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천 년 전 세 차례에 걸쳐 선교여행을 했던 바울은 여러 차례 배를 탔습니다. 당시에는 배가 장거리 이동수단으로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기에 아시아의 여러 지역과 유럽을 선교한 바울은 당연히 배를 많이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바울이 건넜던 많은 바다들 가운데 마지막 여정인 로마 여행길에서 유일하게 배가 지나는 바다를 기록하였습니다.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행27:5) 항해사가 기록한 항해일지가 아닌 성경, 사도행전은 의사 누가가 성령의 감동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전해주기 위해 기록한 책입니다. 어떤 것도 무의미하거나 잘못된 것이 없는 성경에서 왜, 바울이 마지막 항해 여정에서는 길리기아 바다를 건넜다고 기록했겠습니까? 길리기아는 바울이 태어난 '다소'가 있는 고향 땅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땅에서 태어나 이방인들 사이에서 자랐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헬라파 유대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지중해 세계의 공용어였던 헬라어를 모국어로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일찍이 로마 시민권을 획득한 부모에게서 태어나, 바울 역시 법적으로는 로마시민으로 보호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고향인 길리기아 바다를 건너면서 이 모든 것이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였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지 않았다면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 그냥 사라지는 인생일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 없이는 많은 배움도, 높은 지위와 권력도, 부와 명예도 잘 사는 게 아닙니다. 바울이 열심히 살았어도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한 삶이요, 교회를 향해서는 포행자요 훼방자요 핍박자였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고 살았더니 최고의 인생으로 역전되고 가장 가치 있는 삶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대인과 같이 오천년의 긴 역사를 가진 특별한 민족으로 마지막 시대에 기름 부어주신 혈통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세계 최강대국 미국에서 전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를 구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하여서 우리 교회는 세계 최대의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해외 장자교회로 하나님이 세우셔서 마지막 시대에 선교하는 교회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가든지 보내든지 돕든지'의 사명 순종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고 산다면 바울같이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자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삶을 산다면 상황과 조건을 뛰어넘는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업과 학업과 모든 삶에서 내 목적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을 붙들고 사는 은혜와 복이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