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 윤석열 대통령이 어린 시절 출석하던 교회를 찾아 "법학을 공부해 보니, 헌법 체계나 모든 질서, 제도가 다 성경 말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과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공식적으로 기독교인도 아닌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언론 보도로만 알려진 김진욱 공수처장의 '시무식 돌발 찬송 독창'에까지 '종교편향'을 내세우며 사과를 요구한 불교계도, 정작 훨씬 편향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는 아무 반응을 하지 못했다. 종교편향 시비를 걸 수도 없는 '팩트'의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해당 발언을 계기로, 이정훈 교수(울산대)를 만나 서양 법과 정치 체계 전반에 미친 기독교의 영향에 대해 들었다. '불교계 브레인'으로 일하다 회심 후 지난해 목사 안수까지 받은 이정훈 교수는 성경적 가치를 삶으로 실천하는 '성경적 세계관 교육 PLI 스터디클럽'을 통해 기독교계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서구 문명, 기독교 없이 설명 불가
폴 존슨, 법치주의 모델 모세 꼽아
구약 율법, 인간 생명 인격권 존중

-정말 헌법 체계나 모든 질서 제도가 다 성경 말씀에서 나왔나요. 

"사실 서구 문명이라는 게, 기독교를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됩니다. 제가 PLI 사역을 하면서도 강조했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영역에서 성경이 끼친 영향력은 엄청나죠.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 성경에서 나왔다'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윤 대통령만 했던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법치주의 하나만 봐도, 역사학의 거장 폴 존슨(Paul Bede Johnson)이 <유대인의 역사>에서 '유대·기독교 문명이 아니면 법치주의를 정착시킬 수가 없었다'고 소개합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우월하다' 같은 우열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해하시면 안 되고요. 중국 문명에서는 법치주의 전통을 찾기 어려워요. 법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통치하는 것은 법치주의가 아닙니다. 그러면 진시황도 법치주의가 되지요.

법에 따라 강력하고 엄격하게 통치한다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 사상은 중국 문화권에도 있었지만 '법의 지배(Rule of Law)', 법치는 차원이 다릅니다. 인간이 자의적으로 통치하지 않고 법의 정신과 원칙에 따라 질서가 유지된다는 거죠.

폴 존슨 막스 베버 이정훈
▲(왼쪽부터)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이정훈 교수의 <성경적 세계관>.

로마 제국도 법이 발전했지만 우리 기독교 세계관, 그러니까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정착한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는 헌법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다 알게 되죠. 대통령께서도 법률가시니까 그 이야기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션스쿨인) 대광초등학교를 나오고, 어린 시절 교회를 다니셨잖아요. 그러니까 익숙하실 거고, 아버님이 경제학자이기도 하시고요.

PLI 성경적 세계관 교육 이전에는 여러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Max Weber)도 잘 모르셨고, 맑스(Marx, 마르크스)로 알고 읽지 말라던 분도 있었죠(웃음). 서구에 자리잡은 기독교 사상은 경제 원리뿐 아니라 정치 원리가 더 강합니다."

-폴 존슨 박사님은 구체적으로 뭐라고 했나요.

"폴 존슨은 법치주의의 원 모델로 모세를 뽑아요. 구약의 모세는 왕이 아니죠. 성경을 읽고 가르침을 받은 유대 기독교 문명에서는 익숙하지만, 사실 독특하고 설명이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직접 통치하신다는 의미가 굉장히 강하죠. 구약에선 전제정(專制政)처럼 왕이 권력을 갖는 자의적 통치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에게 법, 말씀을 주셔서 모세를 통해 직접 통치하는 방식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함부로 구약 성경이 잔인하다고 비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율법은 인격을 소중히 하고 인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당시 근동 지역에 율법과 비슷한 제도가 많았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결정적 차이가 바로 생명권 존중입니다.

