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초등학교의 산수시간, 선생님이 더하기 빼기를 가르치며, 사과 다섯 개 중에 두 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한 학생이 큰소리로 두 개가 남는다고 대답을 합니다. 당황한 선생님이 타이르며 '다섯 개 중에 두 개를 먹으면 세 개가 남아야지' 하니까 '우리 엄마가 먹는 게 남는 거라고 그랬어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영성이 뛰어난 한국 문화와 말에는 먹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인사할 때 '차 한 잔 하실래요?', 어른들을 뵐 때는 '진지 잡수셨습니까?' 묻습니다. 생일에는 미역국을 먹는 것이 중요하고, 나이를 '먹는다.'라고 표현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축구시합 같은 것을 할 때도 전 세계 사람들은 공이 들어가는 것을 '실점했다.(lost)'고 표현하는데, 한국사람들은 '골을 먹었다.'고 말합니다.
사실 먹는 것처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주요 소재 중 하나가 먹는 것입니다. 성경을 펴면 선악과를 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세주 예수님이 처음 기적을 베푸신 곳은 가나의 혼인 잔치 집이었습니다. 먹는 음료수가 떨어지자 주님은 순종하는 하인들을 통해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4복음서에 다 기록된 유일한 기적도 오병이어의 기적, 즉 광야의 군중들을 먹이시는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도상에서 만난 제자들과 빵을 떼셨고, 갈릴리 바닷가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구워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이 마지막 하신 행위가 바로 성만찬이셨습니다. 평소처럼 제자들과 함께 드시던 식탁의 빵과 포도주를 들어 '이것은 나의 몸이요, 나의 피다.'라고 하시며, 빵을 먹어 육체 안으로 들이는 것처럼 성찬의 예수님을 먹어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하는 증거처럼 식탁을 앞에 두고 감사기도를 합니다. 매일 하루 세 끼 밥을 먹기 전 동행하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이 되면, 가족에게도 감사할 수 있고 인생을 감사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 한 주간 동안 만난 많은 분들을 통해 우리 교회에서 섬기는 식사와 국수의 위대함(?)을 칭찬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에 와서 식사를 하면 사랑의 수고와 섬김의 정성을 느끼며 힐링이 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손님으로 와서 식사를 하신 분들은 지역교회를 깨우는 모범된 신앙을 우리 교회 식탁을 통해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30년 만에 그렇게 맛있는 국수는 처음 먹어본다고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 실버드림 대학을 기다리는 이유가 식탁의 사랑과 섬김이 혼밥의 외로움을 날려버리는 위로와 기쁨이 되기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사랑의 수고로 가득한 식탁을 준비하는 우리 교회의 모든 권사님들과 성도님들을 칭찬하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반드시 식탁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은혜가 가득해지는 교회와 성도가 되기를 소원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