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변두리 지역에서 보낸 유년시절은 시골생활 못지않게 추억이 많다. 한겨울 대낮은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 있어도 땅이 꽁꽁 얼 만큼 추웠다. 겨울날 정오가 지나면 뒷산 무덤가는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로 변했다. 풀숲이 사납게 우거진 여름보다는 황량한 겨울 야산이 아이들 놀기엔 훨씬 좋았다. 주인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봉분 위를 날아다니며 신나게 놀다가도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모두들 제 집으로 흩어졌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면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그 곳은 다시 죽음의 고요가 엄습하는 무서운 공간으로 변했다.
그 날은 아버지를 따라 큰댁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때였으니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다. 친척들이 모여 심각한 얘기가 오갔는지, 딸내미 하나만 데리고 가셨던 아버지가 너무 늦게 큰댁을 나섰다. 차편이 마땅치 않아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겨우 우리 동네까지 오는데 그만 통금시간이 되고야 말았다. 집에 가려면 불광동에서 내려 연신내를 따라 15분은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어린 딸을 데리고 통금에 걸리게 생겼으니, 아버지 판단에는 차라리 버스 종점까지 가서 거기서 야산을 넘어 집에 가고자 하신 것 같다. 밤 12시, 9세 인생에 그 무서운 산을 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시 내 생각에는 천 만원을 준대도 절대 하지 않을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전쟁기념관에서 봤던 육이오때 중공군 포로의 군용점퍼를 입어보는 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한밤중에 우리집 뒷산을 넘는 일이었다. 전자는 당시 극성을 부렸던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영향이었고, 후자는 어른들의 교육용 각본에 주로 등장했던 망태 할아버지와 TV 인기 드라마였던 전설의 고향 탓이었던 것 같다. 전설의 고향에 의하면 야심한 밤 뒷산에는 주로 구미호가 나타났다. 그날 밤, 천만원을 준다는 사람도 없는데 망태 할아버지와 구미호가 번갈아 나타날지도 모르는 그 무서운 산길과 마딱뜨려야했다.
보름달이 우리 부녀를 환하게 비춰준 그 날,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야산을 넘던 기억은 평생 하나님 아버지가 내게 어떤 분인가 하는 의미를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와 함께 내려오는 그 산길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망태 할아버지가 나타난대도 구미호가 꼬리 아홉 개를 펼쳐 길을 막는다 해도 정말 무서울 게 없었다. 그 때만큼은 우리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후에 살아오면서 정말 그랬다. 죽을만큼 힘든 고비의 순간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을 가야하는 순간에도 내 손을 굳게 잡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하면 힘이 나고 용기가 생겼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소개해 주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죄를 용서해주시고(마6:15), 무엇을 구하든지 이루게 하시고(마18:19),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고(눅11:13), 탕자를 맞아 주시고(눅15:20),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고(요1:12), 영생을 주시고(요6:40),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시고(요6:44),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시고(갈4:6),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고(엡1:3),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엡1:17), 아들로 대우하여 우리를 징계하시고(히12:7),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약1:17) 분이다.
지금도 우리 곁에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한 말씀이며 만물을 다스리는 진리이시다. 그 아버지께서 여전히 내 손을 꼭 붙잡고 세상을 걸어가자 하신다. 진리 안에 살아가자 하신다. 복음과 함께 산을 넘어가자 하신다. 그 겨울 밤 손을 꼭 잡고 함께 걷던 부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