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Photo : 기독일보) ’북한교회사’ 저자 강석진목사

대한민국은 해방이 되자 바로 남과 북으로 분단국가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우리의 힘으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미국과 소련이 일본의 승전국이 되면서 자동적으로 한반도 전체가 이들의 점령지가 되었다. 이는 국제 질서 속에서 승전국의 전리품처럼 된 것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패권 국가들이었기에 이들 강대국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미소 양국은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각기 상이한 생각을 가졌다. 소련은 공산주의 팽창을 위해 동유럽에 이어서 아시아권의 나라들도 소련의 지배권 하에 종속시키려 했기에 미국과 카이로회담과 포츠담회담과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한반도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미소공동위원회에서 5년의 신탁 통치 후 남과 북의 선거를 통해 하나 된 자주 독립국을 세운다는 약속을 하였지만 사실상 소련의 스탈린의 의중은 그렇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로부터 손을 떼고 일본 본토만을 미국의 지배권 하에 두려고 하였으나 소련은 이북 지역을 소비에트화 하려는 속셈을 처음부터 가졌으며 이를 관철시키려고 양국 간의 약속을 져버렸다. 그러하기에 스탈린은 이북 지역이 소련의 지배하에 있도록 신탁을 주장했고, 이남은 자주 독립을 위해 미국의 신탁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결국은 남북한 동시 총선을 통한 선거는 무산되었고 이남 지역은 1948.8.15.일에 자유 국민 투표를 통해 독립국으로 탄생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이북은 소련에 의해 이미 1946년 2월 8일에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한 '임시인민위원회'가 구성이 되었고 사실상 정부가 성립된 상태였기에 남과 북의 단일 국가 건국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였다. 1948년 5월 10일에 유엔 총회의 결의에 따라 남한에서 총선이 실시되었다. 이 선거 제도는 북한의 소련식 흑백 선거와는 달리 이남 지역에서는 자국인들이 최초의 보통, 평등, 비밀, 직접의 4대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 선거 제도가 실행된 것이다. 드디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이는 미국의 군정 실시 3년 만의 결실이었다.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민주 정부로 승인된 것이다.

1948년 5월 31일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국회원들이 제헌국회의원 198명이 모여 제헌국회를 개회하게 되었다. 이때 임시의장에 선출된 이승만 의장이 갑자기 이윤영 국회의원에게 개회 감사 기도를 하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는 감리교 목사로서 이북에서 목회를 하다가 공산화로 월남하여 '남산감리교회'를 세운 목사였다. 그는 이같이 기도하였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어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정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이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 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 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아직까지 남북이 둘로 갈린 이 민족의 고통과 수치를 씻어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같이 감동적인 개헌 국회 개회식 기도가 10분 이상 진행되었지만 아무도 눈을 뜨지 않았다. 진지한 기도가 끝나자 믿지 아니한 의원들까지 일제히 기립해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가운데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탄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