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리더십의 몇 가지의 정수를 우리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링컨 대통령은 세계 역사의 그 어떠한 지도자보다 리더십의 장점과 정수가 월등하게 많다. 너무 장점이 많아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중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1. 링컨은 정직한 대통령이었다

링컨 대통령은 나폴레옹처럼 굉장한 장군은 아니었고, 프리드리히 대왕처럼 대단한 정치인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직이라는 위대함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수많은 역사가들 모두 링컨의 진실성과 도덕성을 인정하고 있다. 아직도 미국인들이 그를 부르는 애칭이 바로 '정직한 에이브(Honest Abe)'이다.

여전히 대한민국에는 정직하지 못한 대통령이나 예비 후보가 많이 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의 재앙이 되기 때문이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도 없겠지만 되어서도 안 된다.

링컨의 정직함이 그를 일으켜 세우는 초석이 되었고 지도자로서 가장 크게 인정받는 부분이었으며, 분열된 미국을 오늘날 하나의 국가로 유지시킨 비결이었다.

이제 더 이상 정직하지 못한 부끄러운 대통령이 대한민국 땅에서 탄생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직을 목숨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대통령, 정말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이 반드시 탄생해야 한다.

2. 링컨은 소통 능력이 탁월한 대통령이었다

링컨은 가히 소통의 달인이다. 알려졌듯 미국의 남북전쟁 내전 전사자는 무려 62만여 명이었다. 그야말로 피의 도살(屠殺)이었다.

남북전쟁이 링컨의 북군 승리로 확연하게 기울어지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링컨이 대통령에 재선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워싱턴 정가에는 숨가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링컨의 여당(공화당)은 다수당이었지만, 여당 전원이 찬성해도 헌법 수정안 통과를 위한 정족수 3분의 2에서 20표가 부족했다.

야당 민주당은 남군 정부와의 평화 협상을 앞세워, 당 차원의 타협과 양보는 불가능했다. 링컨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링컨은 과감하게 소통과 설득의 정공법(正攻法)을 선택한다. 밤늦게까지 야당 의원 집을 일일이 찾아갔다. 어둠 속 문 앞에서 소통의 리더십이 강렬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결국 법안은 2표 차이로 극적으로 통과된다. 링컨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빛을 발하며, 최고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훗날 정치인들이 링컨 정치의 이중성을 꼬집기도 했지만, 소통이 만들어낸 위대한 힘은 링컨 정치의 노회한 면모를 모조리 상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링컨 대통령은 위험한 전쟁의 포화 속으로 직접 찾아갔다. 수많은 사병들을 만나 격의 없는 인생 대화를 나누는 링컨은 소통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해 나갔다.

링컨은 탄복할 만한 소통의 귀재다. 그는 어떠한 상대이든 마음을 열 수 있는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소통을 잘하는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대통령이라는 권력과 명성을 총동원해서라도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들을 불러 모아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가히 탁월했다.

특히 그는 소통을 통한 토론을 아주 좋아했다. 링컨이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 조건은 결국 소통과 포용이었다. 자신이 불리하고 환영받지 못할 상황이라도 먼저 다른 사람들과 소통으로 해결하기를 원했던 링컨, 바로 이것이 오늘날 불통의 오명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보내는 링컨의 진정성 있는 소통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3. 링컨은 원수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 즉 포용력이 탁월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변호사 시절 때부터 그를 애송이 시골뜨기라고 모욕하며 놀려댔던 에드윈 스탠튼(Edwin Stanton)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링컨에게 깡마르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자주 비난했다.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예 '국가적 재앙'이라며 가장 많은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링컨은 매일매일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나를 이토록 힘들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하지만 대통령이 된 링컨은 많은 참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탠튼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한다. 그때 링컨이 한 말은 모든 참모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을 마음 속에서 없애야 합니다. 원수는 죽여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는 사랑으로 녹여 없애는 것입니다. 사명감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스탠튼은 국방부 장관에 가장 필요한 적임자입니다."

비록 자신에게는 정적이었지만, 스탠튼이 군대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링컨의 판단은 옳았고, 스탠턴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시(戰時) 국방장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865년 4월, 링컨의 암살 때 가장 많이 울고 슬퍼했던 사람이 놀랍게도 에드윈 스탠튼 국방장관이었다.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 극장에서 저격되어 쓰러졌을 때, 스탠튼은 링컨의 시신이 놓여있는 방, 피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에 있었다.

그는 죽어 말이 없는 링컨 대통령의 얼굴을 내려다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지금까지 이 세상이 가졌던 통치자 중 최고의 통치자가 여기 누워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참고 용서해 주었던 링컨이 승리한 것이다. 링컨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였다. 어제의 동지를 적으로 몰아붙이며 더러운 정치만을 답습하는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정말 배워야 할 링컨의 리더십이다.

당장 눈앞에 닥쳐온 인기나 자신의 이익, 정치적 기득권만 챙기는 대통령이 아니라, 아무리 자신에게 불리하고 환영받지 못한 상황이라도 적을 아군으로 만들 줄 아는 포용의 정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것이 오늘날 불통의 오명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링컨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가 아닐까.

4. 지도자는 링컨처럼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사실 링컨이 부자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던 것은 아니었다. 변호사가 되어 존경을 받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링컨에게 사명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노예 해방을 위해 대통령이 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가슴 속에 맺혀 있던 뜨거운 사명감 하나가, 그로 하여금 노예 해방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국민들에게 확실한 비전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그 실현이 곧 자신의 사명이었음을 확신시켰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1848년 프랑스 혁명 실패 이후 전체주의로 회귀하려는 유럽 상황에 맞서, 무조건 미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전쟁의 결과를 아무도 확신할 수 없었을 때, 링컨을 버티게 한 것은 오직 목숨 건 사명감이었다. 국가를 사랑하는 링컨의 뜨거운 사명감이 역사 깊은 유럽의 강대국들 앞에서도 미국인들을 당당하게 했고, 국가적 위기마저 견뎌내게 했던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도 국민들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대통령만 되면 만족한다는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이 아니라, 진정 나라와 국민을 뜨겁게 사랑하고 올바른 가치와 강한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 나와, 세계 강대국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우리 국민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채복기
▲채복기 목사와 저서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 다시 링컨>.

채복기 목사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삶에 활용할 수 있도록 쉽게 해석해 주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으며, 글쓰기를 통해 현상을 탐구하고 인생과 세상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표출해 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장편소설 『여보 미안해』로 등단한 후 에세이집 『그대에게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아내는 선물이다』, 『힐러리처럼 도전하라』 등 현 세대의 단면을 감각적이고 날카롭게 다루는 작품들을 써왔다. 최근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 다시 링컨(북스토리)』을 펴냈다.