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칭찬합시다’에 출연해 크리스천의 귀감이 된 바 있고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의 저자인 김이성 집사를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그 속에서 그를 살리고 구원하시려 애쓰셨던 하나님 구원의 러브스토리를 집중취재했다.
책을 쓰시게 된 의도 그리고 책 내시면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책을 왜 썼냐고 묻는다면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 이런 사람도 하나님이 바꾸셨는데 이래도 당신이 안 믿으시렵니까?” 이게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나의 출판심정이다.
뭐 환경미화원 하는 사람이고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글을 써서 낸다는 것도 웃긴 일이고 민망한 일인데, 어느 날 사도행전 1장 8절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증인이 되어야 하기는 하겠는데 내 주제에 무슨 수로 증인이 될까?” 하던 끝에 어느 날 월간고신 창간 200호 특집의 “제1회 신앙간증 및 수기 공모” 라는 글자에 눈에 확 띄었다. 그래서 석달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작정기도를 했다.
“주님! 응모한 글을 당선만 시켜주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학벌이 쟁쟁한 이들이 쓴 작품이 40여편이나 되었는데 그중 나같은 졸필의 작품이 동상으로 입상됐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알콜 중독자로 폐인으로 살아서 1달란트를 땅에 묻었던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살았었던 나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믿고 제대로 됐으니 ‘말 잘하고 글 잘쓰는 달란트’를 잘 장사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고 싶더라. 어찌나 달란트 말씀이 나를 계속해서 따라 다니던지.(웃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출판사하실 집사님이 있었는 줄 누가 알겠는가만은.. 이걸 모르고 책을 써봐야겠다 해서 다른 출판사에 여러 곳 문의를 했는데 또 그런 인연이 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가 책을 낼 줄 아시고 모든 것을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느꼈다.
또 청소부라는 직업상, 자비량으로 책을 낸다는 게 힘들어 고민하면서 이것을 놓고 새벽기도를 했다. 그 때 어떤 권사님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 하나님 ○ 권사님께 출판비를 부탁드립니다” 라고 기도했더니 진짜 신기한게 이튼날 새벽기도도 잘 안 나오시는 분이 진짜 나오셨네.
기도끝나고 사정 이야기를 드렸더니 아들에게 경제권이 넘겨져서 안된다고... 그런데 이 말을 옆에서 듣던 최규환 장로님이 “ 그런 거면 장로한테 이야기를 하셔야죠. 뭐 장로는 교회에 괜히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염려말고 내시게” 하며 100만원을 후원해주셨고 후에 정혜자 권사님이 100만원을 주셨다. 이때 “하나님께서 꼭 내라고 그러시나보다”하고 생각이 드니 책을 정말 안낼 수 없었다.
한편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던지 글을 쓰기만 하면 은혜가 쏟아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럴 때면 마음이 가볍고 그렇게 시원했다. 그냥 쓰는 글이라면 단순히 낙서이겠지만 역시 하나님이 쓰시는 글은 다르다.
- 책에 저자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눈물나는 구원의 이야기로 넘친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간증을 부탁한다
나는 어린 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고 새어머니 곁에서 바르게 크지 못했다. 삐뚤어진 심성에 내 죄는 커져만 갔고 학력은 초졸이었다.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큰 무기력감에 사는 맛이 뭔지 모르며 살았다.
환경미화원으로 20평생을 살아온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어떤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아내는 가출을 했고 어린 두 아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 때 앞으로 홀아비된 처지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혹시나 기다려봤으나 돌아오지 않고 모든 생활은 또 엉망이 되니 나는 식사량 대신 주량이 늘어났고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외로움과 슬픔, 눈물로 밤을 하얗게 보내는 세월이란...
