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분별하거나 판별하는 판단기준을 시금석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의 믿음이 구원에 이를 만한 참된 믿음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하는 시금석들이 있습니다. 부활을 믿고, 안 믿고는 그 사람이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가늠하는 성경적, 교리적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일과 예수 그리스의 재림 때에, 죽었던 모든 육체가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인간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믿기 힘든 기적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일인데, 다시 살아났으니 기적이 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곧, 부활한 대상을 확실히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미국 타임지가 미국 감리교 교회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회자의 46퍼센트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곧, 그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주님을 부인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 거짓 믿음을 가진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은 참으로 무섭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활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가늠하는 또 다른 시금석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진 성도는 죽음을 지나치게 아쉬워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내세, 즉 천국과 영생을 믿기 때문 입니다. 또 천국과 영생의 확실함을 믿기 때문에 세상 것들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집회나 세미나를 인도할 때, 그 자리에 참석하신 성도님들께 "지금 당장 주님이 오라고 하시면, '네'라고 대답하면서, 곧바로 천국에 가고 싶으신 분들은 손들어 보십시오"라고 질문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시는 분은 모인 수의 10퍼센트도 되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왜 모두 천국을 더 사모하지 않으실까? 성경 말씀에 의하면, 천국이 더 실제적인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장례 때에 사랑하는 가족과 지인을 떠나보낸, 성도들의 눈물에 고인을 천국에 보낸 일에 대한 감격의 눈물이 있는지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부분은 가족과 친척 친구 지인을 보낸 슬픔의 눈물이 대부분입니다. 만약, 천국이 실재임을 분명히 믿는다면,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2세기 초,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장례를 위해 묘지로 갈 때에도 마치 즐거운 소풍이나 가듯 노래를 부르고'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행진한다."아리스토텔레스의 편지로 보아, 초대교회 성도들은 믿는 자들의 죽음과 죽음 이후의 천국과 영생, 부활을 확고히 믿은 나머지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 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크리스천들은 내세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죽음을 당해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부활, 죽음 외에 믿는 자의 믿음을 가늠하는 시금석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금석들을 통하여, "현재 우리 자신의 믿음은 어떠한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제 믿음이 아닌, 바로 지금, 현재 믿음이 있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곧 구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