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시대에 십자가를 진사람들은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 라고까지 생각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십자가의 형틀에서 사형 당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십자가형(刑)은 로마시대에 행해진 극형(極刑) 가운데 하나였고 고대 로마의 사형 방법 중 하나로, 본래는 신아시리아, 페니키아, 페르시아 제국에서 사용하던 처형 방법이였습니다. 그러던 십자가형은 기원전 1세기 말 로마에서 식민지인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십자가형을 공식 채택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노예들을 나무에 묶어놓고 고통을 주는 가혹한 체벌에 불과했었지만, 기원 후 1세기부터 로마 제국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한 처형 방법으로 성격이 바뀌게 된것입니다.

이렇게 십자가형은 그 당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수일 동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가한 후 십자가에 메달아 죽게 하는 잔인한 형벌(刑罰)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는 십자가를 진 자들을 저주 받은 자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당연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비참했던 십자가의 의미(意味)가 죄 없으신 유일한 분,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짏어 지시게 되면서 십자가의 의미가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요한복음 1장 29절 말씀을 보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혹자들은 그토록 참혹했던 십자가를 이제는 “지우개의 은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과연 이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존 부르크만이란 사림이 쓴책에 보면 일류가 2000년 동안 발명한 위대한 발명품 121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가 바로 지우개라고 합니다. 왜 지우개와 같이 단순해 보이는 물건이 위대한 발명품 중에 하나가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우개의 발명으로 우리 생활에는 큰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지우개가 있게 되면서 음악가들이 악보를 적다가 잘못해도 지울수 있게 되었고, 화가들도 그림을 그리다가 잘못 그리면 지우고 다시 그릴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놀라운 변화(變化)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을 위해서 십자가 위에 돌아가시게 되면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지울수 있는 용서와 화해의 지우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말하기를 “십자가의 은혜를 지우개의 은혜이다.” 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귀하신 보혈(補血)을 찬미하며 기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모든 죄와 저주를 씻어주신 능력이며, 예수님의 피는 나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더러운 마음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시간 나를 위해 십자가위에 못 박히시고, 고통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흘려주신 예수님의 보혈이 내 마음과 내 몸을 적셔주심을 믿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이와같은 은혜를 사모하며 주님, 내 마음에 예수님의 보혈이 강물 같이 흐르게 하소서. 주님 나의 평생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게 하옵소서 기도하는 시간을 조용히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이와같은 고백과 기도를 통해 주님에 놀라우신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주님에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할렐루야한인교회 송재호 목사

“주의 말씀들이 들어가면 빛을 주며 그것이 우매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 (시편 11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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