그 때 하혈에, 수전증에, 피부병에 ,간염에, 알코올 중독에 술을 먹고 밥을 먹는다 해도 다 토해내고 또 손이 덜덜 떨리면서도 술을 계속 들이켜야만 하는 그 폐인된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또 술에 만취해서 길바닥에 누워있으면 사람들이 “저 인간 술쳐먹고 왜 저러냐? 왜 저렇게 사냐고?” 하면서 발로 툭툭 내 몸을 쳐댔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파리들이 몸에 들끓고 겨울에는 몸이 얼어죽을 듯했던 그런 쓰레기 같은 삶을 산 게 나다.(운다) 그랬던 폐인이, 그렇게 못난 삶이 이렇게 됐으니 하나님의 은혜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말을 잇지 못한다)
못난 내 모습을 바라만 봐도 죽고 싶고 절망적이었는데,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형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형님은 만신창이가 됐고 의사선생님은 살아도 식물인간을 면할 수 없으니 차라리 수술을 안하고 산소호흡기만 떼든지 아니면 집으로 데리고 가든지 그 외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정말 사방팔방이 캄캄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형님은 다행스럽게도 의식이 남아 있었다. 허나 여하튼 형님은 식물인간이었기에 살아났다는 기쁨은 잠시뿐이였다.
“나 한 사람도 가누기 어려운데 저 대소변은 누가 받내고 병수발은 누가 들어줘야 하나? 거기 들어가는 비용은 또 어떻게 하라고?” 이전보다 더 큰 절망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도저히 어떻게 살겠냐. 죽자!”는 마음에 죽고싶어 더 술을 마셔댔다.
그리고 입원 3일째 형님 옆에 어떤 남자분이 뇌출혈로 쓰려졌고 그분 옆에 부인되시는 집사님이 같은 병원 병실로 오게된다. 그런데 여 집사님은 남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찬송가를 불러대며 남편 간호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아와 그 남편분과 내 형님을 위해 기도해주고 예배해주기를 밤낮으로 했다.
처음에는 그게 참 못마땅했는데 나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많이 열리게 됐다. 또 집사님이 자매님으로서 남자 대소변 가려낸다는 게 어려운 것인데 형님 병수발을 다 들어주고 여러 봉사와 헌신을 아낌없이 해주었다는 데 특히 더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니 진짜 형님이 의식을 차려 내 아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펄펄 뛰고 기뻐하는 틈에 성령님께서는 그 상황을 이용하셔서 나를 전도하셨다. 집사님이 “교회 한번만 나오세요.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을 걸어왔던 것. 나는 이 때 무의식 중에 “예”라고 버렸고 결국 누가 예수 믿을 줄 알았겠는가만은 지금의 내가 됐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은 참 신기하게 역사하신다.
또 놀라웠던 것은 그 집사님의 교회가 내가 3년이나 쓰레기를 치웠던 서울영동교회라는 사실. '거참, 별일이 다 있네?’ 라고 생각됐고 어쨌든 "그 집사님의 성의와 체면을 봐서 한 번 참석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집사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교회로 나갔다.
- 책에 의하면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감격이 남달랐다고 했는데, 어떠했는가?
말씀을 들으니 이상하게 구절은 참 어려운데, 다 내 이야기로 들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모든 찬송가와 주기도문 송이 나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축복하는 노래와 기도소리로 들려졌다. 그래서 새 가족반 인사를 하러가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 “내 뒷조사 한 것 같다 왜 그러냐고?” 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깔깔 거리고 웃는 거 아닌가. (웃음)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기만 하면, 예수님 믿고 나서 이스라엘 밖에 있던 자가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나라에 거했다는 그 감격에 정말 너무나 감사하다. (운다) 또 그렇게 3-4번 교회를 나가니 형님은 병이 급속도로 낫게 됐고, 금상첨화 또 신기했던 것은 병원비 3천만원을 강남구청 관계자들이 모아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그 섭리를 묵상해보니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두 형제를 구원하시려고 준비시켜 놓으신 사랑의 뜻이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나, 형님, 내 아이 둘, 그리고 조카 이렇게 다섯 식구가 교회 다니게 된 것 외에는 청소부로 재직하고 모든 생활이 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예수 믿게 된 것 말고는 말이다.
정말 주님의 살아계심과 전지전능은 참으로 오점도 없이 정확하게 우리 형제를 구원하셨다. 이미 죽어도 됐을 자를 살리신 이 일을 통,해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 진리로 공의를 베푸신다는 분의 이사야 말씀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한 갈대는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된 나,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은 형님, 진리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인간이 너무 사악하고 정말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이래도 안 믿을래?” 하시면서 악한 나를 쳐주시고 그렇게라도 주님은 날 살리시고 싶으셨음을, 그 사랑에 너무나 감격스럽다. 그리고 이 사랑이 있으니 교회에 자꾸 나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싶을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 이 모든 부정한 음식들도 다 끊을 수 있었다. 한편 믿은지 10개월 만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했던 내가 100% 병이 낫게 된 것은 정말 성경 속 치유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그렇다면 그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간단하다. 믿음으로 산다는 성경의 말은 성령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와 그분이 함께 하시기만 하신다면 살 수 있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 논현동에서 일대일 복음전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전도하는가?