이런 전통이 시대가 점점 발전하면서도 빛을 발합니다. 종교개혁 중 칼빈의 공화주의가 나오죠. 사회 정치 제도와 교회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어요.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장로교회가 많은데,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영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제대로 연구가 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PLI에서 사무엘 러더포드(Samuel Rutherford) 같은 선각자들에 대해 조명한 바 있습니다. 불과 1600년대에 그가 <법이 왕이다(Lex Rex)>라는 책을 써요. 이 사무엘 러더포드가 웨스트민스터 총회에 스코틀랜드 대표로 참여해요. 신학자이면서 굉장한 통찰력이 있었는데, 이 러더포드의 정신이 후일 미국 건국으로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사무엘 러더포드 Lex Rex
▲사무엘 러더포드의 <법이 왕이다(Lex Rex)>.

당시만 해도 더 강렬했던 것이 하나님의 법(Divine Law), 자연법이었습니다. 자연주의와는 다른 개념이므로, 오해하면 안 됩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법으로 통치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지상에 임한다는 의미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총회가 택한 것도 법치(法治)입니다. 이것은 교황주의와 완전히 달랐습니다. 단순한 다수결의 원리도 아니면서, 민주적인 제도입니다. 가장 상위 규범인 헌법부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 규칙들까지, 다 하나님이 주신 이 원칙에 맞아야 했습니다. 그 정신이 장로교 정치 원리였습니다.

이것이 존 칼빈(John Calvin)의 제네바에서부터 구성·실현되면서 굉장히 체계화됩니다. 그러한 권징과 치리를 담당하는 총회나 당회 등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형들이 만들어졌어요.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도 다들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신학적으로 다른 입장들도 존중하면서 토론했습니다. 여기서도 누가 더 지지를 많이 받느냐보다, 누구의 의견이 더 성경적이고 하나님 말씀이 합당하냐는 관점에서 조율된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어요.

그런 것들이 실제로 청교도 혁명이나 명예 혁명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영국이 의회주의의 원조이자 선두주자가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개혁신학
▲제네바 빠스띠옹 공원에 세워진 종교개혁 400주년 기념비. 왼쪽부터 파렐, 칼빈, 베자, 낙스. 

웨민 총회, 영국 정치에 공헌해
대의제 민주주의 원형 만들어져
예배·전도 위한 권리 확보하다
각종 기본권도 하나씩 자리잡혀
종교, 권력도 침해할 수 없다는
회중 교회 모델 헌법에 탑재돼

-미국은 어땠나요.

"이러한 영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박해받으며 2등 시민으로 몰리던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가서 나라를 세웁니다. 그때 이분들의 열망은 '종교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이때는 국교를 부인하는 침례교의 '자유 교회' 운동이 굉장한 영향을 끼칩니다. 당시는 통치자의 종교가 곧 백성들의 종교였거든요.

이걸 한 단계 더 개혁하면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자고 주장합니다. 시작은 칼빈이 했지만, 국교 부인의 원칙이 오늘날 정교분리의 출발이었습니다. 이 개념이 미국 헌법에 탑재되는데, 저는 이것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말씀을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해요.

그 이전에 종교개혁이 왜 '인권의 어머니'인지를 아셔야 합니다. 책에서도 강조했듯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박사가 이미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윤석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예배 중 기도하고 있다. ⓒ대통령실

위그노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죠. 당시 왕이 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가도 갑자기 철회한 뒤 막 학살하고 망명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개혁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저항하면 죽이겠다는 것이죠.

그래서 종교개혁을 열망하던 성도님들 머릿속에 각인된 것이, '종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면 통치자도 헌법에 귀속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빼앗기면, 예배의 자유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왕도 헌법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헌법을 준수하는 통치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그 헌법 위에 하나님의 법이 있죠.

