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는 바뀌었어도 인간들의 행동 스타일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사기(史記)> 유림전에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사례가 나온다. 소위 배운 자(有識)라는 사람들의 논단이나 TV방송 패널로 나와 궤변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며 '참 좋은 것 배워서 악하게 써먹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ALPS 처리수에 대한 괴담에 대해 2023년 6월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공개 게시판에 쓴 충북대 약대 박일영(64) 교수의 글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나는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를 가져오면 방류 농도를 희석해서 마시겠다. 과학으로 판단할 사안을 주관적 느낌으로 왜곡하지 말라."
방사성 동위원소를 30년 간 연구한 전공 교수의 담론이다. 그는 대한약학회 방사성 의약품 분자학 회장이다. 그 강단이 참 멋있다.
중국 한경제(漢景帝시대/ B.C. 157-141) 때 시경(詩經)에 능통했던 원고(轅固) 박사가 생각난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여 옳다고 생각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할 말을 다했다. 당시 90세의 노인이었지만 황제의 부름에 감격해서 "젊은이들에게 지지 않겠다"고 백발을 휘날리며 나섰다.
그런데 이 강직한 노인이 나타나면 맥을 출 수 없는 엉터리 학자들이 한사코 황제의 뜻을 되돌려보려고 원고(轅固)에 대한 험담을 퍼뜨리고 있었다. "저 노인은 이제 무용지인(無用之人)입니다. 시골에서 손자나 보게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한무제는 이런 중상모략을 다 물리치고 원고(轅固)를 등용키로 했다. 원고와 산동의 공손홍(公孫弘)이라는 소장학자도 함께 등용했다. 공손홍은 노령의 원고를 견제하고 무시했지만, 원고는 전혀 개의치 않고 주장했다.
"지금 학문 세계가 혼란스러워 속설(俗說/ 사이비 이론)들이 번지고 있다. 그냥 두면 정론(正論)들이 사설(邪說) 때문에 질식할 수 있으니, 젊은 학자로서 호학(好學)의 길에 정진해 정당한 학설논리를 굽혀(曲)가며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일러주었다.
이것이 사이비 학자들과 폴리페서(politics+professor)들에 의해 세상을 혼란시키지 말라는 '곡학아세(曲學阿世)'가 생겨난 시초다.
결국 공손홍도 이 원로 학자의 올곧은 충고에 감동되어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원고가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보낸 산동성에서 시(詩)를 배우는 자들은 모두 원고를 본받았고 기꺼이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한경제(漢景帝)의 어머니 두태후는 열렬한 노자(老子) 지지자였는데, 원고가 노자에 대해 존경할 인물은 아니라고 평하자 분노하여 감옥에 하옥시키고, 90세 넘은 노인에게 매일 돼지 잡는 험한 일을 시켰다.
이에 당황한 황제가 어머니 몰래 예리한 칼을 보내 원고가 이 일을 잘 수행하도록 도와줬다. 일의 전말을 듣고 두태후도 원고를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겁 없이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直言)을 해주는 원고에 감동한 황제가 그를 삼공(三公)의 하나인 청하왕태부(淸河王太傅)로 승진시켜 국정자문을 받았다. 이제 노령이니 그만 면관(免官) 해달라고 수 차례 청원했으나 허락지 않다가, 건강이 악화돼 출사(出仕)치 못할 때에야 그를 면관해주었다.
올곧고 바른 충고와 직언을 해온 원고(轅固)도 훌륭했고, 그러한 인재를 알아보고 국정에 참여시킨 한경제(漢景帝)도 훌륭한 지도자였다. 요즘 각종 언론에 논단을 쓰거나 패널로 나와 발언하는 중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교묘하게 국민들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이비 학인들이 적지 않게 보인다.
물론 어느 진영을 대표하여 출연했으니 자기의 책임을 다해야 되는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지나친 논리를 고집하거나 듣는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나가는 것은 본인이나 그 진영이나 언론매체나 국민 시청자 모두에게 이로울 게 없다. 외줄타기처럼 어렵지만 좀 더 조심하길 바란다.
후쿠시마 원전 처리수 문제로 서울 공대 교수들끼리 다투게 생겼다. 자기 소신을 주장하는 것은 좋으나 상대방 의견도 경청할 것이며, 국가의 이익과 공익을 저해하지는 말길 바란다. 어떤 직선(直線)도 땅에 그어놓고 무한대로 연장하면 곡선(曲線)이 되고 만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학교 14-15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