학동역에서 지역 전도팀들과 함께 전도를 하고 있는데 전도만큼 쉬운 게 없다. 가면 전도지도 나눠주고, 상담도 해주고 즉석에서 간증을 하기도 한다. 언제는 새신자 등록을 하게 해달라고 새벽기도를 했는데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시더라. 그날 어딜 갔다 오는데, 누가 “세탁소 개업하는데 교회 사람들 좀 알고 싶은데 나 좀 전도해주세요” 하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 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 제 아내 좀 전도해달라” 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날 새신자 카드를 2명이나 쓰고 그분들이 교회 잘 나오고 계신다. 정말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이 틀림없다.
-북한선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왜 하필이면 북한선교인가?
TV에서 북한 어린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중국 연변 시장에서 음식 쓰레기를 주워먹는 것을 보았다. 그런 장면을 보고 가슴이 찡해지고 내 자식 같으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아이들 생각할 때마다 밥이 안 넘어가더라.
그래서 오전 100일 금식을 결단하게 됐고 금식이 굶식이 되면 안돼서 한 끼를 1500원으로 하고 150,000원을 북한선교 구제 헌금으로 냈다. 그래서 그 금식이 4월 26일 끝났다. 그리고 27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칭찬합시다’ 라는 MBC 프로그램 출연자 모두가 초청됐다.
이 때 김대중 대통령 격려사 후에 내가 처음으로 그것도 영부인 옆 좌석에 앉아서 ‘어떻게 칭찬을 받게 됐습니까?’ 하는 물음에 대해 출연진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됐다.
그런데 이 때 방송사에서 정해준 멘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간증이 나와서 거기 있는 크리스천들이 할렐루야로 화답해주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나같이 부족한 자를 초청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내가 옛날에는 완전히 알코올 중독자로 폐인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다른 사람이 됐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해서 그것을 실천한 것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님께서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님을 뵈시게 되면 저도 데리고 가주셔서 제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라는 뜻밖의 말이 마지막으로 튀어 나왔다. 그런데 이 때 거기 방송사 스텝들이 ‘칭찬합시다 좋은 프로그램이다’ 라는 말은 안하고 엉뚱한 멘트를 하니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주었다. 이 때 스데반이 돌을 맞아 순교했던 그랬지만 예수님께서 그가 순교했을 때 예수님께서 서서 영접했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웃음)
여하튼 나는 그 때부터 북한을 놓고 김정일 위원장을 놓고 기도하게 됐고, 책에도 나왔지만 김정일을 위해 편지쓴 것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기도제목이 있다면, 나는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예수님 이름부르면서 순교하는 게 꿈이다. 순교자의 반열에는 아무나 들 수 없는데 정말 얼른 북한에 가서 십자가의 삶을 살고 싶다.
기자후기
죽음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건짐받은 김이성 집사과 그의 가족. 그래서 이제는 영생과 천국을 누리며 사는 기쁨에 과거의 힘겨운 삶이 도리어 그의 자랑과 은혜의 거리가 됐다는 김 집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역력히 보여주는 주님의 산 증인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흘려대는 그의 짙은 눈물은 슬픔이 아닌, 구원의 감격과 기쁨 때문에 흘리는 눈물로 기자 눈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엄청난 감화력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된 보람을 느끼게 해준 이는 진정 하나님 진리의 파수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강한 증거를 가진 그는 문벌좋고 학식있는 자는 아니나, 지혜롭다 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며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김이성 집사의 하나님 사랑은, 그의 책은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는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된다.
서울영동교회 김이성 집사 019 242 9258
책을 쓰시게 된 의도 그리고 책 내시면서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책을 왜 썼냐고 묻는다면 정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리고 싶어서다. 그러니까 “ 이런 사람도 하나님이 바꾸셨는데 이래도 당신이 안 믿으시렵니까?” 이게 독자들에게 묻고 싶은 나의 출판심정이다.
