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포루스(Theophorus) 곧 ‘하나님을 지닌 자(혹 하나님을 짊어진 자)’라 스스로 불렀던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Ignatius of Antioch)는 사도 요한의 제자다. 2세기 교회를 이끌었던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이그나티우스의 생애는 단편적으로만 전해질 뿐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의 이름 이그나티우스는 헬라어 ‘이그나티오스’의 라틴식 이름이다. 학자들은 그가 유대인이 아닌 것을 고려하면 헬라식 이름인 ‘이그나티오스’가 아니라 로마(라틴)식 이름 ‘이그나티우스’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한다.
그의 이름 이그나티우스는 ‘불같이 뜨거운 사람’이란 뜻이다. 순교에 대한 열정과 예수님 중심의 뜨거운 신앙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이름이다. 그는 모든 서신에서 자신을 ‘테오포루스’로 소개한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지고 가는 자’라고 불렀다. ‘지고 간다’라는 말은 자신 안에 하나님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성장 과정의 이야기는 없다. 비잔틴 교회의 전설로는 그가 마태복음 18:2-5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어린아이라고 하지만 교회사에서는 그에게 이런 설명이 없다.
4세기의 교회사가(敎會史家)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지시로 에보디우스를 계승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의 3대 감독이 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성실한 목회자로서 40년 동안 안디옥 교회를 담임했다. 그는 안디옥에서 태어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청장년기부터는 안디옥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유세비우스가 자기 책에서 이그나티우스가 69년에 안디옥의 감독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서신에 그의 신학이 있다. 비록 완전히 정리된 논리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일관된 신학이다. 우선 질서와 일치를 강조하는 그의 교회론은 2세기 교회 형편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그는 교회의 질서를 강조하며 목회자의 지도력에 순종할 것을 거듭 강조했다. 물론 장로단과 집사들의 권위도 강조하면서 그들에게도 순종할 것을 공히 강조하였다.
다음으로는 그의 성찬론이다. 그에 따르면 성찬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허락하신 은혜를 감사하기 위한 예식이다. 또 성찬은 감사의 예식을 할 때 나누는 떡과 잔이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셋째로 교회론이다. 이그나티우스가 처음으로 보편 교회(Catholic church/Universal Church)라는 용어를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또 번갈아 가며 부르는 성가(교송 찬송)를 도입했다. 이그나티우스는 오늘날까지 그의 시가 전해지는 찬송 시인이었다.
로마의 황제 도미티안(Domitian)의 박해 시기에 이그나티우스는 매일 설교하고, 매일 기도하고, 그리고 매일 금식하면서 양 떼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돌보았다. 환란기에도 그의 목회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다. 주후 115년 겨울을 나기 위해 안디옥에 머물던 황제 트라얀은 로마 황제 외에 다른 주(Lord)를 섬기는 이그나티우스를 심문하고 그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그나티우스는 트라얀 황제(Trajan, 98-117년)명령에 따라 로마로 압송되었으며 콜로세움에서 짐승에 찢겨 순교하였다.
이렇게 압송되어 가면서 남긴 편지가 7개인데, 서머나 교회로 보내는 편지는 그중의 하나다. 이그나티우스는 이 편지를 드로아에서 에베소 교회 출신의 조력자 부로스의 도움을 받아 기록했다고 알려진다.
서머나 교회는 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중에 하나이다. 서머나는 지금의 터키 항구도시인 이즈미르다. 서머나 교회 폴리갑 감독과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요한을 스승으로 두었던 동문이었고 상호, 신뢰하며 존경하는 동역자였다. 이 편지는 사랑하는 동역자 폴리갑이 섬기는 서머나 교회의 사랑과 격려를 받았던 이그나티우스가 절절한 감사를 담아 보낸 편지다.
이 편지는 서론과 21장 29절로 구성되었다. 서두 인사,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 대한 칭찬과 감사, 기독론, 영지주의자의 가현설 경계, 그리고 결말과 작별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타 서신과 비교하면 작별인사 내용이 좀더 길게 구성되었다. 아마도 자신이 머무르며 돌봄을 받았던 서머나 교회 성도들과 관계가 끈끈했기 때문에 나눌 인사 내용이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편지는 서머나 교회 칭찬으로 시작된다. 이어서 이그나티우스는 기독교의 믿음을 설명한다. 그것은 육신으로 십자가와 고난을 겪으신 주님을 믿는 것이다. 1장에서 오네시모가 담임 목회자임을 소개한다. 이어서 2장과 3장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을 구체적으로 그린다. 그리고 그는 야수와 맞불어 싸울 수 있는 순교의 행운을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
2장과 3장에서 1장의 내용이 반복되는 점이 없지 않지만 힘주어 예수님의 실존적 생애와 십자가와 고난 그리고 부활을 설명하는 이유는 영지주의의 이단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당시 영지주의는 만연한 이단 사상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각 교회로 보내는 서신 속에서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영지주의의 문제를 강조했다.
결말과 작별인사는 좀 더 무겁다. 작별인사는 ‘정신을 차리자!’라는 강력한 메시지로 시작한다. 정신을 차리는 영적 삶의 기초는 주교(담임 목사)를 존경하고 순종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심지어 “무슨 일이든 담임 목사를 제쳐두고 행하는 사람은 악마에게 봉사하는 자(9:1)”라고 말한다.
이그나티우스는 다양한 봉사자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그 봉사가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을 하나님의 봉사자로 인정해 주고 격려해준 서머나 교회 성도들을 칭찬한다. 그리고 안디옥 교회 담임 목사였던 이그나티우스는 자신이 두고 온 안디옥 교회를 걱정하며 기도를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드로아 교회의 안부를 전하면서 편지 쓰는 것을 도와주는 부로스를 다시 소개하며 그의 헌신과 수고를 칭찬한다. 그리고 그는 서머나 교회에서 만난 성도의 안부를 묻고, 자신과 함께하는 동역자들의 안부를 일일이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그나티우스가 소름 끼치도록 차분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며 성도들을 격려하는 것이 감동이고 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