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 카톨릭의 엄청난 박해 가운데, 끝까지 신앙을 지켰던 프랑스 개신교 크리스천 위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독일인 개신교 목회자로써, 프랑스에서 교회를 섬긴 벤자민 슈몰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618년에서 1648년 사이에는 유럽 전체에 카톨릭과 개신교가 대립하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름하여, 30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을 통하여,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독일 이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독일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흑사병 창궐로 당시 1800만 명이던 독일 인구가 800만 명으로 줄어들 정도였습니다.
이 무렵, 독일 출신 개신교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는 30년 전쟁의 최대의 격전지였던, 프랑스의 실레지아에 있는 한 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전쟁으로 인해, 교회 종탑도 없어진 상태였고, 통나무와 흙벽으로 된 예배당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습니다. 또, 30년 전쟁에서 카톨릭이 승리하였기 때문에 카톨릭의 박해가 심해, 다시 종탑을 세울 수도 없었고, 장례식까지도 허락을 받아야만 치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슈몰크 목사님은 주님의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과로로 쓰러지고, 30대 초반에 중풍과 백내장이 올 정도였습니다. 그는 개신교 크리스천들이 사는 주변의 36개 마을 들을 심방할 정도로 목회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개신교 교인들이 목사님 내외분을 칭찬하며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슈몰크 목사님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이 심방을 다녀오는 길에 목사님의 통나무집에 불이 난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통나무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고 목사님 부부는 잔해 속에 두 아들이 부둥켜 않은 채 불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목사님 부부는 울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심방을 가지 않았다면, 자녀들이 살았을텐데" 하는 후회와 원망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기도하는 중,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비통했지만, 도리어 원망했던 자신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때, 그가 영감을 받아 쓴 말이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입니다.
1.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아멘
2.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아멘
3.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목사님은 목회 기간 동안에 1000여 편이 넘는 찬송시를 작사하였고, 여전히 하나님을 지극히 섬기는 주님의 종으로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후, 목사님은 여러 차례 더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나중에는 실명에 가까운 지경까지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팡이를 짚고 아내의 부축을 받아 심방과 목회를 하시다가 소천 하셨습니다.
슈몰크 목사님은 오늘 우리 믿음의 후배들에게 커다란 영적도전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 도전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지극히 헌신하고 있는가?"와 "우리는 모진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도전입니다. 슈몰크 목사님은 자신의 몸이 닳아 없어지듯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가진 것 다 빼앗겨도, 하나님의 주권을 여전히 신뢰하였습니다. 어쩌면, 슈몰크 목사님은 두 아들이 죽는 순간,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신 주님을 떠올렸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은 어떤 모습입니까? 아파도 예배하고, 힘들어도 섬기고, 고통과 죽음이 다가와도 천국과 영생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있습니까? 적어도 16세기 크리스천들의 신앙은 그런 모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