뭐 환경미화원 하는 사람이고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 글을 써서 낸다는 것도 웃긴 일이고 민망한 일인데, 어느 날 사도행전 1장 8절의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으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증인이 되어야 하기는 하겠는데 내 주제에 무슨 수로 증인이 될까?” 하던 끝에 어느 날 월간고신 창간 200호 특집의 “제1회 신앙간증 및 수기 공모” 라는 글자에 눈에 확 띄었다. 그래서 석달간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작정기도를 했다.
“주님! 응모한 글을 당선만 시켜주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학벌이 쟁쟁한 이들이 쓴 작품이 40여편이나 되었는데 그중 나같은 졸필의 작품이 동상으로 입상됐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었다.
알콜 중독자로 폐인으로 살아서 1달란트를 땅에 묻었던 악하고 게으른 종처럼 살았었던 나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 믿고 제대로 됐으니 ‘말 잘하고 글 잘쓰는 달란트’를 잘 장사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고 싶더라. 어찌나 달란트 말씀이 나를 계속해서 따라 다니던지.(웃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출판사하실 집사님이 있었는 줄 누가 알겠는가만은.. 이걸 모르고 책을 써봐야겠다 해서 다른 출판사에 여러 곳 문의를 했는데 또 그런 인연이 닿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내가 책을 낼 줄 아시고 모든 것을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느꼈다.
또 청소부라는 직업상, 자비량으로 책을 낸다는 게 힘들어 고민하면서 이것을 놓고 새벽기도를 했다. 그 때 어떤 권사님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 하나님 ○ 권사님께 출판비를 부탁드립니다” 라고 기도했더니 진짜 신기한게 이튼날 새벽기도도 잘 안 나오시는 분이 진짜 나오셨네.
기도끝나고 사정 이야기를 드렸더니 아들에게 경제권이 넘겨져서 안된다고... 그런데 이 말을 옆에서 듣던 최규환 장로님이 “ 그런 거면 장로한테 이야기를 하셔야죠. 뭐 장로는 교회에 괜히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염려말고 내시게” 하며 100만원을 후원해주셨고 후에 정혜자 권사님이 100만원을 주셨다. 이때 “하나님께서 꼭 내라고 그러시나보다”하고 생각이 드니 책을 정말 안낼 수 없었다.
한편 글을 쓰면서도 얼마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던지 글을 쓰기만 하면 은혜가 쏟아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럴 때면 마음이 가볍고 그렇게 시원했다. 그냥 쓰는 글이라면 단순히 낙서이겠지만 역시 하나님이 쓰시는 글은 다르다.
- 책에 저자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눈물나는 구원의 이야기로 넘친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간증을 부탁한다
나는 어린 시절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고 새어머니 곁에서 바르게 크지 못했다. 삐뚤어진 심성에 내 죄는 커져만 갔고 학력은 초졸이었다. 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큰 무기력감에 사는 맛이 뭔지 모르며 살았다.
환경미화원으로 20평생을 살아온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보니 어떤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아내는 가출을 했고 어린 두 아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이 때 앞으로 홀아비된 처지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아내가 돌아오기를 혹시나 기다려봤으나 돌아오지 않고 모든 생활은 또 엉망이 되니 나는 식사량 대신 주량이 늘어났고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외로움과 슬픔, 눈물로 밤을 하얗게 보내는 세월이란...
그 때 하혈에, 수전증에, 피부병에 ,간염에, 알코올 중독에 술을 먹고 밥을 먹는다 해도 다 토해내고 또 손이 덜덜 떨리면서도 술을 계속 들이켜야만 하는 그 폐인된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또 술에 만취해서 길바닥에 누워있으면 사람들이 “저 인간 술쳐먹고 왜 저러냐? 왜 저렇게 사냐고?” 하면서 발로 툭툭 내 몸을 쳐댔다.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여름철에는 파리들이 몸에 들끓고 겨울에는 몸이 얼어죽을 듯했던 그런 쓰레기 같은 삶을 산 게 나다.(운다) 그랬던 폐인이, 그렇게 못난 삶이 이렇게 됐으니 하나님의 은혜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말을 잇지 못한다)
못난 내 모습을 바라만 봐도 죽고 싶고 절망적이었는데,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형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형님은 만신창이가 됐고 의사선생님은 살아도 식물인간을 면할 수 없으니 차라리 수술을 안하고 산소호흡기만 떼든지 아니면 집으로 데리고 가든지 그 외 다른 길이 없다고 했다. 정말 사방팔방이 캄캄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형님은 다행스럽게도 의식이 남아 있었다. 허나 여하튼 형님은 식물인간이었기에 살아났다는 기쁨은 잠시뿐이였다.
