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Photo : 기독일보) 강태광 목사(월드쉐어 USA)

지난 글에 키케로가 인문학을 의미하는 후마니타테스(Humanitates)라는 말을 알아보았습니다. 키케로는 헬라 문화가 지배하는 로마 사회에서 획기적인 개념을 가진 '후마니타테스'를 소개하며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했습니다. 바람직한 인간 교육을 위해 인문학(후마니타테스/Humanitates)를 주장했습니다.    

키케로는 많은 라틴어책을 남겼고 그의 책들이 라틴어 교재로 사용됩니다. 키케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가요, 가장 위대한 문장가로 인정받습니다. 키케로는 라틴어 산문의 품격을 높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키케로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인정한 사람들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입니다. 키케로의 명문장을 맹목적으로 암송하고, 그의 문장구성 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키케로의 문장을 암송했던 사람들을 키케로주의자라고 불렀습니다. 고전의 내용과 정신을 이어받으려 했던 인문주의 교육이 고전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단순히 고전 문장의 암송과 모방에 집중한 것입니다. 현대는 고전어 교육에 제한된 편협한 인문주의적 경향을 키케로주의라고 합니다. 즉 고전 명작 읽기에 인문학을 국한 시키는 것을 키케로주의라고 합니다.    

키케로는 수사학, 정치, 역사, 윤리, 우정, 노년 등 각종 주제에 관련된 다양한 글을 남겼습니다. 키케로는 많은 저술과 탁월한 연설문을 남김으로 인문학의 개화기를 이끈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작품은 그의 연설문입니다. 그는 연설을 통해서 인간다움, 사람 냄새, 공동체 정신, 덕, 용기, 절제 등에 관한 명언들을 남겼습니다. 그의 연설문은 인문학 교과서입니다.    

그의 연설문에서 인문학 (후마니타테스/Humanitates)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그에게 후마니타테스는 이성과 언어가 조화를 이뤄 사람다운 삶의 향기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후마니타테스를 활용해 인간미가 넘치는 개인의 삶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만한 세상, 사람이 살만한 품격있는 나라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후마니타테스를 품은 인간이 이상적인 로마인이라면 후마니타테스를 품은 국가가 로마 공화국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키케로의 인문학은 교실이 아니라 법정과 정치현장에서 나왔습니다. 이론적 교과서가 아니고 실제 삶에서 발전된 것입니다. 키케로의 연설 가운데 법정 연설이 중요합니다. 많은 법정 연설이 전해 오지만 키케로가 남긴 두 개의 법정 연설이 인문학(후마니타테스/Humanitates)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섹스투스 로스키우스 변론과 시인 아르키아스 변론입니다.    

키케로의 "섹스투스 로스키우스 변론"은 법정연설의 모범입니다. 이 변론에서 키케로는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라는 청년을 변호했습니다. 청년의 아버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는 농장을 14개나 가졌던 아메리아(Ameria)지방 부호였습니다. 그가 로마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살해되었습니다. 
   
고발자들은 그의 아들이 아버지 재산을 탐내서 죽였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이 사건을 분석한 키케로는 이 청년을 고소한 자들의 소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들이 아버지 섹스투스 로스키우스를 살해하고 아들마저 살인범을 만들면 자신들이 그 재산을 차지하려는 의도를 보았습니다.  

키케로는 이 변론의 목적이 살맛 나는(후마니타테스)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변론의 주요 내용도 공멸하는 세상이 아닌 서로 더불어 사는(후마니타테스)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서로 연대해서 용기로써 불의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변론에서 등장하는 인문학(후마니타테스)의 목적은 인간다움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키케로의 두 번째 법정 변론은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입니다. 그는 이 변론에서 인문학이란 말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했습니다. 그리스 출신의 시인으로 로마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던 아르키아스는 기원전 62년에 로마시민권을 부당하게 취득했다고 고발당했습니다. 사료에 의하면 아르키아스가 루쿨루스 장군의 군사적 공적을 찬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 루쿨루스의 라이벌이었던 폼페이우스가 아르키아스의 로마시민권을 문제 삼았습니다.   

거대한 세력의 첨예한 갈등에 현장에서 키케로가 이 어려운 변호를 맡은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먼저는 아르키아스가 키케로에게 수사학을 가르쳐 준 것이었습니다. 개인적인 보은의 기회였습니다. 둘째는 아르키아스를 보호하는 것이 인문학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키케로는 이 변론에서 세 가지 의미를 주장합니다. 첫째, 시인 아르키아스가 로마를 인문학(후마니타테스)적으로 도왔다고 강조합니다. 둘째, 시인 아르키아스를 보호하는 것이 로마인이 인문학적인 인간(인간미 넘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셋째, 아르키아스를 보호하는 것이 로마가 인문학적인 나라(인간미 넘치는 나라)가 되는 길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키케로가 약 40세에 '아르키우스 변론'을 했습니다. 명성과 지위를 가진 키케로가 이렇게 인문학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로마 사회에 인문학이라는 용어의 대중화가 되는 중요한 기회였습니다. 키케로는 이 변론'에서 시인 아르키아스에게 로마시민권을 주는 것이 인문학을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키케로는 법정 연설에서 인문학의 효용을 두 가지로 정리합니다. 먼저 개인을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키케로 자신이 시인 아르키아스 등 스승들의 교육을 통해서 인문학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미 넘치는 개인의 육성에 인문학(후마니타테스/Humanitates)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둘째로 집단이나 국가를 인간미 넘치는 따뜻한 사회로 육성하기 위해서 인문학(후마니타스)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특히,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한 변론에서 로마가 품격있고 인간미 넘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 인문학(후마니타테스/Humanitates)의 필요성을 강변했습니다. 인문학이 국가의 품격을 높인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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