다” 혹은 “솔로몬처럼 성전을 짓고 복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익히 들었습니다. 솔로몬의 긍정적인 측면을 통해 도전과 권면을 받았으나, 부정적인 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드물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있는 대로 읽으면, 솔로몬에게는 실책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부정적인 측면을 체계적으로 진술한 구약신학자는 월터 부르그만(Walter Brueggemann, 1933-)입니다. 이 분야의 빼어난 통찰을 『예언자적 상상력』(1978, 2001, 2018)이라는 책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후기 통치에 들어 유대왕국은 “모세가 맞서 싸웠던 이집트의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고 부르그만은 언급합니다. 이로써 솔로몬 왕국의 역사는 “제국의 역사”가 되었다고 그는 평가합니다.
우리는 성경의 인물을 너무 영웅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솔로몬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전건축과 왕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지혜를 구하는 솔로몬의 간절한 기도는 훌륭하고, 잠언, 아가와 전도서를 기록할 정도의 깊은 영성과 깨달음은 놀랍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신명기의 “이상적인 왕의 조건”(신 17:14-20)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첫째로 솔로몬은 “말을 많이 두지 말라”(신 17:16)는 명령을 어겼습니다. 마병과 병거는 전쟁 준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경고는 유대왕국이 군사력에 기반한 나라가 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부국강병은 필요한 일이지만,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강력한 군사력을 의지하는 것은 우상숭배라 할 수 있습니다.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21:31)고 적으면서, 솔로몬은 이집트로 사람을 보내 말을 사고, 병거 1,400대와 마병 12,000명을 두어 관리하고, 말을 중개하는 무역을 했습니다(왕상 10:26-29).
둘째로 솔로몬은 “아내를 많이 두어서 마음이 미혹되게 말라”(신 17:17a)는 명령을 어겼습니다. 이웃 나라의 공주를 데려오는 것은 외교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국제 관계를 위해 여호와의 명령을 소홀히 여기고, 700명의 후궁과 300명의 첩을 두었습니다. 신명기적 역사관을 가진 기록자는 솔로몬 왕이 이집트 파라오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합니다. 아름다운 왕비와 후궁이 우상을 들여오고, 그는 나이가 들어 시돈의 여신 아스다롯을,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랐습니다. 심지어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와 암몬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예루살렘 동편에 산당을 세웠습니다(왕상 11:1-8).
셋째로 솔로몬은 “은금을 자신을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 17:17b)는 명령도 저버렸습니다. 그는 막대한 조공을 거두고, 무역을 통한 이익을 남겼습니다. 한 해에 666달란트의 금을 거두었으니, 22톤 이상이 되는 막대한 돈입니다. 금으로 수백 개의 방패를 만들어 사용하고, 은은 돌처럼 흔하게 했습니다. 부와 영광의 지극한 빛 속에서 솔로몬의 마음은 어두워졌으며, 지혜는 욕심에 가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도 취하면서 우상도 섬겼습니다.
솔로몬 왕은 결국 젊었을 때의 간절한 마음, 곧 초심을 버렸습니다. 아가서의 첫사랑 술람미 여인은 허무한 별궁(harem)의 쾌락 추구로 바뀌었으며, 종교적 관용은 우상을 허용하는 혼합주의로, 토목공사와 조세제도의 강화는 지역감정과 빈부격차의 그늘로 바뀝니다. 결국 선지자의 경고와 대적의 반역으로 권위가 흔들립니다. 이 죄의 틈이 점차 확장되어 남북분단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