“나 한 사람도 가누기 어려운데 저 대소변은 누가 받내고 병수발은 누가 들어줘야 하나? 거기 들어가는 비용은 또 어떻게 하라고?” 이전보다 더 큰 절망이 엄습해왔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도저히 어떻게 살겠냐. 죽자!”는 마음에 죽고싶어 더 술을 마셔댔다.
그리고 입원 3일째 형님 옆에 어떤 남자분이 뇌출혈로 쓰려졌고 그분 옆에 부인되시는 집사님이 같은 병원 병실로 오게된다. 그런데 여 집사님은 남은 지금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찬송가를 불러대며 남편 간호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사람 교회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은 계속해서 병원을 찾아와 그 남편분과 내 형님을 위해 기도해주고 예배해주기를 밤낮으로 했다.
처음에는 그게 참 못마땅했는데 나중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많이 열리게 됐다. 또 집사님이 자매님으로서 남자 대소변 가려낸다는 게 어려운 것인데 형님 병수발을 다 들어주고 여러 봉사와 헌신을 아낌없이 해주었다는 데 특히 더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니 진짜 형님이 의식을 차려 내 아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펄펄 뛰고 기뻐하는 틈에 성령님께서는 그 상황을 이용하셔서 나를 전도하셨다. 집사님이 “교회 한번만 나오세요.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을 걸어왔던 것. 나는 이 때 무의식 중에 “예”라고 버렸고 결국 누가 예수 믿을 줄 알았겠는가만은 지금의 내가 됐고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를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은 참 신기하게 역사하신다.
또 놀라웠던 것은 그 집사님의 교회가 내가 3년이나 쓰레기를 치웠던 서울영동교회라는 사실. '거참, 별일이 다 있네?’ 라고 생각됐고 어쨌든 "그 집사님의 성의와 체면을 봐서 한 번 참석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집사님과의 약속을 지키러 교회로 나갔다.
- 책에 의하면 교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의 감격이 남달랐다고 했는데, 어떠했는가?
말씀을 들으니 이상하게 구절은 참 어려운데, 다 내 이야기로 들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모든 찬송가와 주기도문 송이 나를 위해 모든 성도들이 축복하는 노래와 기도소리로 들려졌다. 그래서 새 가족반 인사를 하러가서 자기소개를 했는데 , “내 뒷조사 한 것 같다 왜 그러냐고?” 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깔깔 거리고 웃는 거 아닌가. (웃음)
그때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보기만 하면, 예수님 믿고 나서 이스라엘 밖에 있던 자가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나라에 거했다는 그 감격에 정말 너무나 감사하다. (운다) 또 그렇게 3-4번 교회를 나가니 형님은 병이 급속도로 낫게 됐고, 금상첨화 또 신기했던 것은 병원비 3천만원을 강남구청 관계자들이 모아 내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후에 그 섭리를 묵상해보니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두 형제를 구원하시려고 준비시켜 놓으신 사랑의 뜻이었다. 가만히 있었는데... 나, 형님, 내 아이 둘, 그리고 조카 이렇게 다섯 식구가 교회 다니게 된 것 외에는 청소부로 재직하고 모든 생활이 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예수 믿게 된 것 말고는 말이다.
정말 주님의 살아계심과 전지전능은 참으로 오점도 없이 정확하게 우리 형제를 구원하셨다. 이미 죽어도 됐을 자를 살리신 이 일을 통,해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 진리로 공의를 베푸신다는 분의 이사야 말씀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한 갈대는 알코올 중독으로 폐인된 나, 그리고 꺼져가는 등불은 형님, 진리는 예수님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인간이 너무 사악하고 정말 하나님을 찾지 않으니까 이래도 안 믿을래?” 하시면서 악한 나를 쳐주시고 그렇게라도 주님은 날 살리시고 싶으셨음을, 그 사랑에 너무나 감격스럽다. 그리고 이 사랑이 있으니 교회에 자꾸 나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싶을 뿐만 아니라, 술과 담배 이 모든 부정한 음식들도 다 끊을 수 있었다. 한편 믿은지 10개월 만에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했던 내가 100% 병이 낫게 된 것은 정말 성경 속 치유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 그렇다면 그 믿음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간단하다. 믿음으로 산다는 성경의 말은 성령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와 그분이 함께 하시기만 하신다면 살 수 있고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 논현동에서 일대일 복음전도를 한다고 들었는데 어떤 방식으로 전도하는가?
