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온 만물을 다스리는 사명으로 살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으로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하므로 죄를 짓고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니 땅에는 가난과 저주가 가득하게 되고, 사랑의 관계가 미움과 살인과 전쟁의 관계로 바뀌게 되고, 인간은 병들고 죽게 되어 심판을 받아 영생지옥에 가는 절망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의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 사함의 길을 여셨으며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천국에 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침례를 받아 교회생활을 하는 성도는 선악으로 죄를 상대하지 않고,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상대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속죄제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할 때는 제물의 피를 성전의 물건들과 성소에 뿌리고 나머지는 다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사르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속죄 제물로 오신 예수님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가시면류관 쓰고 채찍에 맞아서 피를 흘리셨지만, 육체의 죽음은 영문 밖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히13:11-12)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이 말씀을 오늘날 적용한다면, 거룩한 교회는 예수님의 보혈로 덮여 죄 사함을 얻는 곳으로 죄 문제는 교회 밖에서 불태우며 처리해야 합니다. 깨끗한 집이나 더러운 집이나 다 쓰레기가 생기고 더러운 빨래도 나옵니다. 하지만 쓰레기가 쓰레기 통 안에, 빨래가 빨래통 안에 있지 않고 쓰레기가 아무데나 있고 빨래가 침대 위나 식탁 위에 굴러다닌다면 더러운 집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교회에서 생명의 풍성함이 아닌 신앙의 갈등과 사망을 느끼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 안에 죄 문제에 대한 선악의 판단이 십자가의 은혜를 밀어냈기 때문입니다. 영문 밖의 일이 되어야 할 죄가 세상 신문과 뉴스의 일면처럼 교회의 이슈가 되어 선악으로 죄를 상대하면 미숙한 신앙의 교회가 될 뿐입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의 교회는 항상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덮는 능력이 넘쳐나고, 예수 생명의 본질인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에 집중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는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셨음을 믿음으로, 십자가에서 육신에 속한 옛사람이 죽었다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죄가 아닌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이 되어 새 생명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