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도무지 사라질 것 같지 않던 뜨거운 여름 열기도 가을 기세 앞에 물러서더니만, 이젠 가을 기운조차 겨울에 자리를 내줄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서랍장에서 내복을 꺼내 입고 잠바를 찾는 등 차가운 기온에 적응할 준비를 마쳤다.
이보다 더 추운 겨울에 조지 뮬러(George Muller)가 운영하는 영국 브리스톨(Bristol)의 한 고아원의 보일러가 망가지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2] 보일러를 수리하려면 1주일은 족히 걸리는데, 2천 명이나 되는 많은 어린이들을 매서운 영국 한파에 방치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니 방법이 없었다.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에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죄스런 마음으로 위로해 줄 뿐이었을 것 같다.
당시 고아원 직원들도 내 모습과 별반 차이 없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다.
[3] 그때 조지 뮬러는 조용히 성경을 들고 예배당을 찾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하나님, 여기에 있는 모든 아이들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소중한 영혼들입니다. 매서운 한파에서도 주님이 이들을 지켜주실 줄 믿사오니 부디 이들의 건강을 지켜주소서."
조지 뮬러가 밤새워 기도를 마치고 예배당에서 나오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따스한 동풍이 불며 날이 풀리기 시작했다.
[4] 우연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상이변으로 보일러 없이도 따스한 날이 정확히 1주일간 지속되었고, 보일러를 고치고 나자마자 다시 한겨울의 추위가 몰아쳤다. 결코 우연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기적이었단 말이다.
극동방송의 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어느 날 절친이었던 조용기 목사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다. "어째서 내가 기도하면 병이 안 고쳐지는데 당신이 기도하면 낫느냐?"고 말이다.
[5] 그때 조용기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다. "당신과 나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기도 받는 사람의 믿음의 차이 때문이다." 그렇다. 일리 있는 얘기이다.
약 15년 전 오른팔에 오십견이 와서 8개월 간 힘들었던 적이 있다. 양재역 가까이 위치한 축구국가대표 팀닥터가 운영하는 병원까지 가서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를 받곤했지만 쉬 낫질 않다가 8개월 만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6] 그 후 어느 날 선배 교수와 함께 제자 목사가 운영하는 정신병원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원장 부부와 두 세 시간 대화를 나누며 교제하다가 돌아오려고 일어섰다. 그때 원장 부인이 자기가 오십견이 와서 물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니 기도 좀 해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선배 교수도 있는데 부인은 내게 기도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땐 정말 기도하기 싫은 때였다.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는 부인이 미울 정도였다.
[7] '왜 선배 교수도 있는데 하필이면 기도하기 싫은 내게 기도해달라는 건가?' '오십견을 8개월간 치료해도 낫지 않았는데 기도만 하면 어쩐다냐?' 아마도 이런 맘이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내키지 않는 기도를 몇 마디 중얼거린 후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신 이런 기도 하지 말아야지!' 이런 맘까지 들었던 하루였다. 그로부터 딱 이틀 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있는데 모르는 전화가 울렸다.
[8] 전화를 받았더니 며칠 전 그 제자 목사 부인이었다. 웬일인지 물었더니, 내 기도를 받고 그날 오십견이 완치됐다며 너무너무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났는데 믿을 수 없었다. '잠시 통증이 멎었을 뿐이고 다시 아플 테니 그땐 내게 나았다고 전화한 게 멋쩍게 생각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딱 1년 반 만에 그 제자 목사 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9] 괜히 어색해질까봐서 오십견 얘기는 꺼내지도 말아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어떤 권사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이분이 신학교 교수님인데 내 오십견까지 기도해서 낫게 한 능력자"라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서 "정말 그때 다 나았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때 내 기도받고 지금까지 멀쩡하다며 팔을 돌려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난 회개했다.
[10] '그날 내가 얼마나 믿음 없이 건성으로, 아니 정말 내키지 않는 짜증나는 마음으로 기도했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인데, 우리 하나님이 그분의 병을 고쳐주신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조용기 목사의 말대로 오직 그분의 믿음 때문으로 밖에는 해석이 불가했다. 당연히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전제되는 얘기긴 하지만, 나처럼 믿음없이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기도 받는 이의 신뢰와 간절함이 그녀의 병을 치유했다고 본다.
[11] 김장환 목사의 또 다른 얘기를 소개하고 매듭지어야겠다. 어느 날 그가 조용기 목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어째서 내 기도에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데 당신이 기도하면 기적이 마구 일어나느냐?"고 말이다. 그때 조 목사가 한 말 또한 놓치지 말아야겠다. "당신은 하루에 30분 기도하지만 나는 하루에 3시간 기도하기 때문이다."
기도 받는 이의 믿음도 필요하지만 기도하는 이의 믿음 또한 무시할 수 없다.
[12] 무엇보다 밤이 맟도록 새벽 미명에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고, 금식기도를 즐겨하셨던 예수님을 모범 삼아 하나님과 대면해서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내 마음도 쏟아놓는 시간이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상식처럼 알고 있는 '평생 5만 번 기도응답'이 아니라, '10만 번 이상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설교 중에 고백한 조지 뮬러처럼 날마다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에 집중해야 한다.
[13] 50년 동안 무려 10,024명의 고아들을 한 끼도 굶기지 않고 보살펴온 그의 비결은 오직 기도에 있었다. 단 한 번도 사람과 의논하거나 사람에게 부탁하지 않고 오직 말씀을 의지한 기도로 하나님께 자신의 기도제목을 아뢰고 신뢰하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날씨까지 움직이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믿음이 한없이 부럽다.
[14] 언제까지 뮬러를 존경하고 그에게 감동받고 도전받기만 할 것인가? 그분처럼 되거나, 아니면 그분을 제쳐내는 사람이 지금쯤 한두 명은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오늘 내가 그런 사람 되길 소원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조지 뮬러와 같아지거나 그를 능가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길 바란다.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