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두주간 나성과 뉴욕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동네인지라 그 동네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대강 이런 내용의 말들이 나왔습니다. 첫째, 살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사기꾼들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두번째, 한국과 가까운 관계로 각종 행사와 모임이 많아 미국생활 발전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교계이야기를 들어보니 교인들은 대단히 피상적인 신앙생활로 들떠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별의 별 쎄미나와 훈련모임이 많아서 그런 것 따라 다니지 않으면 뒤로 밀리는 교회, 모자라는 교인으로 취급 당한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자기교회에서 신앙생활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고 여기저기 쎄미나 따라다니면서 귀와 머리만 커진 교인들이 되고 있다는 말들을 했습니다. 물론 큰 동네라 좋은 면들도 많이 있겠지만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아무래도 더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제게 어느 분이 “아틀란타는 패자부활전 하는 동네라면서요?”라고 질문이라기 보다는 농담이 섞였지만 조금 무시 비슷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패자들을 많이 다시 살려주시는 역사가 있는 동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 어떤 이유에서 이건 우리교회가 미국 성장하는 100교회 선정되어 기라성 같은 미국 교회들이 포함된 명단에 ‘Korean’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도 신났지만 ‘Atlanta’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경기도 역전승이 신나는 것처럼 인생살이도 ‘패자부활전’ 괜찮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많은 것입니다.
리차드 포스터가 쓴 “영적훈련과 성장”에 보면 현대사회의 문제를 피상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깊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신앙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은 다음 세 가지, 즉 시끄러움과 조급함과 혼잡함을 통하여 크게 역사한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들을 ‘물량주의’에 빠지게 했을 때 만족한다.” 저도 공감합니다. 시끄러움과 조급함과 혼잡함이 오늘 우리사회의 문제입니다. 시편말씀에 “잠잠하여 내가 하나님인줄 알라.”는 말씀이 오늘 이땅에 주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많이 조심하고 있지만 가끔 다른 동네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들이 너무 거창합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말들이 진실되거나 소박한 맛이 없고 과장과 과대망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가끔 어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집단적인 정신병에 빠진 것처럼 시끄럽고 조급하고 혼잡합니다. 무슨 대단한 일들 하는 것도 아닌데 교회행사나 목사들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 거대하고 극단적인 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너무 거리가 먼 모습들입니다. 예수님 마음을 비슷하게 닮아야 할텐데 너무 뻔뻔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저는 아틀란타에 살아보면서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대도시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골스러운 순진함이 살아있어서 좋습니다. 아직까지 교계나 한인사회도 그리 큰문제가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리차드 포스터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여기 아틀란타는 아직 “재창조의 침묵”이 가능한 동네입니다. 조용히 목회를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목사님들을 만나 보아도 순수한 인간미가 남아있어서 좋습니다.
가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안도현이 쓴 ‘사람’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글인데 제목이 “아들아,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입니다.
“아들아, 알겠느냐? 저 석류 두알은 저 혼자의 힘으로 열매가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여름 땅으로 떨어져 스러진 수백 송이의 꽃들, 그 지는 꽃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열매가 맺힌 거란다. 아들아, 아직 너는 어려서 언제든 화사하게 피는 꽃이 되고 싶겠지. 하지만 지는 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사과 한 알을 먹을 때에도 그 사과를 위해 떨어져 스러진 수많은 사과 꽃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네가 떠 먹는 한 숟갈의 밥에도 농민들의 땀방울과 뜨거운 햇살과 바람소리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리하여 이 가을에는 부디 그 앞에서 겸손해지기 바란다.”
겸손이 요구되는 계절입니다. 열매만 바라보고 열매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은 뿌리나 떨어진 꽃들을 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근시안적인 우둔함 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와 힘의 과시로 돌아가고 이것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습니다. 요즘 나 자신에게서 이것을 발견할 때 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제게 어느 분이 “아틀란타는 패자부활전 하는 동네라면서요?”라고 질문이라기 보다는 농담이 섞였지만 조금 무시 비슷한 말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패자들을 많이 다시 살려주시는 역사가 있는 동네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에 어떤 이유에서 이건 우리교회가 미국 성장하는 100교회 선정되어 기라성 같은 미국 교회들이 포함된 명단에 ‘Korean’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도 신났지만 ‘Atlanta’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도 자랑스러웠습니다. 운동경기도 역전승이 신나는 것처럼 인생살이도 ‘패자부활전’ 괜찮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많은 것입니다.
리차드 포스터가 쓴 “영적훈련과 성장”에 보면 현대사회의 문제를 피상성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깊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말하기를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신앙을 방해하는 사탄의 세력은 다음 세 가지, 즉 시끄러움과 조급함과 혼잡함을 통하여 크게 역사한다. 우리의 대적은 우리들을 ‘물량주의’에 빠지게 했을 때 만족한다.” 저도 공감합니다. 시끄러움과 조급함과 혼잡함이 오늘 우리사회의 문제입니다. 시편말씀에 “잠잠하여 내가 하나님인줄 알라.”는 말씀이 오늘 이땅에 주시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많이 조심하고 있지만 가끔 다른 동네에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쓰는 용어들이 너무 거창합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말들이 진실되거나 소박한 맛이 없고 과장과 과대망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가끔 어지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집단적인 정신병에 빠진 것처럼 시끄럽고 조급하고 혼잡합니다. 무슨 대단한 일들 하는 것도 아닌데 교회행사나 목사들에 대한 소개가 대부분 거대하고 극단적인 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너무 거리가 먼 모습들입니다. 예수님 마음을 비슷하게 닮아야 할텐데 너무 뻔뻔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걱정됩니다.
저는 아틀란타에 살아보면서 조용한 것이 좋습니다. 대도시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골스러운 순진함이 살아있어서 좋습니다. 아직까지 교계나 한인사회도 그리 큰문제가 없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리차드 포스터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여기 아틀란타는 아직 “재창조의 침묵”이 가능한 동네입니다. 조용히 목회를 할 수 있는 분위기입니다. 목사님들을 만나 보아도 순수한 인간미가 남아있어서 좋습니다.
가을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입니다. 안도현이 쓴 ‘사람’이란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글인데 제목이 “아들아, 지는 꽃의 힘을 아느냐”입니다.
“아들아, 알겠느냐? 저 석류 두알은 저 혼자의 힘으로 열매가 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여름 땅으로 떨어져 스러진 수백 송이의 꽃들, 그 지는 꽃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열매가 맺힌 거란다. 아들아, 아직 너는 어려서 언제든 화사하게 피는 꽃이 되고 싶겠지. 하지만 지는 꽃을 잊지 말기 바란다. 사과 한 알을 먹을 때에도 그 사과를 위해 떨어져 스러진 수많은 사과 꽃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오늘 아침 네가 떠 먹는 한 숟갈의 밥에도 농민들의 땀방울과 뜨거운 햇살과 바람소리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그리하여 이 가을에는 부디 그 앞에서 겸손해지기 바란다.”
겸손이 요구되는 계절입니다. 열매만 바라보고 열매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은 뿌리나 떨어진 꽃들을 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근시안적인 우둔함 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들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은 힘의 논리와 힘의 과시로 돌아가고 이것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 자리잡고 있습니다. 요즘 나 자신에게서 이것을 발견할 때 마다 깜짝 깜짝 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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