예배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여행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고, 교회를 세우려면 법인 설립의 자유, 모여서 예배드리려면 집회의 자유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기본권들이 하나씩 자리잡히고 체계화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배제하고 완전히 세상적 관점에서 인권과 헌법의 역사를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서 교회 역사를 조명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이라고 봅니다. 존 로크(John Locke)가 자유권을 강조했을 때도 당시는 기독교 문화권이었어요. 성경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권리 확보가 기본권을 강화시켰고, 존 칼빈의 공화주의 사상이나 자치 원리, 교회 정치 원리 등이 거꾸로 세상에 영향을 줬지요.

웨스트민스터 총회
▲1643년 웨스트민스터 총회 모습을 담은 그림. 

제가 현재 한국 사회를 안타까워하는 부분도 이런 측면입니다. 전에는 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선한 영향력으로 세상에 영향을 주는 빛과 소금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가 움츠러들어서 어떻게 하면 세상적인 것들을 끌어들일까 생각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분들은 '미국이 헌법을 만들 때 다 독실한 복음주의 크리스천들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고 하십니다.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닙니다. 존 로크 개인이 독실했는지는 그와 하나님만 아시겠죠. 조지 워싱턴이 이신론자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웨스트민스터신학교 피터 릴백(Peter A. Lillback) 총장은 그가 굉장히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사료를 놓고 해석하기 나름이죠. 개인 신앙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때문에 개인의 신앙이 어땠는지보다는 당시 침례교인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이 종교의 자유를 열망했고, 그것을 원칙으로 삼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신론자들과도 연대했던 이유가 있어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상태에서 선교의 자유, 전도의 자유를 확보하면 복음을 전파할 수 있으니까 연대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 정부가 있는 라오스에 복음을 전하러 갔다면 어떻게 할까요? 거기서 편의를 봐주는 관리들과 협력할 수 있잖아요. 물론 그 관리를 전도하려고 애써야겠지만, 이처럼 독실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협력할 수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역사예요. 그 과정에서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쟁취하죠. 그러면서 기본권이 체계화됩니다.

저명 법학자 해롤드 버만 교수(Harold Joseph Berman)는 아예 <법과 혁명(Law and Revolution)>이라는 책으로 정리했어요. 에모리대 존 위티 주니어(John Witte Jr.) 교수도 <권리와 자유의 역사(The Reformation of Rights: Law, Religion and Human)>에서 이를 굉장히 잘 설명했죠.

해롤드 버만 존 위티 주니어
▲(왼쪽부터) 해롤드 버만의 <법과 혁명>, 존 위티 주니어의 <권리와 자유의 역사>.

세상에서는 성경과 기독교의 영향력을 일부러 외면하는 쪽으로 역사를 기술하지만, 그 이면에 성경과 기독교가 없었다면 법치도 없고 자유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법치가 전제돼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수결로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어리석은 중우정치와 차이가 없죠. 다수결은 정의나 진리가 아니고, 결국 법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가 발전돼야 합니다.

종교의 자유를 중심으로 한 자유권이 헌법으로 보장되면서, 교회들도 부흥합니다. 이후 1차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고, 미국은 독립합니다. 빛과 소금이 되고자 했던 크리스천들의 영향력이 헌법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특히 미국 헌법에는 기독교의 영향력이 강했죠. 기독교는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거듭나 회심을 고백하는 것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이 구조에서 개인 종교의 자유는 국가 권력도 침해할 수 없다는 회중 교회 모델이 헌법에 탑재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헌법을 만든 다음 교회에 영향을 준 방식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이 각성해 하나님께 마음껏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전도하겠다는 열망 때문에 헌법이 구성된 방식을 대통령께서도 공부하면서 이해하셨겠죠. 아마 제 강의를 많이 들으셨을 수도 있고요(웃음)."

서구 기독교 가치 붕괴로 이상 현상
민주주의 발전, 일부 세력 왜곡시켜
한국, 단기간 법치주의 정착 긍정적
인권, 진화론과 무신론 한계 드러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서구의 역사적 과정을 모르고 기독교 문화도 없이 시스템이 만들어지다 보니 전 정권에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도 나타나고 '검수완박'처럼 법안을 꼼수로 통과시키고 있는 걸까요. 서양에서는 과정과 절차를 그래도 중시하지 않나요.

