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의 자손의 비즈니스
(창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1. 가인의 비즈니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자신이 하던 농사 비즈니스에 큰 어려움을 초래하게 되었다. 땅은 아무런 소산을 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농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농업을 할 수 없게 된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쪽을 놋(방황함)에 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죽임을 면할 수 있는 표를 주셨지만 하나님을 스스로 떠난 가인은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커다란 두려움에 가인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인류 최초의 성을 쌓고 그 안에 들어갔다(창 4:17).
하나님과의 단절, 피조 세계와의 단절을 선언한 셈이다. 덕분에(?) 인류 최초의 도시가 생겨났다. 도시는 그렇게 하나님 앞을 피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자들이 모여 땅의 힘을 빌리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생존해야 하는 처절한 비즈니스 현장으로 출발한 것이다.
2. 가인의 자손의 비즈니스
그러나 도시생활은 그때나 지금이나 오히려 더 큰 두려움을 주는 무서운 곳이다. 성을 짓고 그 안에서 숨어 살아도 이웃과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두려운 곳이 된다. 자녀를 많이 나아서 힘을 불려야 했다(창 4:17). 그런데 한 명의 아내로는 출산의 한계가 있다. 기다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한 일부일처제를 깨고 일부다처제가 시작되었다(창 4:19). 목축업이 개발되었고(창 4:20) 여러 가지 철제 기구가 개발되었다(창 4:22).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처절한 몸짓 덕분에 인류의 문명을 탄생시킨 것을 볼 때 합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3. 두려움의 비즈니스의 결과
아이러니하지만 인간의 두려움은 지금도 많은 성취를 이루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성취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대체할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의 공허함은 그들이 만들어낸 악기의 연주(창 4:21)로도 달랠 수 없다. 공허함의 결과는 이웃에 대한 폭력성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적개심으로도 나타난다(창 4:23-24). 그렇게 가인의 후손들은 많은 성취를 했지만 매몰되어가고 있는 인간성을 어쩔 수 없어 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비즈니스가 성취를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비즈니스에 대한 몰입이 하나님의 열심이 아닌 인간의 두려움에서 나온 괴물이 아닌지 돌아보라.
세상에서의 성취가 아닌, 하나님과의 동행이 비즈니스의 목적이 될 때
비즈니스, 예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