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전인 15세기에 이미 기독교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도 현재 일본의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뚜렷하게 대두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교회 주의" 때문입니다.

20세기 초에 일본에 가장 많이 영향을 끼친 "우찌무라 간죠"라는 신학자가 있었는데 그가 무교회 주의를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교회는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교세가 성장할 수가 없었고 또한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지를 못했습니다. 한국에도 "우찌무라 간죠"의 영향을 받은 김교신, 함석헌 같은 분들이 계셨지만 한국에는 외국 선교사들의 선교 열정에 힘입어 이미 교회가 뿌리를 내린 상태에 있었기에 무교회 주의가 많은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모슬렘 지역 국가에서는 ironical하게도 제일 과격하다고 하는 이란에 기독교의 개종자 수가 제일 많다는 보도를 (약 15만 이상으로 추정) 접하면서 복음이 생명으로 증거될 때, 누구에게든, 어디에서든,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모슬렘 지역이나, 공산진영에서 복음이 더 확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회라는 울타리가 마련되고 그 안에서 "가지의 접붙임"이 일어날 때, 더 크게 확산하는 폭발적인 응집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접붙임을 합니다. 이 접붙임의 기술은 이미 수천 년 전에 개발되어서 성경에도 이 원리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돌 감람나무에 붙어있던 "나"라는 이방인의 가지를 잘라내어 참 감람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하는 것으로 우리의 회심, 그리고 나아가서 교회를 비유합니다.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입니다.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머리요 교회는 몸이요, 성도는 그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도는 교회라는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출석하지 않으면서 혼자서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복음이고,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무교회 주의가 잘못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지를 접붙임하면 그 가지가 살아서 튼튼해지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일 년 이상의 기간이 걸립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모르시던 분이 처음 예수를 믿고 교회에 소속되어 자리 잡기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립니다. 참 감람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올라오는 참 진액을 제대로 빨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서로 도우며 참고 인내함이 필요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참 감람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교회에 소속하여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교회 생활하는 것은 소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