학동역에서 지역 전도팀들과 함께 전도를 하고 있는데 전도만큼 쉬운 게 없다. 가면 전도지도 나눠주고, 상담도 해주고 즉석에서 간증을 하기도 한다. 언제는 새신자 등록을 하게 해달라고 새벽기도를 했는데 신기하게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시더라. 그날 어딜 갔다 오는데, 누가 “세탁소 개업하는데 교회 사람들 좀 알고 싶은데 나 좀 전도해주세요” 하고 나를 불렀다.
그리고 또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 제 아내 좀 전도해달라” 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 날 새신자 카드를 2명이나 쓰고 그분들이 교회 잘 나오고 계신다. 정말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임이 틀림없다.
-북한선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안다. 왜 하필이면 북한선교인가?
TV에서 북한 어린아이들이 배가 고파서 중국 연변 시장에서 음식 쓰레기를 주워먹는 것을 보았다. 그런 장면을 보고 가슴이 찡해지고 내 자식 같으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게 됐다. 그리고 그 아이들 생각할 때마다 밥이 안 넘어가더라.
그래서 오전 100일 금식을 결단하게 됐고 금식이 굶식이 되면 안돼서 한 끼를 1500원으로 하고 150,000원을 북한선교 구제 헌금으로 냈다. 그래서 그 금식이 4월 26일 끝났다. 그리고 27일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칭찬합시다’ 라는 MBC 프로그램 출연자 모두가 초청됐다.
이 때 김대중 대통령 격려사 후에 내가 처음으로 그것도 영부인 옆 좌석에 앉아서 ‘어떻게 칭찬을 받게 됐습니까?’ 하는 물음에 대해 출연진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됐다.
그런데 이 때 방송사에서 정해준 멘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간증이 나와서 거기 있는 크리스천들이 할렐루야로 화답해주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나같이 부족한 자를 초청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내가 옛날에는 완전히 알코올 중독자로 폐인이었는데 예수님 믿고 다른 사람이 됐고, 예수님께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 해서 그것을 실천한 것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대통령님께서 북한에 가서 김정일 위원님을 뵈시게 되면 저도 데리고 가주셔서 제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복음을 전하게 해주세요. ”라는 뜻밖의 말이 마지막으로 튀어 나왔다. 그런데 이 때 거기 방송사 스텝들이 ‘칭찬합시다 좋은 프로그램이다’ 라는 말은 안하고 엉뚱한 멘트를 하니 실망스러운 눈초리를 주었다. 이 때 스데반이 돌을 맞아 순교했던 그랬지만 예수님께서 그가 순교했을 때 예수님께서 서서 영접했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웃음)
여하튼 나는 그 때부터 북한을 놓고 김정일 위원장을 놓고 기도하게 됐고, 책에도 나왔지만 김정일을 위해 편지쓴 것은 내가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기도제목이 있다면, 나는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예수님 이름부르면서 순교하는 게 꿈이다. 순교자의 반열에는 아무나 들 수 없는데 정말 얼른 북한에 가서 십자가의 삶을 살고 싶다.
기자후기
죽음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총으로 건짐받은 김이성 집사과 그의 가족. 그래서 이제는 영생과 천국을 누리며 사는 기쁨에 과거의 힘겨운 삶이 도리어 그의 자랑과 은혜의 거리가 됐다는 김 집사는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역력히 보여주는 주님의 산 증인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흘려대는 그의 짙은 눈물은 슬픔이 아닌, 구원의 감격과 기쁨 때문에 흘리는 눈물로 기자 눈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엄청난 감화력을 갖고 있었다. '인터뷰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된 보람을 느끼게 해준 이는 진정 하나님 진리의 파수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만난 예수,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한 강한 증거를 가진 그는 문벌좋고 학식있는 자는 아니나, 지혜롭다 하는 자를 부끄럽게 하며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낫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김이성 집사의 하나님 사랑은, 그의 책은 구원의 능력을 나타내는 강력한 복음의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된다.
서울영동교회 김이성 집사 019 242 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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