"미국도 그렇고 서구 사회도 지금 그러한 기독교적 가치들이 붕괴되다 보니 그런 현상들이 막 일어나고 있죠. 그런데 지금 한국은 이런 과정에 있어 발전 도상에 있다가 일부 세력에 의해 왜곡돼 버리니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저는 굉장히 짧은 시간에 법치주의가 정착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조금은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세워진 것이 불과 1988년이었어요. 반면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 등을 추종하는 자들은 대중의 힘을 이용해서 권력을 차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나치 당시 유대인 출신 칼 뢰벤슈타인 교수(Karl Löwenstein) 등이 말한 '방어적 민주주의(abwehrbereite Demokratie)'입니다. 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점을 이용해 권력을 잡은 다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자들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주장입니다. 파시스트나 전체주의자들은 항상 그렇게 등장하거든요. 이를 빨리 치유하면서 어떻게 하면 더 깊이 있고 수준 높은 법치주의로 나가느냐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카이캄
▲이정훈 교수(가운데)가 목사 안수를 받고 있다. ⓒ이대웅 기자

-윤 대통령은 성탄절에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과 질서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이라며 "이웃을 사랑하고 실천하는 것이 예수님이 세상에 온 뜻을 구현하는 길"이라고도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사법적 절차뿐 아니라, 우리가 정의(定義)를 인식할 때 꼭 필요한 관점이 바로 황금률(黃金律)입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예수님 말씀, 황금률 자체가 법이잖아요.

요즘 미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미국은 전성기 때도 굉장히 관대했죠. 똑같은 슈퍼파워 국가라도 러시아나 중국이 그런 힘을 가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는 미국의 기독교 문명 덕분이에요. 그런데 이런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죠.

미국에도 인종 차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지배 방식이 어땠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러한 과거를 회개했을까요? 물론 미국도 가야 할 길이 멀고, 여러 어려움 속에 있죠. 그렇게 모순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아요. 그렇지만 기독교 문명 덕분에 전반적으로 그 나라가 건강하게 유지돼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 윤석열 김건희
▲지난해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성경을 올려두고 기도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권리·인권 의식 등도 신학적·교회사적 배경이 다 있어요. 말씀드렸듯 구약도 생명권을 존중하는 방식이었기에,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자꾸 갖다 붙이는데, 다 설명하자면 너무 길지만 근대 이후 인권 친화적 마인드 자체가 기독교에서 왔습니다.

근대 인권이 열릴 때 '불가침의 권리'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신학적이에요. 인간이 하나님 주신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자유·재산을 인간에 의한 정부나 권력이 함부로 뺏을 수 없다는, 기본권의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상 기본권의 출발이 바로 성경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존엄하다'는 데서 출발하는 거죠. 아니면 근거를 찾을 수 없어요.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거든요.

이 부분이 진화론이나 무신론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요새 모든 걸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하나님을 전제하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그럼 인권은 어디서 출발합니까?' 물으면, '그냥 있다고 치고 이야기합시다'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제가 볼 때는 그들이 훨씬 종교적입니다. 믿음이 좋아요(웃음)."

문정인
▲문정인 전 특보. ⓒjtbc 캡쳐

-그런가 하면 지난 정권 '외교 책사'로 불린 문정인 교수가 지난해 말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스탠스가 향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대한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중국하고 친해지고 북한이 원한다면, 저들에게 인권이란 상관없는 거겠죠. 하지만 기독교인이라면 소위 진보라 해도 그럴 수 없죠. 인간의 존엄성이 성경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진보라 부르는 것도 무색하지만, 진보적 노선이 필요하다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존엄한 피조물을 북한처럼 다루는 권력을 어떻게 용인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