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무엇도 무의미한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거듭나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단지 깨닫지 못하거나 붙들지 않는 사람만 사명을 외면하고 있을 뿐입니다. 최고의 환경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모든 풍요를 잃어버리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지 않고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바울은 어렵고 힘든 상황과 조건 속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과 사랑의 일들이 가득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울은 돈이 많거나, 높은 직분을 갖거나, 힘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24)
미국 동부의 명문 고등학교로 많은 인재를 배출했고 부시 대통령 부자도 나온 필립스 아카데미라는 학교의 교훈이 라틴어로 'Non Sibi (not for self,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인데, 사명을 붙들고 살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기독교 사학으로 유명한 거창 고등학교의 직업 십계명은 학생들로 하여금 사명자의 삶을 살게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셋,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가라. /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목적이라는 면에서는 사명과 유사하지만 상반된 것이 욕심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욕심의 목적은 자신을 위한 것이고 사명의 목적은 하나님과 타인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사명을 붙들었기에 부활의 첫 열매로 최고의 승리를 이루실 수가 있었습니다. 사명이 없이 무늬만 크리스천이 되어 살면 육체의 생각과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합니다. 결국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명을 붙들고 살면 놀랍게도 옛사람을 이기고 세상과 원수마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을 낭비하거나 넘어지지 않고 가치 있고 보람 되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사명을 붙들고 일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만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닫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